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7-29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 2) 3)
1) 1905 - 미국의 영화배우 바우(Bow, Clara) 출생
바우(보) [Bow, Clara, 1905.7.29~1965.9.27]
미국의 여배우.
뉴욕 브루클린 출생. 미인 콘테스트를 거쳐 할리우드에 들어가, 단발머리와 짧은 스커트로 쾌활하고 경박한
여자역을 맡았다. 1920년대 후반의 새로운 성적 매력을 지닌, 말괄량이로도 불리는 여배우 타입으로 출연작
《그것 It》(1927)의 원명 그대로 ‘이트 여배우’로 불리며 인기를 모았다.
대표작으로 《날개》(1927) 《함대 입항(艦隊入港)》(1928) 등이 있다.
2) 1983 - 영국의 영화배우 데이비드 니븐(Niven, David) 사망
니븐 [Niven, David, 1910.3.1~1983.7.29]
영국 배우. 스코틀랜드 출생. 윌리엄 니븐 장군의 아들로,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영국군에서 복무하는 등 다양한 일에
종사하다가 1935년 할리우드로 건너갔다. 처음에는 단역으로 출발하였으나 분명하고 신뢰감을 주는 배우로 빠르게
알려졌으며, 특히 가벼운 희극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스플렌더(1935)》 《도즈워스(1936)》에서
처음 단역을 맡았으며, 《새벽 순찰(1938)》 《폭풍의 언덕(1939)》에서 비로소 주연을 맡았다.
그 밖에 《광채(1935)》 《80일간의 세계 일주(1956)》 《분리된 식탁(1958)》
《나바론 요새(1961)》 《나일 강의 살인사건(1978)》 《핑크 팬더의 저주(1983)》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3) 1970 - 이탈리아계 영국의 지휘자, 첼리스트 바르비롤리(Barbirolli, John) 사망
바르비롤리 [Barbirolli, John, 1899.12.2~1970.7.29]
이탈리아 계 영국의 지휘자, 첼로 연주자. 본명은 조반니 바티스타 바르비롤리(Giovanni Battista Barbirolli)로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국으로 이민 온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며, 어머니는 프랑스인이었다.
4세 때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나중에 첼로로 바꾸었다.
10세 때에는 트리니티음악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1912∼1916년에는 런던 왕립음악원에 다녔으며, 관현악단의 첼로 연주자 및 독주자로 활동했고, 20대 중반에는
실내악곡 연주에 몰두했다. 그뒤 오페라로 방향을 돌려 지휘자로 활동하는 데 전념하여 코번트가든과 새들러스
웰스오페라단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고, 영국국립오페라단에도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런던교향악단·스코틀랜드관현악단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1935∼1937년 시즌에는 뉴욕필하모닉의 초빙을 받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의 뒤를 이어 상임지휘자가 되었고, 이 관현악단의 100주년이 되는
1941∼1942년 시즌을 이끌었다.그후 맨체스터의 할레관현악단의 지휘자가 되었으며(1943∼1968),
지휘자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또 휴스턴교향악단(1961∼1967)과 베를린필하모니관현악단(1961∼1970)을
지휘하기도 했다. 1949년 작위를 받았다.
1) 2) 3)
1) 2008 - 미국 항공우주국(NASA) 창립 50돌
1957년 10월4일 옛소련이 인류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 발사에 성공하자 전세계는 경악했다. 가장 당황한 냉전의
맞수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창설법안에 서명한 게
이듬해 7월29일, 지금부터 꼭 50년 전의 일이다.
우주를 향한 탐험에서 미-소 간의 경쟁은 우주의 신비에 대한 원초적 호기심 못잖은 자극제였다. 나사가 창설된 지 채
3년이 안 된 1961년 4월, 러시아는 첫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태운 우주선 발사에 성공하며 또다시 한발 앞섰다.
