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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뉴스

오늘의 우표와 사건 06.13 (1)

오늘의 우표와 사건 06.13 (1)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                                             2)                                           3)

 

1) 1991 - 옐친, 러시아 공화국 초대 대통령(직선) 당선

보리스 옐친(Yeltsin, Boris Nikolaevich, 1931.2.1~ ]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이 러시아 사상처음으로 실시된

대통령 직접선거에서 60% 이상을 득표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1931년 우랄산맥의 스베르들로프스크 지방의 부트가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1985년 직후 고르바초프에 의해 개혁추진 인물로 발탁돼 모스크바시 당중앙위원회 건설담당자로 기용되었다.

이때부터 모스크바 시민들로부터 인기를 얻어 대중 정치가로 부상하면서 1987년 개혁이 미온적이라며 고르바초프를

비판해 당직에서 해임되기도 하였으나 1989년 3월 실시된 인민대회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인민대표회의 의원으로

 당선돼 고르바초프의 최대 정적으로 부상했다. 1990년 5월에는 소련내 최대 공화국인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됐고

소련이 해체된 후 이날 처음으로 실시된 러시아공화국 직접선거에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2) 1986 - 미국의 클라리넷 연주자, 악단지휘자 굿맨(Goodman, Benny) 사망

굿맨 [Goodman, Benny, 1909.5.30~1986.6.13]

1930~40년대 재즈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며 일명 ‘스윙재즈’로 재즈 역사를 새롭게 장식한 베니 굿맨이

1986년 6월 13일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클라리넷 연주의 명인일 뿐 아니라 부다페스트 사중주단과

모차르트를 협연할 만큼 클래식에도 조예가 깊었다.
1909년 시카고의 가난한 양복재단사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밥벌이를 위해 미시간 호수 유람선 밴드를 드나들며 연주를 했다.
그러던 1935년 8월 21일 팔로마 보룸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미국과 전세계를 들끓게 한 ‘스윙재즈’ 붐을 일으켰다.

당시 그의 나의 26세였다.
‘스윙재즈’의 열풍이 일기까지 재즈는 소규모 밴드, 술집 그리고 거리축제 등에서 연주되던 흑인 음악에 불과했다.

그러나 ‘스윙재즈’가 나오면서 재즈는 더 이상 흑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스윙재즈’... 말 그대로 재즈 연주 특유의

몸이 흔들리고 있는 듯한 리듬감을 표현한 이 음악은 대공황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내 ‘스윙재즈’ 열풍을 타고 재즈는 온통 거리를 휩쓸게 되었고 이로써

약 10년 동안 베니 굿맨의 스윙 황금시대가 계속됐다.이제 베니 굿맨의 몇몇 앨범은 전문 수집가들조차 구하기 어려운

희귀음반이 되어 버렸다. 그의 명곡들로는 ‘sing sing sing’ ‘Let's Dance’ ‘Body And Soul’ 등이 있다.

 

3) 1983 - 파이어니어 10호가 해왕성 궤도를 통과하다

파이어니어 10호(Pioneer 10)는 1972년3월 2일 발사되어, 처음으로 소행성대를 탐사하고 목성을 관찰한 우주선이다. 1973년12월 3일 목성에 접근하여 사진을 전송하였다. 1983년6월 13일해왕성의 궤도를 통과했다. 명왕성의 궤도이

심률이 커, 당시에는 해왕성이 태양계의 가장 바깥 행성이었다. 정의에 따라서는 파이어니어 10호는 태양계를 벗어난

첫 우주선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오르트 구름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파이어니어 10호와 파이어니어 11호에는 인류가 외계의 지성체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담긴 금속판이 함께 실려져 있다. 

