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평론

[송평인 칼럼]문재인 정권 하는 짓, 레닌 때와 닮았다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20-12-02 03:00수정 2020-12-02 11:49

 

검사의 상식과 적법절차 요구를 대통령은 ‘집단이익’으로 매도
정권 말 안 따르고 시비 가리는 공무원 다 사보타주로 모는 것
공수처의 예고편이나 다름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유사한 드문 선례가 레닌의 체카다. 체카는 ‘전(全) 러시아 특별위원회’의 이니셜인 ‘ChK’를 러시아어로 읽은 것이다. 레닌이 기존의 형사사법체제에서 벗어나 만든 수사기관으로 기소와 재판까지 좌지우지했다. 이후 모든 공산권 국가가 모델로 삼았다.

체카에는 정확히 말하자면 ‘전 러시아 특별위원회’ 앞에 ‘반(反)혁명과 사보타주 분쇄를 위한’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 반혁명과 나란히 사보타주가 있다.

레닌이 정권을 장악하고 직면한 곤란한 상황 중 하나가 공무원의 반발이었다. 사보타주는 태업(怠業) 파괴 등의 작업 방해공작을 말한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면서 일부러 느릿느릿 업무를 처리하거나 철로를 끊어 열차가 못 다니게 하는 것이 전형적인 사보타주다. 체카의 눈에는 레닌의 혁명적 공약을 공무원이 상식이나 적법성을 따지면서 회피하거나 시비를 거는 것도 사보타주였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대통령이 월성 원전 1호기 폐쇄를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담당 부처 공무원이 폐쇄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면 사보타주가 된다. 담당 부처 공무원이 장관의 “너 죽을래”라는 말에 엉터리 근거를 만들었는데 그 사실을 감사원이 밝혀내면 사보타주가 된다. 감사 결과를 토대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그것은 엄청난 사보타주가 된다.

 

 

‘반혁명과 사보타주 분쇄를 위한’이란 수식어는 다시 ‘반혁명과 사보타주와 투기 분쇄를 위한’이란 수식어로 바뀌었다. 투기란 말은 레닌이 반(反)시장적 정책을 펴다 곡물값이 오르자 쿨라크(Kulak·부농)가 곡물을 숨겨놓았다고 보고(실은 그렇지 않았다) 곡물을 뜯어내기 위한 명분으로 사용됐다. 시대가 달라도 같은 생각에서는 같은 행동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이 잘못해 부동산 대란이 일어나자 투기세력을 잡겠다며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추진 중이다.

 

러시아의 진정한 혁명은 1917년 2월 혁명이었다. 2월 혁명으로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레닌은 그해 10월 쿠데타로 임시정부를 전복한 후에도 임시정부가 예정한 11월 총선은 치르기로 했다. 레닌을 지지한 러시아 인민들은 볼셰비키만이 총선과 제헌의회를 보장할 세력이라는 기대를 걸었다. 레닌은 언론을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4분의 1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그러자 이듬해 1월 제헌의회가 소집된 날 회의장을 청소해야 한다는 이유로 의장을 쫓아낸 후 의회의 문을 영원히 닫아버렸다. 그날 4만 명의 시민과 공무원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레닌 정권에 의한 첫 유혈진압이 이뤄졌다.

최근 영국의 양자물리학 천재 폴 디랙의 삶을 다룬 과학책을 보다가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디랙과 가까운 이고리 탐이란 소련 과학자가 있었다. 그는 대학을 가기 전부터 마르크스주의자로 과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볼셰비키를 위한 시간제 활동가로 일했다. 그러나 제헌의회가 폐쇄되고 그해 여름 다른 모든 정당이 불법화되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끼고 과학에만 몰두했다. 적지 않은 러시아인들이 혁명의 배반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있다가 배반을 당한 것이다.

한국의 민족해방(NL) 자주파 세력은 러시아 중국 북한의 혁명사를 깊이 연구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 현실에 맞는 자신들의 집권 도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이 ‘공수처’다.

문 대통령은 그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와 징계청구 철회를 요구하는 검사 대부분의 의견을 우회적으로 ‘집단이익’으로 매도했다. 최소한의 상식적인 법무행정과 수사와 감찰의 적법한 절차에 대한 요구를 사실상 사보타주라고 폄하한 것이다.

 

집권 초 특활비에서 나온 ‘100만 원 돈봉투’를 트집 잡아 서울중앙지검장을 몰아냈다. 지금은 대리인인 추미애 법무장관을 통해 ‘사찰 같지도 않은 것’을 사찰로 몰아 검찰총장을 쫓아내려 한다. 이유라도 이유 같으면 그나마 봐주겠으나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 체카가 했던 일 중 하나가 바로 그런 사소한 트집 잡기로 공무원을 몰아내고 가두는 것이었다. 현 사태는 공수처가 설치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여주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금태섭 전 의원은 “우리가 광장에서 외친 세상은 이런 모습이 아니다”라고 했다. 촛불혁명을 말하는 모양이다.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영원히 배반당하기 전에 막을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