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로 본 오늘 오늘과 사건 0 6.12(2)
1) 2) 3)
1) 1900 - 큐바의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롤단(Roldán, Amadeo) 출생
롤단 [Roldán y Gardes, Amadeo, 1900.6.12~1939.3.7]
2) 1829 - 스위스의 아동문학가 슈피리(Spyri, Johanna) 출생
슈피리 [Spyri, Johanna, 1829.6.12~1901.7.7]
스위스의 작가. 아동소설 〈알프스 소녀 하이디 Heidi〉(2권, 1880~81)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어린이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 그들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과 유머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불후의 명작들을 남길 수 있었다.
1852년 편집일에 종사하던 법률가 베른하르트 슈피리와 결혼한 뒤 취리히로 이주했다. 그녀의 조국애, 자연에 대한 감성,
겸손한 신앙심, 재기발랄함은 작품뿐만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도 독특한 면모를 지니게 했다. 그밖에도 〈프로니 무덤 위의 꽃잎 하나 Ein Blatt auf Vronys Grab〉(1870)·〈실향 Heimatlos〉(1881)·〈그리틀리 Gritli〉(1882)가 있다.
3) 1776 - 버지니아 권리선언 채택
1776년 6월 12일 미국 버지니아 식민지 제헌의회에서 시민의 권리선언인 버지니아 권리선언을 채택했다.
이 권리선언은 15년 뒤 미국연방헌법에 추가된 권리장전의 모델이 되었다. 버지니아 권리선언의 대부분은 조지 메이슨이 작성했다. 이 선언은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똑같이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자신이나 자신의 후손들은 빼앗길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열거된 시민권은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어떠한 사람도 국법에 의한 것이나 혹은 법원의 판결에 의한 것을 제외하고는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금지명령 등을 포함한다. - 브리태니커
메이슨 [Mason, George, 1725.12.11~1792.10.7]
미국의 애국파(愛國派) 정치인.
버지니아 헌법(1776)과 연방헌법(1787) 제정에 참여하면서 개인 자유의 보호를 주장했다.
그는 시대를 앞서 노예제에 반대했고 그것을 허용한 타협적인 헌법을 거부했다.
지주이자 조지 워싱턴의 가까운 이웃이었으며 버지니아의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서부로의 팽창에도 큰 관심을 가져 교역을 증진하고 오하이오 강 상류의 땅을 팔 목적으로 1749년에 세운 오하이오사(社)에서 적극적으로 일했다. 이와 때를 같이해 버지니아에 알렉산드리아 시를 건설하는 데도 힘썼다.
1759년 버지니아 식민지 하원의원 자리를 받아들인 적은 있으나 나쁜 건강과 가족 문제 때문에 대체로 공직에 나가는 일을 피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헌회의에 참석한 것을 제외한다면 이 하원의원직은 그가 앉았던 가장 높은 공직이었다.
그러나 미국 정치제도의 형성에 있어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미국 독립혁명(1775~83) 전야에는 버지니아 출신 애국파들의 지도자로서 공안위원회(Committee of Safety)에서 일했으며 1776년에는 주 헌법의 초안을 작성했다.
그가 만든 권리선언서는 이른바 불가양(不可讓)의 권리이론을 처음으로 천명한 공식문서이다. 메이슨의 권리선언서는
토머스 제퍼슨에게 알려져 그가 독립선언서를 기초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곧 다른 주들도 대부분 이 권리선언서를 모방하기 시작했고 권리보장이 다소 미흡하긴 했으나 연방헌법에도 반영되었다. 그는 1776~88년 버지니아 하원의원으로 있었다.
메이슨은 제헌회의 의원으로 있을 때 1808년까지는 노예무역을 허용하는 타협안에 격렬히 반대했다.
비록 남부 출신이었으나 노예무역을 가리켜 "인간으로서 치욕스런 일"이라며 혹평하고, 노예해방과 노예의 교육을
지지했으며, 자유민 노동 방식을 옹호했다. 새로운 정부에 무한정의 막대한 권력을 부여하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에
다른 버지니아인들과 함께 새로운 헌법을 가결하는 데 반대했다. 제퍼슨파 공화주의자였던 그는 지방정부는 강력해야 하며 중앙정부는 다소 약하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같은 그의 비판에 힘입어 권리장전(權利章典)이 헌법에 추가되었다. 제헌회의가 끝나자 은퇴하여 고향인 건스턴홀로 돌아갔다.