- 공중전화카드 

  

2009 - 서태지, 서울 공연서 8집 신곡 첫 공개…전국투어 포문

서태지가 8집 신곡을 공개하며 전국투어의 화려한 포문을 연다.
오늘(13일) 오후 8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투어 'The mobius'에 나서는 서태지는 약 두 달에 걸쳐 매주 한 두 차례의 공연으로 전국을 순회, 8집 활동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예정이다.
서태지는 이날 공연에서 정규 8집에 실리게 될 신곡 두 곡을 최초로 공개한다. 신곡을 세상에 처음 선보이는 자리인 만큼 그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리허설 스튜디오에서 밴드멤버들과 함께 밤낮으로 공연 리허설에 몰두해 왔다는 후문이다.
서태지 컴퍼니는 "신곡 두 곡은 아직까지 철저하게 베일에 쌓여 있지만 8집의 정규음반에 마지막으로 수록되며

대미를 장식할 의미있는 곡들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당부하기도 했다.
또한 이번 전국투어 공연장에서 서태지는 팬들을 위한 패션 콘테스트 ‘The Möbius’ it style contest'를 마련해 공연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가 하면, 테디베어 뮤지엄 박물관장인 아티스트 조안 오와 함께 북극곰 살리기 운동도 전개한다.
'세상을 바꾸는 온도의 차이'라는 모토 아래 제작된 북극곰의 캐릭터는 이날 서울공연에서 첫 선을 보이며, 이를 통한 판매 수익금은 전액 PBI (Polar Bears International)에 기부될 예정이다.
이번 전국투어는 서태지의 8집 활동의 모든 곡을 총 정리하는 자리가 된다. 8집의 수록곡들은 물론 약 20여 곡들이 새로운 느낌과 연출되며, 서태지의 8집 활동은 물론, 그동안의 서태지의 음악 역사를 총정리하는 정점이 될 전망이다.
소속사가 공개한 전국투어 일정에 따르면 서울 6월 13일, 부산 6월 20일, 대구 6월 27일, 대전 7월 3일,

인천 7월 5일, 일산 7월 11일, 성남 7월 17일, 안양 7월 19일, 광주 7월 25일 등 총 9회에 걸쳐 공연이 진행될 계획이다.
박영웅 기자
hero@mydaily.co.kr -마이데일리 2009-06-13 10:30:13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6131008581137   

 

2009 - 진시황릉 병마용갱 3차 발굴 시작

1985년 이후 24년만에 재개

중국 진시황릉 발굴 이벤트가 시작됐다. 1985년 2차 발굴 작업에서 손뗀지 24년 만이다.
중국 진시황 병마용(兵馬俑) 발굴단이 지난 13일 ‘세계 8대 기적’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의
진시황 병마용 1호갱에서 3차 발굴을 재개하면서 매장 유물들이 속속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고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들이 14일 일제히 보도했다.
2009년 건국 60주년 행사와 함께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진시황 병마용 발굴 작업 재개는 2008베이징(北京)올림픽, 2010상하이(上海)세계무역박람회를 연결하는 중국정부의 빅이벤트 가운데 하나. 이 때문에 5년동안 2000㎡를
발굴하게 될 이번 작업 과정을 일반 관광객들에게까지 모두 공개하기로 했다.
1974년 1호갱 부근에서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진시황릉 병마용은
1976년까지 4개 갱이 발견됐다.
특히 3호갱은 군사 지휘부로 추정되면서 이번 발굴 작업에서 채색 병마용은 물론 장군용, 문관용, 외국인 병사용 등 엄청난 가치를 가진 유물들이 쏟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발굴이 재개된 첫날 작업에서만 4마리 말이 끄는 4두 전차 2대를 비롯, 채색 병사용 2점과 청동화살촉, 채색토기 파편, 칠기와 목기 등이 발굴돼 이같은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우선 가장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은 장군용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지 여부다. 1985년 2차 발굴 당시
 1000여개의 병사용이 출토됐지만 이보다 높은 등급의 장군용은 물론 참모용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채색 병마용을 원형 그대로 발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크게 주목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2차 발굴과정에서
채색 병마용이 발견됐으나 햇빛에 노출돼 색이 바래자 문화재 당국은 색상 유지 기술을 개발하기 전까지
발굴을 중단하기로 한 뒤 지하 유물의 산화작용 방지 기술개발을 서둘러왔다.
베이징 = 한강우특파원
hangang@munhwa.com -문화일보 2009-06-15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615010329320600020

 

2006 - 한국 축구대표팀, 토고를 2대1로 꺾어 월드컵 사상 첫 원정 승리
마침내 해냈다. 극적인 역전승에 온국민이 전율하며 환호했다. 16강이 보인다!