나사는 20여일 뒤 앨런 셰퍼드를 태운 프리덤 7호 발사에 성공하며 추격에 나섰다. 존 에프 케네디
당시 대통령은 ‘60년대 말까지는 달에 가야 한다’고 다그치며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1969년 7월20일 인류는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올드린은 달 표면에 미국 성조기를 꽂았다. 미국의 ‘역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이륙 직후 폭발하는 악몽을 겪기도 했지만,
나사는 미국의 경제·군사적 이해 속에서 지금껏 인류의 우주탐험을 이끌었다. 나사가 한해 우주 연구에 투자하는 예산은 170억달러에 이른다. <사이언스> 최신호에서 오로라의 신비를 밝혀낸 것도 나사였다. 현재 나사는 2020년까지 달에
다시 우주인을 보내고, 달을 전진기지 삼아 화성에 유인 탐사선을 보내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50돌을 맞은 나사도 도전에 직면해 있다. 현재 27년의 ‘고령’인 우주왕복선들은 2010년이면 운행을 중단한다. 달 탐사를 위한 새로운 왕복선을 제작할 여력이 없어, 향후 5년 정도는 자체 왕복선 없이 지내야 할 상황이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물자를 보급하는 데 러시아의 소유스호를 빌려야 할 형편에까지 이르자, 나사는 일본이 개발 중인 무인 우주화물선 에이치티브이(HTV)의 구입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달에 우주인을 다시 보내는 연구를 5년간 미루고 그 예산을 교육 분야에 투자하기를 희망하는 등 정치·사회적 관심도 예전 같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우주 연구의 방향을 놓고 ‘유인 탐사’와 ‘무인 탐사’ 사이의 갈등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수의 과학자들은 유인 탐사에 쓰이는 현행 예산을 로봇 등 무인 탐사에 쓰면 기후·지질 연구 등에 훨씬 더 유용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받는 유인 탐사 없이 앞으로 우주 개발을 이끄는 것은 힘들다는 반론도 팽팽하다. ‘구글 어스’처럼 우주과학 기술의 상업적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오는 10월 게임 디자이너 리처드 개리엇은 우주 공간에서 의약실험 등 상업적 가치가 있는 연구를 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물론, 중국도 인간을 달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창설 50돌을 앞두고 나사의 마이클 그리핀 국장은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이 곧바로 장부에 수치로 정산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주기 바란다”며 우주를 향한 인류의 꿈이 현재의 나사를 가능케 했음을 상기시켰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한겨레 2008-07-27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301044.html
2) 1957 - 국제원자력기구(IAEA) 발족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1953년 제8회 국제연합 총회에서 제창해 1956년 70개국의 서명을 받아 원자력의
평화이용을 촉진하기 위한 국제기구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1957년 7월 29일 발족됐다.
주요기관으로는 총회와 이사회를 설치했다. 주요임무는
1.원자력의 평화이용을 위한 연구개발과 실용화를 장려 원조하고, 물자-설비시설의 공급에 있어서는
가맹국 상호간의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나아가서는 필요한 독자적인 활동업무를 한다.
2.물질 업무 설비 시설을 제공한다.
3.과학 기술에 관한 정보교환을 촉진한다.
4.과학자 전문가의 교환이나 훈련을 장려한다.
5.제공한 원조가 군사적 목적에 이용되지 않도록 보장조치를 설정하고, 요청이 있으면
국가간의 약속 또는 1국의 활동에 대해서도 적용한다. 6.보건 안전상의 기준을 설정하고, 요청이 있으면
이것을 국가간의 약속 또는 1국의 활동에 있어서도 적용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3) 1960 - 제5대 국회의원 총선거 - 참의원 개원기념, 1960.8.8 발행
1960년 오늘 제5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전국 7천79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과도내각 수반인 허정 총리를 비롯해 유권자의 84%가 투표에 참여했다. 임기 4년의 민의원 233명과
임기 6년의 참의원 58명을 뽑는 선거다.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난 이후 내각책임제에 입각한 제2공화국
개정 헌법에 따라 처음 실시된 7.29총선! 개표 결과 민주당이 민의원에서 175석, 참의원에서 31석을 차지하는 등
민주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또 무소속이 민의원 49명, 참의원 20명 뽑혔다.