1898 - 필리핀의 지도자 아기날도,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
필리핀의 독립사-필리핀 독립선언
1898년 6월 12일 아귀날도 독재정부는 수천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카비테의 카윗에서 필리핀 독립을 선언했다.
아귀날도 자택의 발코니에서 리안자레스 바우티스트가 자신이 직접 쓴 독립선언문을 낭독했으며
그날 아귀날도는 최초로 필리핀 국기를 선보였고 필리핀 국가 또한 최초로 연주되었다.
필리핀 국기는 필리핀 외교관 펠리페 아콘실로의 아내인 마르셀라 아콘실에 의해 홍콩에서 만들어 졌으며
필리핀 국가는 당시 카비테의 음악교사였던 훌리만 펠리페에 의해 작곡되었다.
1890 - 오스트리아의 화가 실레(Schiele, Egon) 출생
실레 [Schiele, Egon, 1890.6.12~1918.10.31]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도안가·판화가.
에로틱한 구상작품으로 유명하다. 빈 미술학교의 학생시절(1907~09)에 아르 누보의 일환인 독일의 유겐트스틸 운동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무렵 빈 분리파의 지도자인 구스타프 클림트를 만났으며, 작품의 곡선미와 정교함은 클림트의 우아한 장식적 요소에 영향받은 바가 크다. 그러나 그는 장식보다 표현을 강조했으며 열정적인 긴장감으로 선의 감성적 호소력을 높였다. 그는 처음부터 인물 표현에 몰두했고, 성적인 주제를 솔직하고 자극적으로 처리한 점이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1909년 빈에서 신예술가협회의 창립에 한몫 했으며, 1911년부터 유럽 곳곳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1918년 빈에서 열린 분리파 전시회 때에는 실레의 작품을 위한 특별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주요작품으로 〈자기 성찰자 The Self Seer〉(1911)·〈추기경과 수녀 The Cardinal and Nun〉(1912)·〈포옹 Embrace〉(1917) 등이 있다. 그의 풍경화에서도 열정적인 색과 선의 표현을 볼 수 있다.
1842 - 노르웨이의 작곡가 노르로크(Nordraak, Rikard) 출생
노르로크 [Nordraak, Rikard, 1842.6.12~1866.3.20]
노르웨이의 작곡가.
노르웨이 국가인 〈네, 우리는 이 땅을 사랑합니다 Ja, vi elsker dette landet〉(1864)를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작곡했고 15세 때 장사를 배우기 위해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갔지만, 그곳에 있는 동안 장사뿐 아니라
음악도 배웠다. 1859년 사업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포기하고 베를린으로 가서 6개월 동안 음악공부를 계속한 뒤, 노르웨이로 돌아와 다시 2년간 음악을 공부했다. 이 시기에 그는 '새로운 노르웨이 사회'라는 단체에 가입했고, 올레 불과 친교를
맺기 시작했으며, 당시 문학을 비롯한 여러 예술 분야에 널리 퍼져 있던 민족주의운동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그의 피아노곡인 〈4개의 춤곡 Four Dances〉은 1859~60년에 발표되었다. 2년 동안 베를린에서
일한 뒤 코펜하겐으로 갔으며, 코펜하겐에서 에드바르트 그리그를 비롯한 여러 동료들과 함께 이 모임은 젊은 스칸디나비아 작곡가들의 작품만을 연주하는 음악 모임인 '에우테르페'를 창립했다. 1864년 그는 노르웨이 국가를 작곡하여, 그의 사촌이기도 한 작가 비외른스티에르네 비외른손이 쓴 가사와 함께 발표했다. 1865년 5월 일과 공부를 위해 다시 베를린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결핵에 걸려 죽었다.
작품에는 〈메리 스튜어트와 스코틀랜드 Maria Stuart i Skotland〉와 〈시구르슬렘베 Sigurd Slembe〉를 비롯한 부수음악과 무반주 남성합창곡 몇 개, 수많은 성악곡과 기악곡이 있으며 단순함과 표현의 절제미가 그 특징이다.