한국은 ‘반지의 제왕’ 안정환(뒤스부르크)과 이천수(울산 현대)의 미사일 같은 중거리포로 토고를 격침시키며

독일 월드컵 신화 재창조의 힘찬 시동을 걸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3일 프랑크푸르트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진 2006 G조 첫 경기에서

토고에 전반 선제골을 내줬으나 후반 이천수의 동점골과 안정환의 결승골로 2-1 값진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출전 이후 52년 만에 원정 월드컵에서 첫 승리를 거뒀다. 여섯차례 원정 끝에

이룬 쾌거이다. 또 4강 신화를 창조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이어 독일 월드컵 신화 재창조를 위한

단단한 기반을 마련했다. 승점 3점을 확보한 한국은 19일 새벽 4시(한국시각) 슈투트가르트에서 ‘강호’ 프랑스와

조별리그 두번째 경기를 벌인다.

한국은 이날 아프리카의 복병 토고에 선제골을 허용하고도 강인한 정신력과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집중력으로

믿기 어려운 역전승을 뜨거운 응원을 한 조국의 국민에게 선사했다.

한국은 조재진(시미즈 에스펄스)을 원톱으로 내세우고, 왼쪽에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오른쪽에 이천수(울산 현대)를 포진시키고 3-4-3 전형으로 토고 사냥에 나섰다. 그러나 초반 중원 장악에 실패하며 토고에 선제골을 허용했다.

전반 31분 에마뉘엘 아데바요르(아스널)와 투톱으로 나선 선발 모하메드 카데르가 중앙선 왼쪽에서

넘어온 긴 크로스를 허벅지로 받아 몰고 들어가며 강하게 골망을 흔든 것이다.

그러나 태극전사들의 반격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후반 6분 박지성이 상대 벌칙구역 정면에서 얻어낸 자유차기를 이천수가 강하게 오른발로 감아차 통쾌한 동점골을 뽑아냈다. 이후 토고의 중앙수비수 장폴 야오비 아발로는

두 번 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해 토고는 10명으로 경기를 해야 했다.

승부의 마무리는 안정환이었다. 후반 시작과 함께 수비수 김진규(주빌로 이와타)와 교체해 들어간 안정환은

후반 27분 상대 벌칙구역 오른쪽에서 강한 중거리 슛을 날려 그림 같은 역전골을 연출했다.

이후 이을용 대신 김남일을 투입하며 수비를 강화한 한국은 아데바요르를

앞세운 토고의 세찬 공세를 막아내며 귀중한 승리를 지켜냈다. /한겨레 2006-06-14

 

2004 - 나운규 주연 <임자없는 나룻배> 자료 필름 공개

춘사 나운규 주연의 일제시대 무성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 촬영모습이 담긴 은염(銀染)유리판 필름 사진 11점이

오는 13일 오전 11시 KBS `TV쇼 진품명품'을 통해 최초로 공개된다. 영화 제작자의 손자로 전북 고창에 사는 70대 강모

노인이 의뢰한 이 사진에는 1932년 일제의 검열로 일부 장면이 삭제된 채 상영됐다는 기록이 남은 영화의 주연배우 모습,

촬영장면, 기념촬영장면 등이 담겨 있다.

당시의 자막처리 기술을 알 수 있는 타이틀 필름과 삭제된 장면인 도끼를 든 주인공 춘삼(나운규)의 모습 등은 자료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임원식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감정단은 "한국 영화사의 잃어버린 부분을 복원해 낼 수 있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특히 촬영장의 모습을 담은 필름은 당시의 촬영기자재와

세트 등 영화 기술적 측면을 고증하는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2004.06.09 -씨네21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1001001&article_id=24670

 

2000 - 분단 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
2000년 오늘은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한반도 분단 이후 처음 만나 손을 맞잡은 역사적인 날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측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에 갔다.
김 위원장이 순안공항으로 나와 직접 김대중 대통령 일행을 영접했다.
두 정상은 2박3일 동안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정착,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남북간 교류와 협력 등 광범위한 사안을 논의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상회담의 성과물로 이른바 6.15공동선언문을 채택한다.
6.15공동선언문은 남북한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8·15 광복절에 즈음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등을 골자로 한 것으로서 남과 북의 냉전과 대결 구도 종식, 그리고 화해, 협력의 역사적인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

 

1982 - 사우디아라비아의 제4대 국왕 할리드(Khālid ibn ‘Abd al-‘Azīz as-Sa‘ūd) 사망

할리드 (이븐 아브드 알 아지즈 앗 사우드) [Khālid ibn ‘Abd al-‘Azīz as-Sa‘ūd, 1913~1982.6.13]

사우디아라비아의 왕(1975~82 재위).

