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이 전하는 의미
양력으로는 벌써 새해도 이십 여일 지났지만 음력으로는 네일 모래 지내야 새해이며, 아직도 세 밑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추운 몇 날이 며칠 식 계속되면 엄동설한 먹을 것이 귀하여 속까지 텅 비고 어느 하나 풍족한 것이 없었던 세월 속에 살아온 세대가 지금 60-70대의 연령이 아닌가 생각한다.
떨어진 신발과 기워 입은 옷과 양말 속으로 찬바람에 시린 손발을 입김으로 불어 녹이며 생활하여도 내 이웃을 살필 줄 알고 나보다 약한 자에게 한점의 정을 베풀 줄 알고 살아 온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 여유 있는 집안에서 새로운 음식을 작만 할 때면 마주한 이웃집에 음식을 보내어 우정을 나누던 모습을 보고 자랐으며 서로가 부족해도 부족 한 것 가지고도 부족하다고 느끼지 아니하고 나눔의 삶을 살아온 시절 그래서 행복하였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삶의 진정한 여유와 행복은 자기가 얼마나 많이 가지었는가가 아니라 가진 적은 것을 나누워 가질 수 있는가에 있다고 봅니다.
현대인의 삶의 태도와 철학은 나눔보다 내가 더 많이 독식하고 더 많이 가지는 것을 성공의 조건으로 보기 때문에 기존 우리의 미풍양속은 살아지고 세상의 모든 일들이 순서가 뒤 틀리어지고 심성은 자연히 악해지어 나눔이나 협조와 양보란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주역周易의 64괘중 박괘剝卦에 나오는 말인데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말이 있다.
과실을 다 먹지 않고 남긴다는 뜻이지요. 자기만의 욕심을 자제하고 그 뒷사람을 생각하는 그런 나눔의 정신을 말함일 테지요.
나의 유년시절 조부님은 평소 나무에 대한 예정이 남다르시어 증조부 산소며 삭막한 마을 뒷산에 나무 심기가 취미 이였다. 당시는 식목하여 보았자 일년도 못가는 일인데도 나무를 심어시던 기억이 나며, 근동에 수소문하여 품종이 좋은 감나무 있다면 새싹을 잘아 오시어 감나무 접을 하시곤 하였는데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 후 여름 방학 때 시골집을 가면 유독 우리 집은 푸른 많은 감나무로 둘러 싸여 있었던 기억이 난다.
겨울 방학 때도 조부모님을 뵈려 가면 감나무들에서 감을 다 따지 아니하시고 장대가 잘 닿지 아니하는 곳에는 해마다 한 나무에 몇 개를 남겨두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의 지시에 의하여 행한 것이 아니고 조부모님은 그렇게 남겨두는 것을 선대에서 보고 배워서 생활에 실천한 종교적인 믿음이요 신앙이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겨울동안 까치밥이 되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온 천지가 수북이 쌓이는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메마른 나무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감들은 흰 눈 속에 운치를 더하는 빛나는 훈장처럼 멋을 더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새들의 겨울 양식으로 감 몇 개를 남겨두셨던 그 여유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내에게 잊어지지 아니하는 또 다른 추억은 모두 생활이 어려웠어도 이삭을 줍는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부유한 집에서는 추수 후 벼이삭을 모두 줍지 않았던 그 배려를 잊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공생을 생각할 줄 알고 나눔을 생활화 하며 살아오지 아니 하였는가 생각합니다.
바로 새들의 겨울 양식을 위해 몇 개의 감을 남겼던 그 마음일 것입니다.
추운 겨울 우리는 살아가는 삶의 철학과 태도를 한번 뒤돌아볼 여유가 있었으면 합니다. 법을 만드는 신성한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전기톱이 등장하는 현실과 잘 살아보겠다고 전개한 재개발사업이 사람을 불에 타죽게는 되는 사건이 속출하게 되는 우리사회에서 다시 한번 선조들의 슬기로운 삶의 철학을 배워 실천하여 나간다면 앞으로 우리사회는 참 즐겁고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아니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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