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로 본 오늘과 사건 06. 11(2)
1776 - 영국의 풍경화가 컨스터블(Constable, John) 출생
컨스터블 [Constable, John, 1776.6.11~1837.3.31]
영국 화가. 이스트 버그홀트 출생. 자연주의적 풍경화를 그려 낭만주의적 업적을 남겼다. J.W.M. 터너의 작품과 함께
프랑스 인상파에 큰 영향을 주었다. 1799년 런던 로열아카데미에 입학하여 R. 윌슨과 네덜란드파를 모방하였으며, T. 거틴의 기법에 관심을 가졌다. 1802년 로열아카데미 전람회에 입선하였으나 화단(畵壇)과 자신의 방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귀향하여 풍경화에 몰두하였다. C. 로랑·N. 루생·J.I. 로이스달·T. 게인즈버러 등의 예술을 찬미하였으며 풍경화에 초록색을 사용하여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갈색계통 색조에서 벗어나 크게 주목받았다. 또한 기존 개념에 얽매인 풍경화를 신선한
감각으로 재구성, 자연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야외에서 햇빛 처리문제를 해결하였다.
그 결과 프랑스 낭만파의 색채나 외광파의 빛 묘사에 영향을 주었고 놓치기 쉬운 미세한 부분에도 생명력을 불어넣는 풍경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건초를 실은 수레(1924)》 《옥수수밭의 풍경(1826)》 《솔즈베리사원(1831)》 등이 있으며, 1833년 화집 《영국의 풍경화》를 출간하였다. - yahoo
1808 - 스위스의 법률가 케른(Kern, Johann Konrad) 출생
케른 [Kern, Johann Konrad, 1808.6.11~1888.4.14]
스위스의 법률가. 오랫동안 프랑스 주재 스위스 공사를 지냈으며 1848년의 스위스 연방헌법을 기초했다.
변호사이자 법학박사로 1837년 이후 투르가우 주정부에서 특히 사법행정의 지도적 인물로 활약했다. 전국의회 의원으로서 거의 유일하게, 프랑스 정부를 정복하려 한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인도를 반대했다(1838).
그는 7개의 가톨릭 주로 구성된 존더분트 연맹의 교권주의 정책에 맞서 싸웠고 결국에는 무력진압을 제안했다(1847. 11). 뒤이어 발생한 존더분트 전쟁 이후 보드의 앙리 드뤼이와 함께 새로운 연방헌법을 기초했고(1848) 새 헌법이 승인된
후에는 연방대법원 원장으로 복무했다. 1857년 뇌샤텔 분쟁을 중재해주도록 프랑스 정부를 설득하는 사명을 띠고 파리로 파견되었다. 결국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뇌샤텔 주에 대한 자신의 권리주장을 포기했다.
1883년까지 프랑스 주재 스위스 공사로 근무했다. - 브리태니커
- 고산 윤선도 탄신 400주년 기념 (1987.6.22. 발행)
1671 - 조선 중기의 문신, 시인 고산 윤선도(尹善道) 사망
윤선도 [尹善道, 1587~1671]
고산은 해남 윤씨의 16대손 의정부 우참찬을 지낸 윤의중에게 유심.유기.유순 세아들이 있었는데 고산은 유심의
세 아들 중 둘째로 1587년 6월 22일 서울시 종로구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해남 종가에 아들이 없어 입양돼 대를 잇고 있던 작은아버지 유기 역시 아들이 없자 고산은 여덟살 때부터 유기의 양자로 입양돼 해남 연동에서 자랐다. ...
고산은 유배에서 풀려난 2년 뒤인 1671년 6월 11일 완도군 보길도 낙서제(樂書齊)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5세였다.
본관 해남(海南). 자 약이(約而). 호 고산(孤山) ·해옹(海翁). 시호 충헌(忠憲). 1612년(광해군 4) 진사가 되고,
1616년 성균관 유생으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 등의 횡포를 상소했다가 함경도 경원(慶源) 등지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낙향, 여러 관직에 임명된 것을
모두 사퇴했다. 1628년 별시문과(別試文科) 초시(初試)에 장원,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어 봉림대군(鳳林大君:孝宗)을
보도(輔導)했다. 1629년 형조정랑(刑曹正郞) 등을 거쳐 1632년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지내고
1633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문학(文學)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고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은거했다.
1652년(효종 3) 왕명으로 복직, 예조참의 등에 이르렀으나 서인(西人)의 중상으로 사직했다가 1657년 중추부첨지사(中樞府僉知事)에 복직되었다. 1658년 동부승지(同副承旨) 때 남인(南人) 정개청(鄭介淸)의 서원(書院) 철폐를 놓고 서인 송시열(宋時烈) 등과 논쟁, 탄핵을 받고 삭직당했다. 1659년 남인의 거두로서 효종의 장지문제와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를 가지고 서인의 세력을 꺾으려다가 실패, 삼수(三水)에 유배당하였다.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經史)에 해박하고 의약 ·복서(卜筮) ·음양 ·지리에도 통하였으며, 특히 시조(時調)에 더욱 뛰어났다.
