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로 본 오늘의 인물과 역사 7-08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 2) 3)
1) 1980 - '80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 개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계 최대의 미(美)의 올림픽인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가 1980년 6월 28일부터 7월 8일까지
서울 세종 문화회관에서 개최된다.
이 대회에는 세계 80여개국을 대표하는 미인들과 그들의 샤프론(수행인), 대회 관계자들, 취재기자, 각국의 관계인사들이 참가하여 가장 권위있고 가장 화려한 아름다움의 축제를 연출하게 되는데, 각국의 미인 대표들은 6월 15일부터
서울에 도착하기 시작해서, 28일, 세종 문화회관에서의 성대한 개회식에 이어 각국의 민속의상 발표회를 비롯한
갖가지 행사가 베풀어진다.
대회 기간중 이들 미의 사절들은 서울은 물론 제주도, 경주, 설악산 등 한국의 명승지를 여행하게 되는데 그들이 가는 곳마다 텔레비젼 카메라가 일일이 뒤를 쫓아 필름에 담아서 국내외 시청자 앞에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소개한다.
한편 최종 결선대회는 7월 8일에 열리며 이날의 대회 실황은 직접 세계 50여개국, 약 6억에 달하는 시청자에게 동시에
우주중계되어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의 절정을 이루는데, 이때 한국과 그 문화를 소개하는 장면도
사이사이에 방영된다.체신부에서는 이처럼 경사스러운 미의 축전이, 참가하는 미인대표들은 물론,
그들이 대표하는 세계 각국의 우정을 돈독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해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2) 1977 -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安益泰), 국립묘지에 안장
안익태 [安益泰, 1906.12.5~1965.9.16]
지휘자. 첼로 연주자. 작곡가. 평양 출생. 어릴 적 예배당의 찬송가에 이끌려 음악수업을 시작하여 그 뒤 선교사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1914년 평양종로보통학교에 입학해 트럼펫과 바이올린을 배우고 1918년 평양 숭실중학교에 들어가 첼로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고등음악학교(현 쿠니다찌음악대학 전신)에서 첼로를 전공했다. 졸업 후 미국 필라델피아 커티스음악학교에 입학, 뒤이어 신시내티음악학교에서 첼로와 작곡을 배우는 한편, 신시내티교향악단의 첼로 주자로 입단하여 동양인 최초의 주자가 되었다. 그 뒤 필라델피아교향악단에도 입단하였으며, 신시내티, 필라델피아 등지에서 첼로독주회를 가졌다. 1934년 유럽으로 가서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지휘 및 작곡을 수업하였으며, 1936년 프레스장학금을 받고 빈에서 R. 슈트라우스에게 지휘를 배웠다. 이때 지금의 <애국가>를 작곡하였다.
1939년 부다페스트 국립음악학교에 입학하고 그 뒤 각국을 돌아다니며 파리 콩세르, 런던 로열필하모니,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니, 일본 NHK 등 200여의 유명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이 무렵 스페인 여성 타라베라와 결혼하여 스페인 국적을 얻고, 마드리드 마요르카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1957년 일시 귀국하여 자작의 <강천성악(降天聲樂)>, <한국환상곡>등을 지휘하였다. 1962년에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에서 지휘하였고 그 뒤 제2회부터 제4회까지 서울국제음악제를 주도하고 지휘를 맡았다. 1965년 7월 4일에 런던 로열 앨버트홀에서 뉴필하모니의 초청지휘자로 그의 마지막 작품인
<애(哀)! 강상의 의기 논개>를 연주하고, 그 해 9월 17일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병원에서 별세하였다.
1977년 7월 유해가 한국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저서로는 , 이 있다. 1957년 문화포상을 받았고,
1965년 문화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호주한국문화원)
3) 1983 - 미국 소녀 사만타 스미스 소련방문
안드로포프 서기장에 '왜 소련은 미국을 공격하느냐'고 편지
"그녀는 여러 프로그램과 잡지를 통해 핵폭탄과 미사일을 보고 매우 놀랐다, 그녀는 안드로포프 서기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러시아로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사만타 스미스는 친구 나타샤를 사귀었다.
