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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박근혜 정부 잡은 직권남용 칼, 이제 文정부를 겨누다

[주간조선]

박혁진 기자

입력 2020.12.06 05:40

 

 

 

 

photo 뉴시스

정확한 통계가 나와 있지 않지만 법원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직권남용) 판례가 많이 형성된 시기로는 2017년부터 2018년 사이가 거론된다.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넘어가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 시기 이른바 ‘적폐수사’라는 이름으로 박근혜 정권 인사들에 대한 박영수 특검의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졌다. 현 여권에서는 이 수사가 문재인 정부 출범 전에 이뤄진 것이라면서 선을 긋고 있지만, 박영수 특검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추천한 인사였다. 박 특검이 수사팀장으로 임명한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도 결국 현 정권에서 중용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 여러 혐의로 기소됐지만 특검이 공통적으로 적용한 혐의가 바로 직권남용이었다. 우 전 수석의 경우 검찰이 적용한 19개의 범죄사실 중 직권남용 관련 혐의만 11개였다. 정권이 바뀌고 친정권 체제로 검찰 조직이 정비되면서 직권남용은 더 빈번하게 적용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역시 기소된 여러 혐의에 직권남용이 포함됐다.

김관진의 직권남용과 비슷하게 흘러가

형법 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그 상대방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할 때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의 특성상 정당한 재량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적용 요건이 엄격했다. 또한 직권이나 남용, 의무 없는 일, 권리 행사 방해의 개념이 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재판부마다 판단이 엇갈렸다. 따라서 이전까지 직권남용은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던 범죄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진행됐던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직권남용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됐다. 적폐수사와 직권남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받아들여졌다. 물론 앞서 언급한 모든 인사들의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된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직권남용 혐의는 무죄가 나왔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 역시 상당 부분 무죄가 인정됐다. 하지만 공무원들에게는 기소 자체가 큰 부담인 만큼 직권남용 혐의는 실존하는 처벌조항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치와 사법(司法)은 원칙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법도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과 법원이 휘두른 직권남용이란 칼로 권력의 기반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검찰이 직권남용이란 녹슨 칼을 휘두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줬고, 그 결과 오히려 검찰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됐다.

역설적으로 그 칼은 이제 문재인 정부를 향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감찰하고 직무를 정지시키는 과정에서 일련의 행위들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결국 그 배후에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솟아나고 있다.

윤석열 총장 징계를 놓고 현재 돌아가는 상황은 절대적으로 추 장관에게 불리하다는 분석이 많다. 과거 법원이 직권남용을 유죄로 판단했던 판례와 이번 사태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0월 2심에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유죄를 받은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사례다. 김 전 장관의 경우 두 건의 사안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하나는 국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수사를 방해한 것, 또 다른 하나는 군무원 채용 시 특정 지역 출신을 배제하라는 지시였다. 1심과 2심 법원 모두 전자는 유죄, 후자는 무죄로 판단했다. 법원이 앞선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것은 김 전 장관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목적으로 무리하게 지시를 내린 것이 부당한 직권 행사로 봤기 때문이다.

추 장관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 장관과 그 측근들은 윤 총장을 감찰하는 과정에서 이미 무리수를 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추 장관의 측근인 박은정 감찰담당관의 경우 직속상관과 부하를 패싱하면서까지 감찰과 수사 의뢰를 주도했다.

법무부 감찰 규정은 ‘감찰담당 직원이 사정활동을 통하여 수집한 자료는 신속히 감찰관에게 서면으로 보고하여야 한다’(제11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박 담당관이 감찰을 진행했다면 이를 류혁 법무부 감찰관에게 서면으로 보고했어야 하는데, 윤 총장에 대한 감찰에서는 이 과정이 통째로 생략된 것이다. 또 감찰 규정에는 ‘감찰 결과의 언론 공표 여부는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감찰위원회 또는 감찰관의 의견 등을 종합하여 최종 결정한다’(제22조 4항)고 돼 있는데 추 장관은 이 과정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 담당관의 직속상관인 류 감찰관은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발표가 나오기 하루 전까지도 감찰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박 담당관은 이에 대해 “보안 문제 때문에 추미애 장관의 지시에 따라 류혁 법무부 감찰관에게 관련 절차를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박 담당관이 사실상 직권남용죄를 자백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장관 권한 불법 행사했다면 적용 가능