1975년 이복형제 파이살이 암살되자 그를 이어 왕이 되었다. 중동 정계에서 온건하고 다소 소극적인 인물로 꼽히는

그는 이복형제 파드 왕자에게 사우디아라비아의 행정업무를 맡겼다. 파드는 그의 뒤를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왕위에 올랐다. 리야드가 아직 사막의 소도시였을 때 태어난 그는 형제인 사우드와 파이살의 가장 친근한 후원자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건국자인 아버지 이븐 사우드는 할리드가 14세 되던 해에 사막부족들의 애로사항을 듣기 위해 자신의 특사로 그를 사막지대에 파견했다. 1934년 그는 파이살이 이끄는 반(反)예멘 원정대에 참가했고

그뒤 정치나 외교보다는 본국에서 사막지역 일에 관계했기 때문에 '사막의 사나이'로 알려졌다.

1939년 팔레스타인에 관한 런던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아라비아를 떠났다.

 

그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서둘러 귀국하려고 했으며 해외에서 고등교육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베두인족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특히 지하수를 이용한 사막개간사업에 흥미를 느꼈다. 리야드에서는 자선활동에 힘썼다. 온건하고 겸손한

성격 및 차분한 이성으로 얻은 명성 덕분에 그는 왕가의 대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를 해결하는 조정자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성품으로 그는 강하고 야망 있는 형제인 파드와 술탄보다 먼저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사우드 왕이 1964년 11월 왕위에서 물러나자 왕권은 파이살에게 넘어갔다. 그후 그가 1970년부터 병에 걸려 정치생활에

전념하지 못하자 그의 왕위계승문제는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파이살이 암살되자 왕위를 계승했고

국민 대부분, 특히 베두인족의 인기를 누리면서 널리 환영받는 왕이 되었다. 그는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앗 사다트의

이스라엘 평화정책에 온건하게 대응했고,

1979년 엘리자베스 2세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과, 1981년 자신의 영국 답례방문을 실현시킴으로써 이득을 얻었다.

 

1982 - 제12회 월드컵축구대회 개막(스페인) 

제12회 월드캅축구대회(The 12th FIFA World Cup)는 24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1982년 6월 13일부터 7월 11일까지

 29일간 개최되었다. 1966년 7월 6일 런던총회에서 당시 프로축구리그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에스파냐가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지역예선에 참가한 국가가 사상 처음으로 109개국에 달하였고, 이에 따라 본선 진출국 수를 8개국 많은 24개국으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개최국 에스파냐와 전 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를 빼고 유럽 13개국, 남미 3개국, 아프리카 2개국,

아시아·오세아니아 2개국, 중·북미 2개국이 본선에 오르는 이 체제는 제15회대회(1994)까지 유지되었다.
대회는 마드리드·바르셀로나·세비야·빌바오·알리칸테 등 14개도시의 17개 경기장에서 열렸다. 본선 진출국이 24개국으로

늘어남에 따라 경기방식도 바뀌었는데, 4개팀씩 6개조로 나누어 조별 리그전을 벌이고 각조에서

1·2위를 차지한 12개팀이 2차리그전에 올랐다. 12개팀은 3개팀씩 4개조로 나누어 경기를 치르고, 각조 1위를 차지한 4개팀이 토너먼트로 우승을 가렸다. 경기수도 전 대회보다 14개가 늘어난 52개경기가 되었다.
파올로 로시(Paolo Rossi)가 활약한 이탈리아가 제2회(1934)·3회대회(1938)에 이어 3번째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브라질에 이어 3회 우승한 국가가 되었다. 서독(지금의 독일)이 준우승, 폴란드가 3위를 차지하였고 알제리·카메룬 같은 아프리카국가가 좋은 성적을 기록하였다. 총관중은 185만 6277명, 평균관중은 3만 5698명, 총득점은 146점,

경기당 평균득점은 2.81점이다. MVP는 이탈리아의 파올로 로시가 선정되었다.