헌정 사상 최초로 양원제로 구성된 제2공화국 국회는 이듬해 5.16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해산되고 만다.
1) 2)
1) 1974 - 하원 법사위, 닉슨 대통령의 권력 오용 및 취임선서 위반 관련 탄핵결의안 2항 채택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은 1972년부터 1975년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지칭하는 말로서, 미국의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권력 남용에서 시작하였다. 그 이름은 당시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 본부(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Headquaters)가 있었던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유래한다. 닉슨은 각종 정치적 난관에도 불구하고 2년간 대통령 직에 머물러 있었으나 1974년 8월, "스모킹 건"(smoking gun; '확증'을 의미함)이라 불리는 테이프가 공개됨에 따라 그의 마지막 측근들도 그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미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지 4일 뒤인 1974년 8월 9일, 대통령직을 사퇴하였다.
이로서 그는 미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이 되었다.
1974.07.27 - 하원 법사위,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침입사건 조사방해 관련탄핵결의안 1항 채택
1974.07.29 - 하원 법사위, 닉슨 대통령의 권력 오용 및 취임선서 위반 관련탄핵결의안 2항 채택
1974.07.30 - 하원 법사위, 닉슨 대통령의 하원 소환명령 거부 관련 탄핵결의안 3항 채택
1974.08.09 - 닉슨 대통령 사임
1974.09.08 - 제럴드 포드 대통령, 닉선 전 대통령 사면
2) 1946 - 전승(戰勝) 연합국 대표 21개국 파리서 국제평화회의 개최
제 2 차세계대전 뒤 1946년 7월 29일부터 10월 15일에 걸쳐 연합국 21개국과 독일군 진영에
소속되었던 이탈리아·헝가리·불가리아·핀란드·루마니아 사이의 강화회의로 전후 처리를 논의함.
국사전자교과서 www.history.go.kr
2010 - '2010 대한민국 우표전시회' 개최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본부장 남궁민)는 `2010 대한민국 우표전시회'를 29일부터 8월 2일까지 5일간 서울 코엑스(COEX) A홀 A1에서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올해로 52회째를 맞는 대한민국 우표전시회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최고의 우표전시회로 우수 우표작품 109작품 301틀이 전시된다.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은 전통우취 부문에 출품한 이종구(한국올림픽스포츠우취회)씨의 `왕복엽서'가 차지했다.
국무총리상은 테마틱우취 부문에 출품한 류상범(한국테마클럽)씨의 `날씨 이야기'와 청소년우취 부문에 출품한
안찬국(군산동고1 재학)군의 `항공교통'에 돌아갔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우표.편지가 만나는 멋진 문화세상'으로 다양한 계층이 즐길 수 있는 국민문화축제로 만들고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문화 공간을 제공하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서울=연합뉴스) 박창욱 기자 pcw@yna.co.kr 매일경제 2010.07.27 16:38:32
1981 - 찰스 왕세자-다이애나 결혼
1981년 7월 29일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가 결혼했다.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에든버러
공작 필립 공의 맏아들인 찰스 왕세자는 영국 공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를 다녔으며, 1971~76년 해군 소속으로
여러 곳에서 근무했다. 이후 '영 잉글랜드 스쿨'의 유치원 교사로 있던 다이애나를 만나 1981년 약혼을 발표했다.
결혼식은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1982년 첫 아기인 웨일스 공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 왕자가, 1984년 둘째 헨리 찰스 앨버트 데이비드 왕자가 태어났다. 그러나 활발한 자선활동으로 언론의 초점이 된 다이애나는 찰스와 불화가 깊어지면서 결국 1992년 공식 별거에
들어갔고, 1996년 합의이혼했다. 1997년 다이애나는 연인이었던 '도디' 알 파예드와 함께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1966 -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발표
1962년부터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여러 차례에 걸쳐 추진됨으로써 우리 나라의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하게 되었다.