2년동안의 여행을 끝내고, 사만타 스미스는 굉음을 내며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죽었다.
그러자 소련사람들은 산이나 꽃, 배 등에 그녀의 이름을 붙였다."
1) 2) 3)
1) 1957 - 제1회 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 개막
1957년 7월 8일 롯 블라트 박사 등 세계의 저명한 핵물리학자 22명이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퍼그워시라는 인구 600명의 작은 어촌에 모였다. 이른바 지구촌 반핵평화운동의 중심축인 '퍼그워시 회의'의 첫 출발이었다. 정식 명칭은 '과학과
국제문제에 관한 퍼그워시 회의'다.
1955년 버틀런트 러셀과 알버트 아인슈타인, 조지프 롯 블라트 등 11명의 저명한 학자들이 핵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해 세계 과학자들의 공동연구와 실천을 촉구하는 선언을 발표한 것이 계기였다.
퍼그워시 회의는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비정부 국제연대기구로 '핵무기 없는 세계, 전쟁 없는 세계'를 추구하며
세균금지조약(1972년), 화학무기금지조약(1993년),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 등
대량 살상무기 확산 방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1990년대
초중반 북한 핵위기 때 북-미 대화를 중재하고 제네바 합의와 경수로 제공의 길을 터놓은 것도 퍼그워시 회의였다.
2) 2008 - 서재필 기념관 개관식 - 독립신문 창간 100주년 기념 1996.4.6
서재필기념관 개관식이 8일 오전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서재필기념공원에서 박준영 전남지사와 김양 국가보훈처장,
정종해 보성군수, 백낙환 서울 서재필기념회 회장, 김중재 서재필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선남 광남일보사장,지역 주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4만5천700㎡ 규모의 기념공원에는 기념관과 독립문, 사당, 조각공원, 동상,
야외공연장 등이 들어서 있으며 기념관에는 서재필 박사의 유물 7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지난 1992년 서재필 기념공원사업의 일환으로 착공된 서재필기념관은 총 사업비 124억원을 투입,
지난 2004년 완공됐다. 하지만 운영비 부담과 관리 주체를 놓고 전남도와 보성군, 기념사업회 측이 견해차를 보이면서
그동안 개관식을 갖지 못한 채 임시로 관광객에게 관람을 허용해 왔다.
최기남 기자 -광남일보 2008-07-08
3) 1998 - 초조 고려대장경 대반야바라밀다경 인쇄한 두루마리 판본 발견
1) 2) 3)
1) 1988 - 정부, 중공을 중국으로 공식 호칭
1987년 12월 16일 국민의 직접투표에 의한 대통령선거가 16년만에 실시되었으며 노태우 후보는 36.6%의 득표율로 28.0%를 얻어 2위를 기록한 김영삼 후보를 8.6%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88년 2월 25일 제13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제6공화국을 출범시켰고, 취임 이틀 후인 2월 27일 시국사범 등 7,234명에 대해 사면복권을 단행해
국민통합에도 적극성을 보였다.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하여 민주정의당 중심의 정국운영이 어렵게 되었다. 원활한 여야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5월 28일 야 3당
총재와 청와대 4자회담을 열어 구속자석방 등의 방침을 밝혔다. 대북관계를 포함하여 대외관계 개선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88년 7월 7일 남북동포 교류 추진 등 대북정책 6개항 특별선언인 '7·7선언'을 발표하였으며
다음날인 8일에는 중공을 중국으로 공식 호칭키로 발표하였다. 9월 17일 160개국에서 1만 3천 6백여명이 참가한 제24회 서울올림픽이 개막되었으며, 우리 나라는 금 12·은 10·동 11개로 종합 4위를 차지한 가운데 10월 2일 폐막되었다.
1989년 2월 1일 공산권 국가로는 처음으로 헝가리와 공식수교를 맺었다.