 

1974 - 제10회 월드컵축구대회 개막(서독)

제10회 월드컵축구대회(The 10th FIFA World Cup)는 16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1974년 6월 13일부터 7월 7일까지

25일간 개최되었다. 1968년 멕시코시티총회에서 제20회 올림픽경기대회(1972)를 주최한 서독이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전세계 98개국이 지역예선에 참가하는 치열한 경쟁 끝에 개최국인 서독과 전 대회 우승국인 브라질을 포함하여 16개국이 본선에 올랐고, 헝가리·에스파냐·프랑스·영국 같은 축구강국은 탈락하였다.

대회는 뮌헨·프랑크푸르트암마인·뒤셀도르프·겔젠키르헨·베를린 등 9개도시에서 열렸다.
경기방식은 4개팀씩 4개조로 나누어 조별 리그전을 벌이고 각조에서 1·2위를 차지한 8개팀이 8강전에 오른 것은

전 대회와 동일하나, 8개팀이 2개조로 나누어 2차리그전을 벌인 후 1위 2개팀은 결승에 진출하고 2위 2개팀은 3·4위전을

치러 우승자를 가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프란츠 베켄바우어(Franz Beckenbauer)와 게르트 뮐러(Gerd Muller)가 활약한 서독이 제5회대회(1954)에 이어 2번째로 우승하였고, 네덜란드가 준우승, 폴란드가 3위를 차지하였다. 8강전이 리그전으로 바뀜에 따라 지난 대회까지의

32개보다 6개경기가 늘어난 38개경기가 치러졌다. 대회 총관중은 177만 4022명, 평균관중은 4만 6685명, 총득점은 97점, 경기당 평균득점은 2.55점이다.
월드컵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벌어진 서독·동독의 경기가 눈길을 끌었고,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가 활약한

네덜란드가 '토털축구(total football)'라는 새로운 개념의 축구를 선보였다. 브라질이 제9회대회에서 3번째 우승으로

줄리메컵을 영구 소유하게 되자 FIFA는 이 대회부터 피파월드컵을 새로 제작하여 복제한 후 수여하고 있다.

 

1948 - 미국 뉴욕 양키스팀, 베이브 루스의 등번호 3번을 영구 결번으로 발표

1948년 6월 13일의 양키스 구장은 어둠침침하고 침울했다. 베이브 루스 Babe Ruth는 15년의 야구생활 마지막 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루스와의 작별을 위해 수천의 팬들이 야구장에 모여들었다.

그는 굉장히 아픈 상태였다. 2개월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Babe는 손을 흔들며 선수 대기석에서 나왔고,

천천히 본루(홈베이스)로 걸어나왔다. 밴드는 Auld Lang Syne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대단히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죠지 허만 "베이브" 루스는 앞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아무도 놓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는 넓은 어깨를 살짝 숙여서

야구방망이에 기대었고 자신을 지탱했다. 관중들은 일어나서 수백만의 영웅이자 훌륭한 스포츠정신의 상징인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거기엔 스물 다섯 명의 사진기자들이 있었고, 베이브 루스의 날을 장식했다. 다른 사진기자들과 같이

냇 페인도 그 순간에 일어난 일들을 사진에 담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루스의 유니폼과 그의 등번호인 3번을 다신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사진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진기자들과 떨어져 Ruth의 등뒤로 갔다. 그리고 그는 한 장의 사진에 모든 사연을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장면을 보았다. 자신이 의도한 사진을 얻은 Nat는 장비를 챙겨서 지하철을 타고 헤럴드 트리뷴으로 돌아갔다. 사무실에서 Nat는 그의 흑백필름을 현상했고, 스포츠 편집장 Arthur Glass를 위해 사진프린트를 준비했다. 그가 책상에 그의 사진을

올려놓자마자 Glass는 "이거야"라며 Fein의 사진을 지목했다.

뉴욕 쿠퍼스타운에 있는 야구 명예의 전당에는 역사적인 전시물 가운데 Babe Ruth가 소유했던 물품들이 있다.

그의 유니폼이 놓여있는 곳 바로 옆에는 Babe Ruth가 야구에서 은퇴한 그날에 Nat Fein이 찍었던 사진이 놓여있다.

