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 특혜 논란 팽팽
“경찰대 출신을 고위직에서 배제하거나 줄이면 우수 자원이 이탈해 조직 역량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경찰대 출신 B 총경)
최근 ‘경찰대 특혜론’과 ‘개혁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특정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이 20년 걸려야 가는 자리(경위)부터 시작하는 건 불공정하다”고 지적하면서부터다.》
경찰대 특혜론은 1981년 경찰대 출범 이후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2018년 문재인 정부는 경찰대 개혁 추진위원회를 설치하고 경찰대 모집 정원 축소, 일반 대학생 및 재직 경찰관 편입 허용, 학비 전액 지원 및 군 전환복무 제도 폐지 등을 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대 졸업 뒤 경위 임관’은 그대로다. 순경 출신은 입직 20년 차를 전후해 경위로 승진하는 것이 보통인 데 비해 경찰대를 졸업하면 처음부터 순경보다 3계급 높은 경위로 임관하게 된다. 인사혁신처의 ‘호봉 획정을 위한 공무원 경력의 상당계급 기준표’에 따르면 경위는 6급 공무원에 준하는 보수를 받는다.
이에 따라 고위직 승진에도 훨씬 유리하다. 6월 기준 전체 경찰 13만2421명 중 경찰대 출신은 2.5%(3249명)이지만 총경 이상 고위직(754명) 가운데 62.2%(469명)를 차지하고 있다. 순경 출신 고위직은 11.7%(88명)에 불과하다.
군 사관학교 졸업생도 소위로 임관하지만 군은 장교와 부사관의 역할과 책임이 분리돼 있다. 그러나 경찰은 순경, 간부 후보생, 경감 특채 등 입직 경로를 막론하고 11개로 이뤄진 계급 체계를 공유하는데도 출신 대학에 따라 출발선을 달리 긋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 ‘특혜론’의 주장이다.
경찰대 설립 당시와 달리 이제는 경찰대를 통하지 않고도 우수 인재를 경찰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엔 순경 공채 합격자 대다수가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 재학 중 합격하고 있으므로 진급 시험, 현장 평가 등을 통해 지휘관을 양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대 출신은 초년부터 지방경찰청 등에서 행정 업무를 하며 시민들을 직접 대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매년 국가 예산을 수백억 원씩 들여 행정가를 양성하기보단 현장에서 역량을 보인 직원들에게 지휘관이 될 길을 열어주는 게 경찰 조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경찰대 출신 가운데서는 이 장관의 ‘불공정’ 발언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 경찰대는 애초에 경찰 초급 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특수대학인데, 졸업 후 간부급에 임용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것이다. 경찰대 출신 C 경감은 “전문 인력 양성이란 설립 취지 자체는 군 사관학교나 매한가지인데 경찰대만 불공정하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경찰대 개혁론’ 제기가 최근 정부가 권한이 커진 경찰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과 무관치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 장관이 행안부 경찰국 신설에 대해 경찰에서 이견이 분출되자 경찰대 ‘특혜’를 언급한 것을 보면 의도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라며 “경찰대 졸업생의 경위 임용 문제는 국회에서 논의되는 게 옳지 장관이 거론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미 경찰대 출신의 고위직 승진이 예전보다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경찰대 출신 경정은 “총경 정원이 500명가량이고 총경 계급 정년이 11년이니, 1년에 40∼50자리 정도가 나는 셈”이라며 “경찰대 기수별 졸업 인원은 100∼120명이니 절반 이상이 총경 승진을 못 한다”라고 했다. 한 총경은 “총경 승진을 못 할 경우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은퇴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20, 30대 경찰대 출신 중에선 일찌감치 이직을 고려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경찰대 출신 경찰 가운데 의무복무 6년을 채우지 않은 채 국가로부터 지원받았던 학비를 반환하고 조기 퇴직한 경찰은 159명이다. 같은 기간 경찰대 입학생(940명)의 16.9% 수준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한 뒤 변호사 자격을 얻어 로펌 등으로 이직을 노린다는 것이 경찰대 출신 경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사법시험준비생모임(사준모)에 따르면 올해 기준 로스쿨에 재적 중인 경찰대 출신은 196명에 이른다.