2) 1986 - 삼성반도체 1MD램 개발
1986년 오늘 삼성반도체통신이 1MD램 개발에 성공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반도체 기술도 킬로비트에서 메가비트시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삼성전자는 VLSI 신규사업에 참여한 지 3년, 256KD램을 개발한 지 1년 반 만에 세계 최고수준의 몇몇 업체에서만
만들어내고 있던 1메가 D램을 자체개발하는 데 성공해 선진국과의 기술개발 격차를 1년으로 줄였다.
1MD램 개발과 함께 1986년 정부와 민간은 공동으로 4MD램 개발을 추진함으로써 반도체 개발에서
선진국과의 격차를 없앴다. 엠파스 뉴스 2004-07-08
kdaq.empas.com/qna/view.html?n=5752577&l=tv
3) 1919 - 독일의 정치가, 대통령 셸(Scheel, Walter) 출생
셸 [Scheel, Walter, 1919.7.8~ ]
독일의 정치가. |
솔링겐에서 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 공군에서 복무한 후 사업을 하다가 정계에 투신, 1950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회 의원을 거쳐, 1953∼1974년 연방의회 의원, 1961∼1966년 연방경제협력장관,
1967∼1969년 부통령을 지냈다. 1969∼1974년 자유민주당 당수로 있으면서, 외무장관 등을 역임하고,
1974년 7월 서독 대통령이 되어 임기 5년을 마치고 1979년 물러났다.
2007 - 영국에서 출발한 첫번째 '투르 드 프랑스' 개막
(사진 설명) = 8일(현지시간) 제94회 투르 드 프랑스 도로사이클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
런던 타워 브리지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프랑스와 영국 국가를 듣고 있다. 이날 1구간
레이스는 런던-캔터베리 구간에서 열렸다.
(사진 설명) = ‘3547km 대장정 출발.’ 세계 최고의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의 막이 8일 올랐다.
크리스티앙 프뤼돔 대회 사무총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이날 출발선에서 제94회 투르 드 프랑스 출발 깃발을 들고
신호할 준비를 하고 있다. 투르 드 프랑스는 런던에서 캔터베리까지 203km 제1구간을 시작으로 23일간 20개 구간 3547km의 대장정을 벌인다. 2007-07-09 photo.donga.com
세계 최대의 사이클잔치인 프랑스 도로일주사이클(투르 드 프랑스)이 8일(한국시간) 23일간 대장정을 시작한다.
올해 94회째를 맞는 투르 드 프랑스는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 알프스와 피레네 산맥을 거치며 프랑스 전역을
시계방향으로 돌아 파리 샹젤리제 거리까지 3천553.9km에 걸친 '죽음의 레이스'를 벌인다.
첫 날 짧은 프롤로그와 20개 구간으로 치러지고 휴식일은 이틀뿐이다. 20개 구간은 평지 11개, 산악 7개,
개인독주 2개 구간으로 이뤄졌다.
한 팀당 9명씩 출전하며 아스타나, CSC, 케스 데파르뉴, 디스커버리채널 등 총 21개팀 189명이 참가한다.
7회 연속 우승한 랜스 암스트롱이 2005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했고 지난 해 챔피언인 플로이드 랜디스도 도핑 의혹을
받고 있어 나오지 않는다.아직 '포스트 암스트롱'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카자흐스탄 출신 알렉산드레
비노코로프(34.아스타나)가 마지막에 '옐로 저지'(종합 선두가 입는 노란색 상의)를 입을 것으로 점쳐진다.