허현주 교수/중부대 사진학과 교수(bunte@mail.joongbu.ac.kr) 소식-사진으로 꿈꾸는 세상

 

1944 - 한국의 외교관,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출생  

반기문 [, Ban Ki-moon, 1944.6.13~ ]

한국의 정무직공무원·외교관. 1970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무부에 들어갔다.

2004년 외교통상부 장관이 되었고, 2006년 10월 유엔 사무총장에 임명되어 2007년 1월 1일부터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1944년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나 1963년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충주고 2학년 때 '외국학생의

미국 방문 프로그램(VISTA)'에 선발되어, 3학년 때 미국을 방문하였다. 이때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보고 외교관

꿈을 더욱 키우게 되었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진학하였다. 1970년 2월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5월 외무부에 들어갔다. 외무부에 재직중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 유학하여 1985년 4월 행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2년 주뉴델리 부영사를 시작으로 1976년 주인도대사관의 1등서기관, 1990년 외무부 미주국장, 1992년 외무부 장관

특별보좌관, 1996년 외무부 제1차관보와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 수석비서관, 2000년 외교통상부 차관, 2002년 외교부

본부대사, 2003년 대통령비서실 외교보좌관을 거쳐 2004년 제33대 외교통상부 장관이 되었다.
1993~1994년 제1차 북한 핵위기 때 주미국대사관 정무공사로 재직하면서 한국과 미국 사이의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실무 총책 역할을 하였다. 또 1997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지낸 황장엽이 망명할 때 중국과 필리핀
을 오가면서 밀사 역할을 하여 망명을 성사시키기도 하였다. 외교통상부 내에서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알려져 있으며, 철두철미한 업무 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중인 2006년 2월 유엔 사무총장직에 출마할 것을 공식 선언하였다. 같은 해 10월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단독 후보로 추대되었으며, 14일 유엔 총회에서 공식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공식 임명되었다. 이로써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2007년 1월 1일부터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1975년
녹조근정훈장, 1986년 홍조근정훈장, 2001년 오스트리아 명예대훈장을 받았고, 2002년에는 한국과 브라질의 관계를 증진시킨 공로로 브라질 리오블랑코 대십자훈장을 받았다.

2006년에는 페루 태양 대십자훈장, 알제리 국가유공훈장, 청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1935 - 불가리아 태생 미국의 환경조각가 크리스토(Christo, Javacheff) 출생

크리스토 [Christo, (Vladimiroff Javacheff), 1935.6.13~ ]

불가리아 태생 미국의 환경조각가.

논쟁을 일으킨 야외조각과 섬유·플라스틱 등을 이용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크리스토는 불가리아의 소피아에 있는 미술

아카데미에 다녔으며, 1956년 프라하의 부리안 극장에서 일하던 중 헝가리 혁명이 일어났다. 당시에 그의 가족은 이미 공산당 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혁명이 일어나자 빈으로 도피하여 한 학기 동안 공부하다가 스위스에 잠깐 머문 뒤 파리로

가서 신사실주의자들과 함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초상화가로 일하는 동안 잔 클로드 드 기유봉을 만난

크리스토는 1959년에 결혼했다. 잔 클로드는 한때 남편의 홍보담당 겸 사업 매니저라는 평을 받기도 했으나

그 후 창조적인 면이나 관리적인 면에서 남편과 동등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1964년 뉴욕 시로 옮겼으며,

그곳에서 그의 미술은 아트 포베라의 한 형태로 평가받았다.

그러다가 1968년 잔 클로드와 함께 스위스 베른에 있는 미술관을 덮어씌우는 작업을 했으며 1969년에는 미국 시카고의 현대미술관도 같은 형태로 만들었다. 그후에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의 창공을 가로지르는 5,600m 길이의 '공기주머니'와 베른·시카고·스폴레토에 '포장된 건물들'을 완성했다. 그들은 로키 산맥의 라이플 갭을 가로질러 〈계곡의 장막 Valley Curtain〉을 걸었고(1972),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해변(1969)과 파리의 퐁뇌프 다리(1985)를 통째로 덮어씌우기도 했다. 크리스토 부부는 캘리포니아 주의 마린과 소노마를 가로질러 39.5km에 이르는 하얀 천으로 울타리를 친 〈달리는 울타리 Running Fence〉(1976, 캘리포니아 마린 군, 소노마 군)·, 분홍색 베일로 플로리다 주의