우선 많은 공장을 건설하였으며 이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나고 수출도 해마다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도로와 항만,
그리고 발전소 등을 만들고 과학 기술의 개발에 힘써 많은 성과를 올렸다. ...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7∼1971)은, 식량 자급화와 산림 녹화, 화학·철강·기계공업의 건설에 의한 산업의 고도화, 7억 달러의 수출 달성, 고용확대, 국민소득의 비약적 증대, 과학기술의 진흥, 기술수준과 생산성의 향상에
그 목표를 두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소요자금 9,800억 원 중 국내자금이 6,029억 원,
외자가 14억 2100만 달러였다. 이 중 6억 달러가 1965년의 한일국교 정상화로 들어오게 되었다.
1958 - 미 항공우주국(NASA) 설립
[책갈피 속의 오늘]1958년 NASA 설립법 통과
1957년 10월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로 쏘아 올렸다. 지름 58cm, 무게 83.6kg에
불과한 이 인공위성으로 ‘우리가 과학기술 분야의 선두’라는 미국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 놀라움에 동그래진 눈
뒤에는 핵무기를 실은 미사일이 미국으로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었다. 소련의 우주개발 행보에 자극을 받은 미국은 항공우주 투자를 대대적으로 늘리기로 했다. 오늘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설립 50주년을 맞는 날이다. 1958년 7월 29일 의회는 NASA 설립을 명시한 ‘국가 항공우주법’을 통과시켰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간
국가 자존심을 건 ‘우주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60년대 달성 목표는 유인 우주비행. 소련이 먼저 성공했다. 1961년 4월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 1호가
108분간 지구를 일주하고 돌아왔다. 미국은 이에 질세라 같은 해 5월 첫 유인 우주선 프리덤 7호를 올려 보냈다.
1961년 5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달에 인간을 보내고 이들을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어느 나라가 먼저 달에 발을 딛는가가 다음 관문이 됐다. 소련은 1966년 무인 탐사선 루나
9호를 세계 최초로 달에 착륙시켰다. 미국은 맹렬히 뒤쫓아 갔다. 그리고 1969년 7월 아폴로 11호를 쏘아 올려
인류 최초로 달에 닐 암스트롱을 내려놓았다. 이후 미국이 우주 활동에서 주도권을 잡았다는 평가다.
NASA가 우주 탐사를 시작한 뒤 태양계와 우주의 생생한 정보를 숱하게 생산해냈다. 달의 정체도 비교적 상세히
밝혀졌고 화성과 토성도 숨겨진 모습을 드러냈다.
우주 기술은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국한되지 않았다. NASA는 우주비행사들의 식수와 음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수기와 전자레인지를 개발했다. 연기 감지 화재경보장치는 미국의 우주정거장인 ‘스카이 랩’을 위해 만들어졌다.
아폴로 계획을 진행하면서 개발한 디지털 신호 처리나 화상 기술은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 탄생에
기여했다. 인공위성 덕분에 텔레비전 방송, 휴대전화를 쓸 수 있다. 우리 생활 속에 우주 기술은 이미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동아닷컴 2008-07-29 03:00
http://www.donga.com/fbin/output?f=j__&n=200807290128
1948 - 제14회 런던 올림픽 개막
1948년 7월29일, 제14회 올림픽이 런던에서 개막됐다. 2차대전으로 12년 만에 치러진 올림픽이었다. 한국을 비롯,
15개 신생국이 처음 참가한 것과 달리 전범국 일본ㆍ독일ㆍ이탈리아는 초청받지 못했다.
한국은 광복 후 처음 출전한 하계올림픽에 축구ㆍ복싱ㆍ역도 등 7개 종목에 50명의 선수와 17명의 임원을 출전시켰다. 그 해 1월, 단 3명 뿐인 초미니 선수단이 파견된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이 광복 후 출전한 첫 올림픽이었다.
아직 정부가 수립되지 않아 참가비용은 액면가 100원인 올림픽 후원권을 발행해 조달했다.
