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던 경찰국 신설에 대해 일선 경찰들이 전국 경찰회의 개최를 예고하면서까지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 개혁의 핵심 방안으로 경찰대 폐지 등을 꼽으면서 반발이 수그러진 모양새다. 이를 두고 경찰 내에서 경찰대 출신끼리 밀고 끄는 폐쇄적 문화가 자리 잡은 데 대한 대다수 경찰들의 반감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현 정부가 잘 파고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대 폐지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매 정권마다 논의됐던 사안이지만, 현 정부가 경찰대를 “특정 세력”으로까지 몰아가며 이 이슈를 다시 꺼내들었다는 점에서 조만간 개혁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경찰 조직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부정적 시선은 지난해 3월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등 검경수사권 조정이 본격화되던 때부터 제기돼 왔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언론과의 첫 공식 인터뷰에서 “검찰 수사 없이도 경찰이 충분히 수사할 수 있다거나, 검찰이 개입하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실증적 결과가 제시되려면 충분한 검증의 시간이 필요” “경찰이 주로 수사를 맡더라도 원칙적으로는 검경이 한 몸이 돼 실질적 협력관계를 갖춰야 한다” 등의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한마디로 경찰에 힘을 실어주는 것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사법개혁 부문에서 기존 검찰 개혁을 뒤집는 공약들을 제시했고, 집권 후 비대해진 경찰 권력에 대한 문제를 적지 않게 거론했다. 경찰 한 관계자는 “지난 정권에서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상당히 많은 권한을 가져왔으니 본인은 아니더라도 검찰 내 대통령 측근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를 되돌려야 한다는 논의가 지속해서 있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경찰 안팎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인식이 최근 ‘경찰대 폐지’를 통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 경찰대가 주도”
최근 이상민 장관이 말한 것처럼 경찰대 출신들은 졸업과 동시에 경위로 임관한다. 하지만 경위로 바로 임관하는 데에 경찰대 출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 간부들의 출신을 살펴보면 사법고시와 외무고시, 행정고시 출신들도 제법 있다. 일례로 16대 경찰청장을 지낸 조현오 전 청장의 경우도 외무고시 출신이며, 국민의힘 내 경찰 출신 의원인 권은희 의원은 사법고시를 거쳤다. 경찰 간부후보생들도 시험을 통과하면 1년의 교육을 받은 후 경위로 임관한다. 이렇게 다양한 출신들이 간부로 경찰 생활을 시작하지만, 현재의 경찰 수뇌부 중에서 경찰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청장이 비경찰대 출신이었을 때만 해도 내부적으로 경찰대 중심 문화를 비판하는 모습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경찰대 1기 졸업생들이 청장 후보군에 오르고, 실제 경찰대 출신 청장들이 배출되면서 경찰대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내부적으로 확산됐다.
경찰대 출신들이 점차 수뇌부에 많아지고 요직을 차지하면서 이들의 의제는 자연스럽게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옮겨 갔다.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본격화된 검찰 개혁 여론을 등에 업고 검경수사권 조정을 주장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이를 보다 구체화했다. 실제로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부터 경찰 내부에서 검경수사권 조정 논의를 주도했던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대다수가 경찰대 출신이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검경수사권 조정협의체 자문위원회’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각종 협의체, 자문기구 등이 여럿 있었는데 여기에 90% 이상이 경찰대 출신이었고 지금의 경찰이 수사 개시·진행권, 수사 종결권을 받아내는 데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3년 경찰 수사권 독립을 위해 신설된 경찰청 수사제도개선팀(현 수사구조개혁단)만 해도 민갑룡·황운하·김재규·이형세·이은애 등 경찰대 출신 인사들이 팀장(현 단장)직을 도맡아 관계 업무를 주도했다.
경찰대 출신들이 조직 내에서 주류로 자리 잡다 보니 기업이나 법조계 그리고 학계에서도 경찰대 출신 인사들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일종의 경찰대 출신에 대한 ‘전관예우’ 문화가 생긴 것이다. 국내 경찰 관련 주요 학회로 꼽히는 형사법 관련 학회만 보면 크게 한국형사법학회·한국형사소송법학회·한국비교형사법학회·한국형사정책학회·한국피해자학회 등 총 5개의 학회가 있는데, 이들 학회의 회장·부회장직 대부분을 경찰대 출신 교수가 도맡고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던 한 인사는 “이들이 결국 검경수사권 조정 등과 관련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의 학술적 근거를 앞세워, 편향된 연구 결과나 자료를 조직적으로 발간한다”며 “경찰청에선 이런 교수진에게 연구 용역을 몰아 돈을 준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연구 용역 발주 대상, 연구 결과물을 따져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여타 경찰 관련 학회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언론에서 검경수사권 조정 필요성이나 경찰대 존립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도 결국 경찰대 출신이 대부분이다.