‘경찰대 특혜론’을 계기로 경찰 간부 충원 시스템 전반을 점검해 전문성과 치안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관련 논문에 따르면 영국과 미국은 경찰대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다. 미국은 모든 경찰이 순경으로 입직한 뒤 현장 평가, 승진 시험 등을 통해 간부를 선별한다. 간부가 되려면 현장에서 오래 경험을 쌓는 것이 필수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동일 계급에서 수사부서를 행정부서보다 우대하고, 순경 때 수사부서에서 근무하지 않으면 승진 뒤 수사부서에 배치되기도 힘들다. 영국은 순경으로 근무하다가 ‘고속승진 프로그램’에 참여해 합격하면 간부급까지 빠르게 승진할 수 있게 해 관리자의 연령이 고령화되지 않도록 운영한다.
반면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경찰대 제도가 있다. 독일은 주(州) 경찰과 연방 경찰이 나뉘어 있는데, 16개 주 중 절반가량이 경찰대를 운영한다. 3∼4년 동안 전문적 교육을 받고 학위 취득과 함께 경위로 임용된다.
그러나 경찰대의 위상은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졸업 인원이 한 해 100명 안팎인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3년 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이 약 1만3000명 수준이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독일은 경찰대를 졸업한 경위들이 현장에서 순경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한다”라며 “최근 주별로 경찰대 모집을 확대해 경위급 임용을 늘리고, 치안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추세”라고 했다. 조직 내 경찰대 졸업생의 비중이 한국에 비해 매우 높으므로 ‘소수’가 고위직을 독점한다는 논란이 일 여지도 적다.
경찰대 개혁 논의가 다소 성급하게 진행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편입제도에 따른 첫 경찰대 편입생은 2023년 입학이 예정돼 있다. 군 전환복무 폐지로 군 복무를 하게 되는 경찰대 첫 기수는 2019년 입학한 39기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대에 주어진 혜택을 줄이는 정책이 도입된 지 얼마 안 됐다”라며 “정책 효과가 현장에서 나타난 뒤에 새로운 개혁 정책에 대해 논의를 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지난해 3월 충남 아산시 경찰대에서 열린 신임 경찰 경위·경감 임용식에서 임용자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 지난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특정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위로 임용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언급하면서 ’경찰대 특혜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동아일보DB
《“경찰대 출신의 고위직 독점 때문에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 있는 직원들이 승진에서 배제돼 온 건 사실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순경 출신 A 경정)“경찰대 출신을 고위직에서 배제하거나 줄이면 우수 자원이 이탈해 조직 역량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경찰대 출신 B 총경)
최근 ‘경찰대 특혜론’과 ‘개혁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특정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이 20년 걸려야 가는 자리(경위)부터 시작하는 건 불공정하다”고 지적하면서부터다.》
○ “경찰대 졸업했다고 출발선 달라서야”
그러나 ‘경찰대 졸업 뒤 경위 임관’은 그대로다. 순경 출신은 입직 20년 차를 전후해 경위로 승진하는 것이 보통인 데 비해 경찰대를 졸업하면 처음부터 순경보다 3계급 높은 경위로 임관하게 된다. 인사혁신처의 ‘호봉 획정을 위한 공무원 경력의 상당계급 기준표’에 따르면 경위는 6급 공무원에 준하는 보수를 받는다.
군 사관학교 졸업생도 소위로 임관하지만 군은 장교와 부사관의 역할과 책임이 분리돼 있다. 그러나 경찰은 순경, 간부 후보생, 경감 특채 등 입직 경로를 막론하고 11개로 이뤄진 계급 체계를 공유하는데도 출신 대학에 따라 출발선을 달리 긋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 ‘특혜론’의 주장이다.
