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님은 장남인 내가 결혼 하고 난후 얼마 되지 아니하여 아주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쓸어져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하늘나라로 가시었다. 그때 내 어머님과 나이는 50대 초반 이였다. 한참 가족과 즐겁게 살아갈 연세 이였다.
아침 출근하는 장남인 나에게 쓸쓸한 표정으로 직장에 잘 갔다 오라는 말 한마디가 이승에 나에게 남긴 말입니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지만 모자간생사의 인연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슬픔은 형언 할 수 없는 아픔으로 쉽게 멈추지 아니하였다.
매일 어디 잠시 가신 것 같았으며 금방이라도 돌아오실 것 같은 그런 기다림의 세월이 한 5년간 연속되었다.
어머님의 돌아가심이 현실로 받아 드려진 후에는 내가 평소에 부모님에 대하여 받은 사랑에 대한 보답을 하지 못한 것이 항상 죄스럽고 가슴 아프게 하였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사랑하지 아니하고 희생의 삶을 살지 아니한 부모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어머님을 한 번도 기쁨을 드린 일이 없고 속만 태우게 한 것 같은 마음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과 함께하는 세월 속에서 사랑과 희생의 대가를 함께 살아가면서 탕감 받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살아가면서 일상의 고락을 같이 하다보면 자연히 부모님에게 빚을 감는 생활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나의 경우에는 어머님이 일찍 고생만 하시고 돌아가시어 그런 세월의 부대낌이 없었다. 어머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은혜를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고 자식들에게 자신은 희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시어 지금생각하면 자식 된 도리로 어머님한테 따뜻한 위로의 말도 애정 어린 감사함을 표현한 일도 없다. 오직 이기주의적인 요구와 내 주장만 하고 살아 왔던 던 것 같다
내가 부모 되고 늙어 지게 되고 보니 그때 그런 때 말 한마디라도 어머님을 기뻐하시는 말과 위로되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평생을 두고 후회된다.
어머님을 생각 할 때마다 가슴 아픈 사연으로 가슴을 밀치고 끓어오르는 사모 침에 눈물이 앞을 가릴게 할 때가 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어머니 사랑의 젓 무덤을 제일먼저 차지한 나이고, 그 첫 사랑 독차지 한속에서 제일 먼저 배운 언어로 엄마라고 불렀던 내가 아닌가? 어머님은 내 가슴에 살아 멈추지 아니하고 도도히 내 마음 속에 흐르는 푸른 강이다.
그 영원한 사랑에 대하여 그리워하는 마음이 기일이 되면 생전에 조금이나마 효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 가슴이 먹먹하여 견딜 수 가 없다. .평생을 두고 다시 고칠수 없는것이 살아계실 때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기에 돌아가신 기일이면 어머님이 더욱 그립고 다시 한번 생전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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