여기엔 기업들이 경찰 수사나 법적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이들을 대거 기용한 점도 영향을 미친다. 과거 검찰 출신들이 기업 법무팀이나 대관 업무 등으로 옮기는 일이 많았다면 지금은 경찰대 출신들의 이동이 더 크게 늘었다. 한 기업 대관팀 인사는 “경찰대 출신들이 일선 경찰서에서 수사나 정보과장 등을 맡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경찰대 출신들을 영입하면 일선 서에서 수사하는 것에 대해 보다 대응이 수월한 측면이 있다”며 “특히 건설이나 노사 관계 등에 대해서 일선 서에서 수사를 많이 하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찰대 출신들이 인사나 노무 관련 부서로 들어와 관련 자격증을 따서 근무한다”며 “아무래도 경찰 인맥에 따른 정보력을 통해 작게는 회사 관련 집회 신고부터 크게는 수사 관련 내용까지 알아봐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1년 동안만 살펴봐도 실제 기업으로 옮겨 간 경찰대 출신 인사는 적지 않다. 삼성전자 고문직으로 옮긴 최해영(치안정감) 전 경찰대학장,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이사장으로으로 간 이용표(치안정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이 대표적이다. 법조계에선 법무법인 세종, 태평양 등 굵직한 로펌들이 비슷한 이유로 이른바 경찰수사대응팀 등을 설립해 경찰대 출신 간부를 대거 영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현 정부의 ‘경찰대 손보기’는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크다.
이처럼 경찰대가 경찰 권력 비대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고, 수사권과 관련해서는 검찰, 다른 업무 쪽에서는 변호사 등 사법고시 출신들과 영역이 겹치다 보니 법조계 전반에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검사들의 경우 경찰대 출신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수사 역량을 갖고 있다는 경찰 내부의 분위기에 대해 상당히 불쾌감을 느꼈던 측면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사 출신이 대통령이 됐고, 변호사가 행정안전부 장관이 된 이상 경찰대 개혁은 당연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장은 “30여년 전부터 검찰 쪽에선 수사가 자신들의 지휘 영역이란 점을 강조했다. 경찰대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며 “현 정부의 경찰대 폐지가 정치적으로 읽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인지 행안부는 지난 8월 2일 출범한 경찰국의 직원 16명 중 12명(75%)을 비경찰대 출신 인사로 구성한 상황이다.
경찰대 반발 이유는 ‘인사권’
지금의 정부 의지대로면 경찰대 또한 과거 국립세무대학의 전철을 밝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세무대는 1981년 세무 인력 양성을 위해 설립됐다. 당시 세무대 졸업생들은 재경부·국세청·관세청 등에 8급 공무원으로 다수 특채됐는데, 지금의 경찰대처럼 강한 유대감을 기반으로 한 파벌 문제가 불거지면서 2001년 결국 폐교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학비 전액 지원, 9급으로 채용되는 일반대학 출신 공채 공무원과의 형평성 문제 등도 끊임없이 불거졌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내부 고발이 거의 잘 이뤄지지 않는 곳이 있다면 바로 국세청이다. 문제가 불거지면 누군가 한 명이 총대를 메고 나머지는 그 한 명이 바깥에서 먹고살 수 있게끔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식으로 일단락시켰다. 세무대 카르텔에서 비롯된 것들인데, 20년 전 세무대가 폐지됐는데도 세무 쪽이 이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찰대가 현존하는 경찰 조직은 얼마나 더 극심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일련의 정부 조치를 두고 경찰 측에선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여는 등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지만, 실제 경찰 내에선 경찰대 폐지 등에 동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경찰대 출신들이 내부 인사권을 가진 총경 이상의 고위직 61.6%를 독점하고 있는 데다, 비경찰대 출신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을 구심점이 없다 보니 이렇다 할 찬성 여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일선 경찰 관계자들의 주된 이야기다. 올 6월 기준 전체 경찰 13만2421명 중 경찰대 출신은 2.5%(3249명)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대를 주축으로 한 인사들이 경찰국 신설을 비롯해 현 정부와 대립하는 이유는 결국 ‘인사권’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경찰국 신설 등의 권고안을 만든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에도 참여했던 앞서의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원회 논의 당시 경찰 쪽에서 ‘그럼 경찰국 국장 인사를 경찰 출신으로 해달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를 문서화하진 않았지만, 행안부도 사실상 30여년간 경찰 조직을 운영해본 적 없으니 어느 정도 동의하긴 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이 나오는 건 결국 지금까진 경찰이 경찰대 중심으로 서로 끌어줬는데 자신들이 행안부로 넘어가면 이 고리가 끊어질 것을 우려하는 거라 본다.” 지난 7월 23일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 회의에 참석한 56명의 총경 중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을 비롯한 최소 40명도 결국 경찰대 출신이었다. 온라인을 통해 회의에 참석한 140여명 중 상당수도 경찰대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전 정부에서 추진한 경찰대 개혁이 시행도 되기 전에 경찰대 폐지부터 거론하는 건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8년 문재인 정부는 경찰대학 개혁 추진위원회 계획에 따라 ‘경찰대 모집 정원을 100명에서 50명원으로 축소’ ‘일반대학생 및 재직 경찰관 대상 편입 허용’ ‘학비지원·병역특례 등 특혜 축소’ ‘기존 12%로 제한하던 여학생 모집 비율 폐지’ 등을 결정한 바 있다. 앞서의 임준태 학장은 “올해부터 이를 적용한 입학 제도가 시행된다. 경찰대의 공정성과 폐쇄성 문제 해결을 목표한 것들로 어느 정도 정책 시행 효과를 따져본 뒤 폐지 여부를 논의해도 늦지 않는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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