경찰대 설립 당시와 달리 이제는 경찰대를 통하지 않고도 우수 인재를 경찰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엔 순경 공채 합격자 대다수가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 재학 중 합격하고 있으므로 진급 시험, 현장 평가 등을 통해 지휘관을 양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대 출신은 초년부터 지방경찰청 등에서 행정 업무를 하며 시민들을 직접 대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매년 국가 예산을 수백억 원씩 들여 행정가를 양성하기보단 현장에서 역량을 보인 직원들에게 지휘관이 될 길을 열어주는 게 경찰 조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 “이미 조직 떠나는 경찰대 출신 많다”
반면 경찰대 출신 가운데서는 이 장관의 ‘불공정’ 발언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 경찰대는 애초에 경찰 초급 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특수대학인데, 졸업 후 간부급에 임용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것이다. 경찰대 출신 C 경감은 “전문 인력 양성이란 설립 취지 자체는 군 사관학교나 매한가지인데 경찰대만 불공정하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경찰대 개혁론’ 제기가 최근 정부가 권한이 커진 경찰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과 무관치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 장관이 행안부 경찰국 신설에 대해 경찰에서 이견이 분출되자 경찰대 ‘특혜’를 언급한 것을 보면 의도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라며 “경찰대 졸업생의 경위 임용 문제는 국회에서 논의되는 게 옳지 장관이 거론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미 경찰대 출신의 고위직 승진이 예전보다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경찰대 출신 경정은 “총경 정원이 500명가량이고 총경 계급 정년이 11년이니, 1년에 40∼50자리 정도가 나는 셈”이라며 “경찰대 기수별 졸업 인원은 100∼120명이니 절반 이상이 총경 승진을 못 한다”라고 했다. 한 총경은 “총경 승진을 못 할 경우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은퇴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20, 30대 경찰대 출신 중에선 일찌감치 이직을 고려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경찰대 출신 경찰 가운데 의무복무 6년을 채우지 않은 채 국가로부터 지원받았던 학비를 반환하고 조기 퇴직한 경찰은 159명이다. 같은 기간 경찰대 입학생(940명)의 16.9% 수준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한 뒤 변호사 자격을 얻어 로펌 등으로 이직을 노린다는 것이 경찰대 출신 경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사법시험준비생모임(사준모)에 따르면 올해 기준 로스쿨에 재적 중인 경찰대 출신은 196명에 이른다.
○ 승진에 현장 경험 중시하는 영미
‘경찰대 특혜론’을 계기로 경찰 간부 충원 시스템 전반을 점검해 전문성과 치안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동일 계급에서 수사부서를 행정부서보다 우대하고, 순경 때 수사부서에서 근무하지 않으면 승진 뒤 수사부서에 배치되기도 힘들다. 영국은 순경으로 근무하다가 ‘고속승진 프로그램’에 참여해 합격하면 간부급까지 빠르게 승진할 수 있게 해 관리자의 연령이 고령화되지 않도록 운영한다.
반면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경찰대 제도가 있다. 독일은 주(州) 경찰과 연방 경찰이 나뉘어 있는데, 16개 주 중 절반가량이 경찰대를 운영한다. 3∼4년 동안 전문적 교육을 받고 학위 취득과 함께 경위로 임용된다.
그러나 경찰대의 위상은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졸업 인원이 한 해 100명 안팎인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3년 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이 약 1만3000명 수준이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독일은 경찰대를 졸업한 경위들이 현장에서 순경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한다”라며 “최근 주별로 경찰대 모집을 확대해 경위급 임용을 늘리고, 치안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추세”라고 했다. 조직 내 경찰대 졸업생의 비중이 한국에 비해 매우 높으므로 ‘소수’가 고위직을 독점한다는 논란이 일 여지도 적다.
경찰대 개혁 논의가 다소 성급하게 진행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편입제도에 따른 첫 경찰대 편입생은 2023년 입학이 예정돼 있다. 군 전환복무 폐지로 군 복무를 하게 되는 경찰대 첫 기수는 2019년 입학한 39기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대에 주어진 혜택을 줄이는 정책이 도입된 지 얼마 안 됐다”라며 “정책 효과가 현장에서 나타난 뒤에 새로운 개혁 정책에 대해 논의를 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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