11개 섬을 둘러싼 〈둘러싸인 섬들 Surrounded Islands〉(1983, 플로리다 비스케인 만)을 제작했으며 ,

1991년의 한 프로젝트에서는 일본의 사토 강[佐藤江] 유역을 가로질러 1,340개의 거대한 푸른색 우산을 설치하고, 캘리포니아 주의 테존 고갯길에는 1,760개의 거대한 노란색 우산을 설치하기도 했다.

1995년 6월 25일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부부는 〈천으로 감싸인 의사당 Wrapped Reichstag〉이라는 설치미술품을 완성했다. 이 설치미술품은 101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 의사당을 10만㎡의 천으로 뒤덮고, 16㎞ 길이에 이르는 푸른색 밧줄로 휘감은 것이었다. 이미 익숙한 예술형식의 하나로 인식된 설치미술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이 새로운 착상의 시도를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던 회의론자들은 천으로 감싸인 건축물에서 무언가를 상징하는 위풍당당함과 신비를 발견하고는 대단히 흡족해했다. 그것이 상징한 것은 아마 한 역사의 종말과 새로운 역사의 시작, 또는 통제에서 자유로의 변화였다.

2005년에는 〈더 게이츠, 센트럴 공원, 뉴욕시티 1979-2005, The Gates, Central Park, New York City, 1979-2005〉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뉴욕시티 센트럴 공원의 37km 통행로에 샤프론 빛깔 천으로 꾸민 높이 5m 철문 7,503개를 설치했다.

이 작품은 16일간 전시되었다.

그의 조각은 보통 거대한 야외조각으로, 일시적이고 제작시 수백 명의 보조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작품들은 미술관을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도 볼 수 있으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미학과 미술의 본질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의 작품은 특히 환경론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많은 작품 활동에서 그의 아내 잔 클로드와 공동 작업을 했다. - 브리태니커 


1908 - 포르투갈 태생의 프랑스 추상화가 비에이라 다 실바(Vieira da Silva) 출생



1901 - 스웨덴의 총리 에를란데르(Erlander, Tage) 출생
1899 - 멕시코의 작곡가 차베스(Chávez, Carlos) 출생

 

1897 - 핀란드의 장거리 육상선수 누르미(Nurmi, Paavo) 출생
1888 - 포르투갈의 시인 페소아(Pessoa, Fernando) 출생
1870 - 벨기에의 세균학자 보르데(Bordet, Jules) 출생


1865 - 아일랜드의 시인, 극작가 예이츠(Yeats, William Butler) 출생
1854 - 영국의 기계공학자 파슨스(Parsons, Charles) 출생
1831 -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맥스웰(Maxwell, James Clerk) 출생


1809 - 독일의 의사, 동화작가 호프만(Heinrich Hoffman) 출생
1790 -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파에스(Páez, José Antonio) 출생
1398 - 고려시대의 학자, 문신 문익점() 사망





BC 323 -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 사망
 

1908 - 포르투갈 태생의 프랑스 추상화가 비에이라 다 실바(Vieira da Silva) 출생



1901 - 스웨덴의 총리 에를란데르(Erlander, Tage) 출생


1899 - 멕시코의 작곡가 차베스(Chávez, Carlos) 출생

1897 - 핀란드의 장거리 육상선수 누르미(Nurmi, Paavo) 출생

 
1888 - 포르투갈의 시인 페소아(Pessoa, Fernando) 출생
1870 - 벨기에의 세균학자 보르데(Bordet, Jules) 출생
1865 - 아일랜드의 시인, 극작가 예이츠(Yeats, William Butler) 출생


1854 - 영국의 기계공학자 파슨스(Parsons, Charles) 출생
1831 -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맥스웰(Maxwell, James Clerk) 출생
1809 - 독일의 의사, 동화작가 호프만(Heinrich Hoffman) 출생





1790 -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파에스(Páez, José Antonio) 출생
1398 - 고려시대의 학자, 문신 문익점() 사망
BC 323 -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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