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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소중한 우리문화재 화석정을 파괴한 사람들을 고발한다.

 

 

 

 

 

 

 

 

 

 

 

 

 

 

 

 

 

화석정 앞 강변도로를 복개 공사하여 소음을 차단하라.

 

어제는 오래 만에 민통선 근방인 임진강 쪽에 자리한 화석정에 휴식을 위하여 향했다. 지척에 있으면서 운전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자주 오질 못했다. 20년도 더 지나간 추억 같다. 세종로 중앙청사에 근무시절 서울시에 파견 나와 같이 근무한 친구의 차량으로 전방 쪽으로 구경 가자고 제안하여 토요일 오후 합동 민원실에서 업무로 수고한 수하직원과 같이 강변에서 소일한 추억이 잠들어 있는 화석정이기도 하였다. 당시 가난하게 살아가는 모습의 몇 호가 있던 시골마을 옆 언덕위에 정자였으며 풀 속에 방치되어 있었지만 주위풍광을 보고 나는 너무도 놀랐다.

임진강물이 굽이쳐 흘러가는 모습이 정말 장관 이였다. 문학적인 소질이 있었다면 시 한 줄이 읊어지지 아니한다면 이상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섰다. 낙동강 줄기에서 성장하여 강변의 정자들을 자주 보아왔지만 화석정을 지나가는 임진강은 낙동강의 지류 정도에 지나지 아니하지만 강폭과 풍광은 낙동강 어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인천공항에 근무하는 동생과 함께 그 아름다운 풍광을 생각하며 화석정을 다시 찾아가 보았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 지면 산천도 변화고 사람도 바뀐다는 말이 절실함을 느꼈다.

 

DMZ 인근을 달리는 평화누리길, 듣기만 해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이름인 국도인 문산- 철원(96km) - 속초(350km) 평화누리길이 생겼다는 뉴스를 일전에 접한 기억이 있다. DMZ는 세계에서 가장 긴장이 드리운 곳이자,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천연의 생태가 보존된 곳이고, 보존할 가치가 충분 하다고 알고 있다. 앞으로 좁은 국토에서 우리가 자랑삼을 자연 문화유산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곳이도 하다.

 

나의 이런 기대가 화석정을 찾아보고 산산 조각나고 말았다. 화정석은 문산에서 10km도 도지 아니하는 경기도 파주시 화석정로 152-72(파평면 율곡리 산 100-1) 에 위치하고 있으며, 1974926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로 등재하여 놓고 이렇게 대접할 수가 있나 하는 울분의 마음으로 정자 바닥에 1시간 이상 앉아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여보았다.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 대유학자인 길재(吉再)의 유지(遺址)였던 자리라고 전해지나 자세한 문헌 기록은 없다고 하며, 그후 1443(세종 25) 율곡 이이(李珥)5대 조부인 강평공(康平公) 이명신(李明晨)이 세운 것을 1478(성종 9) 율곡의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보수하고 몽암(夢庵)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숙함의 정자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당나라 때 재상 이덕유(李德裕)의 별장인 평천장(平泉莊: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함)의 기문(記文) 중에 보이는 "花石"을 따서 정자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이이(李珥)은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그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이곳을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화석정에는 이이와 선조에 얽힌 재미난 일화가 내려온다. 율곡은 살아 있을 때 틈나는 대로 화석정 기둥에 기름을 발라두게 하였다. 율곡이 죽고 8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급하게 서울을 빠져나와 의주로 피난길에 오른 선조는 주위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임진강가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강 전체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알고 보니 선조의 피난길을 수행하던 이항복이 기름을 먹인 이 정자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 불빛의 도움을 받아 선조는 무사히 임진강을 건넜다고 한다.

 

 

이 정자의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면 까마득히 펼쳐진 하늘 가운데 한양의 삼각산과 송도의 오관산이 머리카락만큼 조금 드러나는데 그 경치가 그토록 빼어났다고 한다. 율곡과 가까웠던 정철이 이곳을 스쳐 지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산이 서로 등졌지만 맥은 본래 한가지요,

 

물이 따로 흐르지만 근원은 하나로세.

 

화석이라 옛 정자에 사람은 아니 뵈니

 

석양이라 돌아가는 길 혼이 거듭 녹아나네.

 

 

율곡 선생은 조선 당대 유학의 대가이자 백성과 임금의 앞날을 위하여 항상 염려한 우리민족에 삶에 사표가 되시는 분이 아니신가?

 

대를 이어 후손들이 선생님을 사모하고 넋이 담겨 있을 화석정을 사랑해야 할 도리가 있기도 하다. 이것을 망각하고 임시 편리함과 수익만 생각하고 정자 바로 밑 50m 근접하여 도로를 개설하여 높이 20m위치의 정자는 1분에 16대 이상 통행하는 차량소음과 질주하는 차량의 진동이 전해오는 것 같았다.

 

 

몇 조원을 들여서 옛날 고즈넉한 화석정의 원형을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다. 원형을 뒤 찾을 수 없지만 최소한 선생님여기에 머문다고 하면 이렇게 할 수는 없다. 선생님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정자 아래 도로는 복개 공사하고 자연과 조화되게 하여 방문객이 선생님을 기리며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관계당국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현재의 소음 상태로서는 한번 온 사람은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실정이다. 두 시간 정자에 머무는 동안 많은 방문객이 찾아와서 소음으로 정자에 올라와 보지도 아니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시끄럽다고 가버리게 만든 도로 사업 주관 청에 욕설이라도 퍼부었으면 하는 마음 이였다.

 

 

우리국민이 우리 역사와 문화재를 애지중지 하지 아니하면 누가 우리역사와 문화를 기억하고 소중하게 생각할 것인가 묻고 싶다. 조속힌 환경보호 차원에서 도로복개 공사를 신중하게 고려 해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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