2003년 종합 3위, 2005년 5위에 올랐던 그는 지난 해 대회를 앞두고 강력한 경쟁자였던 이반 바소와 얀 울리흐가
도핑 스캔들에 얽히면서 절호의 우승 기회를 잡았지만 팀 동료 5명도 약물 복용 의혹을 받아 팀이 참가하지 못하는
바람에 챔피언 도전을 위해 1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는 아스타나의 리더로서 기량이 탁월한 팀원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T-모바일 소속이던 지난 해 3위에 올랐던 동료
안드레아스 클뢰덴(32)은 비노코로프를 도우면서 개인 성적에도 욕심을 낼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의 '불운의 라이더' 알레한드로 발베르데(27.케스 데파르뉴)도 이번 대회는 반드시 완주하면서
시상대에 서는 것이 목표다. 그는 2005년 제10구간 우승을 차지하는 등 상위권을 달렸지만 무릎 부상으로 중도 탈락했다. 지난 해에는 제3구간에서 충돌 사고로 인해 쇄골이 부러져 눈물을 머금고 레이스를 포기했지만 스페인투어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이밖에도 2007 캘리포니아 투어 우승자 레비 라이파이머(34.디스커버리), 지난 해 투르 드 프랑스 6위 데니스 멘초프(29.라보뱅크), 산악구간 스페셜리스트 카를로스 사스트르(32.CSC) 등도 다크호스로 평가된다.
이번 대회는 누가 우승자가 되느냐 못지 않게 약물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도 관심거리다.
투르 드 프랑스 조직위원회는 바소와 울리히를 비롯한 선수 9명이 약물사용 혐의 때문에 개막 전날 출장이 금지됐고
챔피언이 된 랜디스가 도핑 양성반응이 나왔던 지난 해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kimyg@yna.co.kr
2003 - 판소리 명창 박동진(朴東鎭) 사망
박동진 [朴東鎭, 1916.7.12~2003.7.8]
박동진 명창이 2003년 오늘 87살을 일기로 타계했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박동진 옹은 김창진, 유성준 등에게서 심청가와 수궁가 등을 사사하고, 1968년 판소리
사상 처음으로 흥부가를 완창했다.
당시 소리꾼의 평균 공연시간이 20분 정도였던 데 비해 5시간에 걸친 흥부가의 완창은 기록적인 것이었다.
이어 1969년 춘향가를 8시간에, 1970년 심청가를 6시간에, 1971년에 적벽가를 7시간에 완창하는 등 거의
모든 판소리를 완창했다. 1973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 강원정도 600년 기념, 1995.7.8 발행
1995 - 강원정도 600년 기념엽서 발행
1994 - 북한 주석 김일성(金日成) 사망
김일성 [金日成, 1912.4.15~1994.7.8]
1994년 7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주석이 김영삼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갑자기 사망했다. 사인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으나 북한측은 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마비로 공식 발표했다.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로,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항일무장투쟁에 뛰어들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 발발로
중국 동부 각지에서 항일유격대가 조직되자, 김일성도 1932년 4월 25일 안도 현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8·15해방 직전까지 그는 동북항일연군교도려(東北抗日聯軍矯導旅)의
제1영 영장, 조선공작단 단장 등을 지냈다.해방 뒤에는 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창설을 주도했으며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내각수상에
선임되었다. 1950년 6·25전쟁 당시에는 군사위원회 위원장과 인민군총사령관으로 전쟁을 주도했다.
전후복구건설노선기에는 잠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으나,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1965년 주체사상을 공개적으로 제창하면서 유일지도체계를 강화했다. 1972년 김일성은 신설된 국가 주석에 취임한 후, 사망할 때까지 북한을 통치했다.
1989 - 국내최초의 산림욕장 광릉수목원에 설치
본격적인 삼림욕장이 국내 최초로 1989년 7월 8일 경기도 포천군 광릉수목원에서 문을 열었다. 2천2백21ha의
넓은 숲속에 8km의 산책로와 각종 휴식시설이 들어선 이 삼림욕장은 그동안 통행이 금지됐던 학술연구림을 일반에게
개방한 것이다.
천연활엽수림, 잣나무, 낙엽송 등 39개의 숲속과 만남의 숲, 조각의 숲 등으로 명명된 휴식공간에
158개의 벤치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또 통나무징검다리, 평행봉 등 9종의 체력단련시설도 있다.