지난 12월 1일 열린 감찰위 조사에는 박 담당관 밑에 있던 이정화 대전지검 검사도 참석했다. 이 검사는 앞서 검찰 내부망을 통해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성립이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최종보고서에는 빠졌다고 폭로한 인물이다. 이 검사는 이날 박 담당관의 지시를 받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성립이 어렵다는 부분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박 담당관은 “삭제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지만 기록 공개 요구는 거부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김관진 전 장관의 경우처럼 특정 사건을 왜곡하기 위해 무리한 지시를 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주원의 정재욱 변호사는 “검사징계법 제7조에 따라 검찰총장인 검사에 대한 징계는 법무부 장관이 청구하여야 하고, 같은 법 제8조에 따라 법무부 장관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징계혐의자에게 직무집행의 정지를 명할 수 있다”며 “이에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처분은 검사징계법에 따라 법무부 장관의 권한 범위 내에 있으니 추 장관이 그 권한을 불법하게 행사했다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정 변호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사유가 허위이거나 과장되어, 실질적으로는 그 사유가 성립하지 아니하며, 직무집행의 정지를 할 필요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알면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처분을 한 것이라면 이는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직권남용 덫에 걸리느니 사표 내겠다

법조계에서는 윤 총장이 서울행정법원에 신청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한 재판부가 이미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법원의 결정문을 보면 “검사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 권한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 특히 검찰청이 소속된 법무부의 장관으로부터도 최대한 간섭받지 않고 행사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또한 법원은 “행정청(법무부 장관)에 재량이 부여돼 있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재량권의 일탈·남용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언급한 사법 심사라는 것은 결국 추 장관의 행위가 직권남용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 변호사 역시 이 부분에 대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직무집행정지는 재량으로 주어져 있기는 하나, 동 직무집행정지는 징계혐의가 있음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재량권이 무한히 인정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검찰총장의 지위와 역할, 직무집행정지 때의 파급효과 등을 고려하면 그 재량이 반드시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미”라며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는 매우 무리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고 따라서 이러한 점 등을 근거로 직권남용이 성립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윤 총장 역시 추 장관이 지시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확신을 갖고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은 이른바 최순실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있으면서 사실상 전 정권 인사들에게 적용했던 직권남용의 법리적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직권남용 혐의를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 등에게 적용하며 이들의 구속까지 이끌어냈다. 윤 총장의 변호인인 이완규 변호사 역시 이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해 5월 한국범죄방지재단의 학술강연회에서 ‘직권남용죄의 성립요건’이란 논문을 발표하며 “직권과 남용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게 인정돼 정권 교체기에 정치적 악용의 소지가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추 장관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검찰 내 인사들조차 이번 조치에 반기를 드는 것 역시 직권남용과 무관하지 않다. 법무부에서는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문제 삼아 사표를 낸 데 이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측근인 김욱준 1차장검사도 12월 2일 사의를 밝혔다. 법무부 감찰위와 법원이 모두 윤 총장 징계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상황에서 자칫 징계 과정에 몸을 담았다가는 직권남용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분위기가 법무부와 검찰 안팎에 퍼져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법무부와 검찰의 추 장관 측 인사들이 줄지어 윤 총장 축출 시도에 선을 긋는 것도 이런(직권남용) 법률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며 “추 장관 권력남용의 공범이 되어 감옥에 가느니 차라리 사표를 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법적 책임으로 번질 수도

이번 사태가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법적 책임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추 장관의 일련의 행동은 대통령의 묵시적 동의 없이는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정황이 다수 드러나고 있다. 고기영 전 차관 사퇴 후 곧바로 후임 차관을 인선한 점이나 추 장관이 대통령과 독대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이 있는 곳을 찾아 검찰개혁 의지를 다진 것들이 그 방증으로 꼽힌다. 문 대통령이 이용구 신임 법무부 차관을 임명하면서 “윤 총장 징계위에 참석하지 말 것”을 지시하며 징계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