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2022년 민주주의 위기의 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2년 이후 세계의 앞날을 전망한 최근 특집 호에서 ‘민주주의 대 전제 정치’의 대결을 2022년 주목해야 할 10개 트렌드 중 첫 번째로 꼽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 시각)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막연설에서 “올해 프리덤하우스는 세계의 자유가 15년 연속 후퇴했다고 보고했다”며 “이것이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계를 둘러보면 어느 틈엔가 우리가 당연시하게 된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전제주의 국가들은 인공지능과 안면 인식 같은 첨단 기술로 자국민을 옥죄는 한편,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침투해 여론을 교란하는 사이버 작전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것이란 우려도 계속 제기된다.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독재자들로부터의 외부 압박” 외에 “사회적 분열과 정치적 양극화의 불꽃을 부추기는 목소리들”도 자유를 위협한다고 말했다. 외부의 위협만큼 자유민주주의 내부의 침식도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분열된 미국 사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만,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이 있다고 본다.
한국인들의 자유와 한국 사회의 민주적 원칙도 여러 방면에서 시나브로 잠식돼 왔다. 자유·민주의 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가 최근 드러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무차별 통신 자료 조회라고 생각한다. 외신 기자를 포함한 언론인들의 통신 자료와 학회 단체대화방 등을 광범위하게 조회한 것이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범죄를 척결’한다는 공수처 설치 목적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알 수 없다. ‘수사상 필요’란 말 한마디면 별 한계 없이 수사기관이 통신 자료를 조회할 수 있게 돼 있는 법체계 자체에 의문이 느껴진다.
이번 일에는 그저 공수처가 누구를 겨냥했고, 무엇을 의도했나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비밀과 자유, 그리고 언론의 자유처럼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들이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의 혁신으로 국가나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개개인 생활의 내밀한 정보까지 손쉽게 수집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정보 수집과 이용을 제한하려는 의식적이고 제도적인 노력이 절실해졌다.
지난 7월 미국 법무부는 언론인의 취재 활동과 관련된 통신 자료의 조회를 금지했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전국 검사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이 우리 민주주의의 기능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2022년에는 우리도 이런 정도의 정부를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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