6월21일 서울역을 출발해 열차로 부산에 닿은 선수단은 다시 배를 타고 요코하마를 거쳐 7월2일에 홍콩에 도착했다.
홍콩에서 런던행 비행기를 탔으나 인도ㆍ이집트ㆍ로마를 경유하는 장거리 비행이었다. 결국 20일이 지난 7월8일이
돼서야 파김치 상태로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다.
8월11일 김성집이 역도에서 첫 동메달을 따내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태극기가 게양되는 감격을 맛본데 이어 한수안도
복싱에서 동메달을 획득, 한국은 참가국 58개국 가운데 24위를 차지했다.
한국계 미국인 새미 리가 하이다이빙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도 런던 올림픽이었다.
(한국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처음 출전한 대회는 1948년 1월 30일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개막된
제5회 동계올림픽경기대회입니다. ^.@)
1921 - 히틀러 나치스당 당수로 선출
1921년 7월 29일 뮌헨에서 열린 나치스(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특별 당대회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543표대
1표차로 당 제1위원 당수에 선출됐다. 대회전에 히틀러는 다수파방식과 의회적인 절차를 모두 폐지하고 당수를
정점으로 한 엄격한 명령-복종의 원칙 '지도자 원리'를 확립하고 당의 구성을 바꿨다. 이로써 히틀러는 나치스의
독재자가 됐고 이후 그의 결정은 모두 실행에 옮겨졌다. 1932년 7월 31일 총선거에서는 나치스당이
제1당으로 부상했고 1933년 1월 30일에는 마침내 독일 수상에 취임해 전세계가 전쟁과 학살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 루스벨트 (Roosevelt, Theodore, 1858~1919)
1905 - 가쓰라-태프트 밀약 체결
1905년 7월 29일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맺어졌다. 이 밀약은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桂太郞]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인 육군장관 W. H. 태프트 사이에 맺어진 비밀협약이다. 이 밀약을 통해 미국의 대 필리핀 권익과 일본의 대 조선 권익을 상호 교환조건으로 승인했다.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는 대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하지 않으며,
러일전쟁 후 일본의 조선 지배를 승인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같은 해 제2차 영일동맹과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극동 지역에서 일본의 지배권을 획득했다. 이후 일본은 을사조약 강요와 함께 조선 지배를 기정사실화했다.
1905 -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스웨덴의 함마르셸드(Hammarskjöld, Dag) 출생
함마르셸드 [Hammarskjöld, Dag, 1905.7.29~1961.9.18]
스웨덴의 경제학자, 외무장관, 국제연합(UN) 제2대 사무총장. 옌셰핑 출생. 웁살라대학교와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1933∼1936년 스톡홀름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쳤다. 그후 재무부 서기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여 1947년부터 외무부에서 근무하였다. 1951년 외무장관이 되었으며, 1953년 국제연합(UN)
제2대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고, 1957년 재선되었다. 재임기간(1953∼1961) 동안 6·25전쟁을 비롯하여
헝가리동란·중동분쟁 등의 해결을 위해 진력하였다. 1961년 9월 콩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지로 가던 중
북로디지아(잠비아)의 산중에서 항공기사고로 죽었다. 1961년 죽은 뒤에 노벨평화상이 추증되었다.
1900 - 스웨덴의 소설가 욘손(Johnson, Eyvind) 출생
1890 - 네덜란드 화가 고흐(Gogh, Vincent van) 사망
1889 - 베를린 시장을 지낸 독일의 정치인 로이터(Reuter, Ernst) 출생
1883 -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Mussolini, Benito) 출생
1856 - 독일의 작곡가 슈만(Schumann, Robert) 사망
1849 - 유대계 헝가리의 소설가, 의사 노르다우(Nordau, Max) 출생
1841 - 노르웨이의 의학자 한센(Armaue, Hansen, G. H.) 출생
1836 - 파리 개선문 완공
1793 - 슬로바키아의 시인 콜라르(Kollár, Ján) 출생
1588 - 영국 해군,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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