그의 음악은 자신이 수집한 민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789 - 스위스의 파스텔 화가 리오타르(Liotard, Jean-Etienne) 사망
리오타르 [Liotard, Jean-Etienne, 1702.12.22~1789.6.12]
파스텔 초상화로 유명한 스위스의 화가.
리오타르는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한 뒤 후원자를 따라 나폴리로 갔다가, 1735년 로마로 가서 교황 클레멘스 12세와
몇몇 추기경의 초상화를 그렸다. 1738년에 그는 또다른 후원자인 덩캐넌 경과 함께 콘스탄티노플로 갔다.
1743년에는 빈으로 가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그 가족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특이하게도 동양풍의 의상을 채택했기
때문에 '투르크 화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1753~55년에 영국을 방문해 왕세자비를 비롯한 여러 명사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1756년에는 네덜란드로 가서 일했고, 1772년에는 영국을 다시 방문해 1773, 1774년 왕립 아카데미에서 전시회를 연 다음, 1776년에 제네바로 돌아와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았다.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던 그는 우아하고 섬세한 파스텔화뿐만 아니라 에나멜화와 인그레이빙 및
유리 그림에도 재능을 보였다. 그는 〈회화에 관한 논문〉을 썼고, 미술품 수집가이기도 했다.
그해,오늘무슨일이 총 47건
2010년 진보연대 한상렬 목사 무단 방북 2009년 이란 대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 재선 2005년 김대중 전 대통령, 독일정부로부터 대십자공로훈장 수여 2003년 16만년 전 최고(最古) 인류 유골 발견 1995년 북미 준고위급회담서 경수로 지원협상 타결 1994년 오스트리아 EU가입 결정 1992년 브라질에서 `지구환경정상회담` 개막 198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분리돼 연구기관으로 독립 1989년 알폰신 아르헨티나 대통령 사임 1986년 언론인 선우휘 선생 사망 1985년 스페인.포르투갈 유럽연합(EC) 가입 1984년 코메콘 정상회담 모스크바서 개막 1983년 경상남도 양산군서 열차, 버스충돌, 6명사망 35명 부상 1983년 한국, 제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에서 4위 기록 1982년 5백원짜리 새주화 발행 1981년 한국언론연구원 발족, 초대 이사장에 조선일보사 방우영 사장 취임 1980년 오히라 일본 수상 과로로 사망 1975년 인도 고법, 간디수상 선거부정 유죄판결 1973년 제3차 남북조절위원회 서울서 개최 1972년 법률구조협회발족 1971년 유엔측, 비무장지대의 평화이용 제의 1964년 소련,동독 20년 우호조약 조인 1962년 한국-칠레, 국교 수립 1962년 라오스 임시연합정부 수립 1958년 이원영경사 월북사건 발생 1955년 사육신 묘에 육각묘비 건립 1950년 6·25 전쟁 13일 전… 한국은행 창립 1944년 독일 장거리로켓 V1, 런던 공격 시작 1943년 암태도(岩泰島) 소작쟁의 지도자 서태석 사망 1942년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를 쓰기 시작 1941년 일본, 소련 통상무역협정체결 1935년 조선일보 태평로 신사옥 준공 1933년 세계공황대책을 협의키 위한 세계경제회의 런던서 개막 1929년 안네 프랑크 출생 1926년 임시정부, 상해에서 광동으로 이전 결의 1925년 우리나라 두번째 민간 비행사 장덕창, 모국방문 비행 1924년 미국 제41대 대통령 조지 부시 출생 1912년 1901년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파시 사망 1874년 근대 전통춤 명인 한성준 출생 1871년 대원군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게 함 1854년 미국 발명가 이스트만 출생(롤필름 발명) 1829년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작가 슈피리 출생 1780년 스위스의 초상화가 장 리오타르 사망 1494년 일본 침략군 인천 상륙 1494년 남아메리카 대륙 발견 1099년 고려 윤관(尹瓘), 송나라에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가져옴 770년 신라, 5월에 나타난 혜성 사라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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