삼림욕장이 건강에 좋은 것은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유물질 때문인데 이 정유물질은 나무가 병균, 해충,
곰팡이 등의 외부침입자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뿜는 물질로 병원균독소 저해물질, 식물성 살균물질, 생장촉진 물질 등이 함유돼 있다. 정유물질의 주성분은 휘발성이 높은 테르펜이란 물질이다. 숲속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는 바로 테르펜이 공기중에 휘발하면서 나는 것이다. 정유물질의 방출량은 계절, 기후 시간대에 따라 다르다. 초여름부터 8월까지
가장 왕성하며 밤보다는 낮에 두배가량 더 방출된다. 깊은 숲일수록 효과가 좋은 것은 방출된 테르펜이
숲속공기에 풍부하게 있는 오존 등 반응성이 강한 물질과 급속히 결합, 확산되지 않고 머무르기 때문이다.
1985 - 한국-바하마, 국교 수립
바하마와 한국과의 관계 - 한국 단독수교국(1985년 7월 8일). 주미대사가 겸임발령된다.
2002년 대한수입 1억 6727만 달러, 대한수출 1만 3000달러이다.
1971 - 백제 무령왕릉 발굴
백제 무령왕릉(사적 제13호)이 1971년 7월 8일 발굴됐다. 웅진시대 백제 고분들로 이루어진 송산리 고분군 가운데
제5-6호 고분의 습기와 지하수의 침투를 막기 위해 고분 뒷면의 배수시설을 고치던 중 우연히 발견됐다.(7월 6일 발견)
공주박물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문화재관리국은 김원용 당시 국립박물관장을 지도위원으로 하는 발굴조사단을
7일 오후 현지에 파견해 9일 아침 7시30분까지 발굴작업을 계속했다.
무령왕릉은 5-6호 고분 바로 뒤에 있었으나 큰 언덕처럼 생기고 그 위에는 3~4m 크기의 리기다소나무들이
들어차 있어서 이 고분을 답사했던 전문가들도 단순히 6호 고분 등에 흘러드는 지하수를 막기 위해
만든 인조언덕으로만 생각했을 정도였다.출토된 유물만 해도 모두 1백8종 2천9백6점에 달했다.
입구에 놓인 지석에 의해 무령왕은 523년 5월에 숨져 525년 8월에 안치되었고, 왕비는 526년 11월에 사망해 529년
2월에 안치되었으며, 왕릉은 왕이 죽기 11년 전에 이미 축조준비가 끝났음이 밝혀졌다. 출토된 무령왕의
신발 밑바닥 길이가 30㎝에 이르러 무령왕이 거인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 이응로 작 'Composition' (공중전화 카드)
1967 - 중앙정보부 동백림(東伯林) 사건 발표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가 동백림(東伯林) 사건을 발표했다. 동베를린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으로 ‘동백림’은 당시 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중앙정보부는 대한민국에서 독일과 프랑스로 건너간, 194명에 이르는 유학생과 교민 등이 동베를린의 북조선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교육을 받으며 대남적화활동을 하였다고 주장했다. 간첩으로 지목한 인물 중에는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던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로가 포함돼 있었으며, 천상병 시인도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당했다.
1967년 12월 3일 선고 공판에서 관련자 중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으나, 대법원 최종심에서는 간첩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1월 26일 당시 정부가 단순
대북접촉과 동조행위를 국가보안법과 형법상의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해 사건의 외연과 범죄사실을 확대·과장했다고 밝히고, 사건 조사 과정에서의 불법 연행과 가혹행위 등에 대해 사과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이철 동아닷컴 기자 kino27@donga.com 동아닷컴TV 2010-07-08 09:22:15
http://etv.donga.com/view.php?category=002013
1967 - 영국의 영화배우 비비안 리(Leigh, Vivien) 사망
리 [Leigh, Vivien, 1913.11.5~1967.7.8]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거의 동격이 돼버린 여배우 비비안 리가 런던에서 5년의 공백끝에 영화계 복귀를
준비하고 있던 중 폐결핵으로 53세에 사망했다.
인도 다르질링에서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연극무대를 전전하다
1937년 영화 '불타고 있는 영국'에서 두 번째 남편인 로렌스 올리비에를 만나게 된다.
이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캐스팅에 곤욕을 치르고 있던 데이비드 셀즈닉 감독 앞에 매혹적이면서
강렬한 눈매의 그녀가 나타난다. 셀즈닉 감독은 그녀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으로 전격 발탁한다.
이로써 그녀의 스칼렛 오하라 연기가 시작됐다. 그 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에서 성공을 거둔
비비안 리는 1940년 8월 그동안 그녀를 짝사랑해오던 배우 올리비에와 결혼했다.
그 후 남편 올리비에의 화려한 경력에 자극받아 더욱더 분투한 끝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1940년 아카데미시상식
여우주연상,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1951년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1952년 아카데미시상식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강한 자아를 가진 여배우 비비안 리는 정열적 열애와 지나친 흡연,
과음 그리고 일에 대한 욕심으로 결국 1960년 올리비에와 이혼하고 1967년 7월 8일 새벽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1952 - 세계 최초의 제트여객기 코메트(BOAC항공) 런던-토쿄 노선 첫 운항
코메트(Comet)
세계 최초의 제트여객기. 영국의 드 해빌랜드사(De Havilland 社)가 설계 ·제작한 세계 최초의 제트여객기이다.
코메트란 ‘혜성’이란 뜻이며 1949년 처녀비행을 했다.
길이 28.35 m, 너비 35 m. 터보제트엔진 4기를 탑재하고 후퇴날개와 여압객실(與壓客室)을 갖추고 있으며, 승객 정원은 36명이다(1형). 정기항공에 취항한 것은 1952년 5월 2일 비이에이(BA;영국항공회사)의 전신인 영국해외항공회사(BOAC)의 런던∼요하네스버그 노선이 시초이다.
처음에는 운항이 순조로웠으나 1953년 5월 공중분해로, 1954년에는 잇달아 2건의 공중폭발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조사 결과 여압에 의한 동체 외판의 피로파단(疲勞破斷)이 추락의 원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요소가 많았다는 이유로 드 해빌랜드사에게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다.
이 사고는 제트수송기를 개발하는 데 귀중한 교훈이 되었다. 즉, 이후부터는 여압동체를 가진 제트수송기는 미리
수조(水糟) 안에서 동체에 내압(內壓)을 반복 부하(負荷)하여 충분한 피로강도(疲勞强度)를 지닌 것을 확인한 후
취항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코메트 4형까지 설계가 변경된 후로는 순조롭게 운항되었으나
현재는 세계의 항공로에서 사라졌다.
코메트(Comet) 연혁
1949-07-27 - 첫 비행에 성공
1952-05-02 - 최초의 정기항공 런던-요하네스버그 노선에 첫 취항
1952-07-08 - 런던 토쿄 노선에 첫 취항
1954-01-10 - 코메트(G-ALYP), 동체피로로 공중폭발 사고
1954-04-08 - 코메트(G-ALYY), 공중폭발 사고로 운항정지
1958-04-29 - 코메트 4(Comet-4) 처녀비행
1958-10-04 - 코메트 4(Comet-4) 런던~뉴욕간 대서양 정기항공에 첫 취항
1900 - 경인선 전선(全線) 개통 (남대문역-제물포)
1895 - 소련의 물리학자 탐(Tamm, Igor) 출생
1894 - 소련의 물리학자 카피차(Kapitsa, Pyotr) 출생
1867 - 독일의 화가, 판화가, 조각가 콜비츠(Kollwitz, Käthe) 출생
1853 - 미국 페리 제독, 일본에 첫 출현
1851 - 영국의 고고학자 에번스(Evans, Arthur) 출생
1839 -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Rockefeller, John D.) 출생
1838 - 최초의 경식비행선 제작자 체펠린(Zeppelin, Ferdinand von) 출생
1815 - 나폴레옹(Napoleon I)의 백일천하 종식. 루이 18세 파리 귀국
1766 - 나폴레옹 군대의 수석 군의관 라리(Larrey, Dominique) 출생
1621 - 프랑스의 우화시인 라퐁텐(La Fontaine, Jean de)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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