그의 작품은 한국어에 새로운 뜻을 창조하였으며 시조는 정철(鄭澈)의 가사(歌辭)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사후인 1675년(숙종 1) 남인의 집권으로 신원(伸寃)되어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저서에 《고산유고(孤山遺稿)》가 있다.
1644 - 토리첼리의 기압계 발견이 알려짐
이탈리아의 수학자, 물리학자 토리첼리(Torricelli, Evangelista, 1608~1647)는 파엔차에서 출생,
로마에서 수학자 카스텔리에게 배운 후 G.갈릴레이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피렌체에서 그의 지도 아래 갈릴레이의
저서 《신과학대화(新科學對話)》의 속편을 집필하던 중 갈릴레이가 사망하였다.
이후 갈릴레이의 계통을 이어받은 학자로서 갈릴레이의 역학(力學)을 전개하였다.
즉 유체동역학(流體動力學)을 개척, 1644년 발표한 유속(流速)과 가압(加壓)의 크기에 관한 법칙이 ‘토리첼리의 정리’이다. 분출하는 물이 그리는 곡선의 연구와 포물체의 운동에 대한 연구도 있다.
1643년 V.비비아니와 함께 수은을 채운 폐관(閉管)을 수은용기 속에 거꾸로 세워, 폐관 상부에 진공이 생기는 것
(토리첼리의 진공)을 발견하고, 이것이 대기압에 의한 것임을 설명하여 수은기압계(水銀氣壓計)를 발명,
진공 연구에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피렌체 아카데미 수학 교수를 지냈다.
주요저서로 《Trattato del Moto》(1641 이전) 《Opera Geometrica》(7부, 1644) 등이 있다.
- '단종 영정' 김기창 그림 (영월 진문규 님 자료제공)
1455 - 수양대군,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로 즉위
1455년 윤6월11일, 왕위에 올라 갓 3년을 보낸 단종이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수양대군이 2년 전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등과 친동생 안평대군을 죽이고 실권을 장악한 뒤부터
명목상의 임금으로 근근히 왕권을 유지해왔으나, 수양대군이 단종의 측근들을 유배시키며 압력을 조여오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왕위를 포기한 것이다.
단종은 태어난지 3일 만에 어머니가 숨지는 불운을 겪었지만 할아버지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8세 때 세손, 10세 때 세자로 책봉돼 나름대로 순탄한 길을 걸었다. 그러나 세종이 죽고 병약한 아버지 문종마저 즉위 2년 만에 죽자
단종은 1452년 5월,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기구한 운명 속으로 내몰렸다. 상왕으로 물러난 단종을 위해 사육신 등이
한때 복위를 시도했지만 그들의 목숨은 물론 단종의 수명까지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결국 단종도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1457년 6월 노산군으로 강봉당해 강원도 영월땅 청령포로 유배됐다.
그해 12월 사약을 받고 영월 장릉에 묻혀 조선 임금 중 유일하게 경기도 밖에 묻힌 왕이 됐다.
그해,오늘무슨일이 총 45건
2015년 위안부 피해 김외한 할머니 별세
2015년 위안부 피해자. 포항 김달선 할머니 90세로 별세
200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고속도로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인터체인지’ 표지판 헌정
2004년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현대 비자금 150억원 받은 혐의로 징역 12년 선고
2003년 ‘영화 100년간 최고의 영웅’, 그레고리 펙 별세
2003년 프로 테니스선수 앤드리 애거시, 1000번째 경기 수립
2001년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 폭파범 멕베이 사형
1999년 월북작가 함세덕 희곡 ‘무의도 기행’ 국립극단서 처음 공연
1998년 중-일 공산당, 문화대혁명 이후 단절되었던 상호관계 정상화하기로 합의
1997년 제2차 북미 미사일 회담 (뉴욕. -13일)
1995년 설치미술가 전수천, 베니스비엔날레서 특별상 수상
1988년 사회정화위원회 폐지
1985년 소련의 금성탐사위성 베가1호의 착륙선이 금성에 착륙
1984년 이탈리아의 공산당 서기장 베를링구에르 사망
1981년 제1공영호(선원21명) 서해북방한계선서 납북
1981년 이란의 켈만주에 대지진, 1500~3000명 사망
1980년 음주측정기를 이용한 음주운전 단속 시작
1980년 알지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총회, 원유의 가격통일 실패
1979년 한국-쿠웨이트, 국교수립
1979년 영화배우 존 웨인 사망
1979년 미국 민간대외원조협회(CARE) 한국서 철수
1977년 네덜란드군, `몰루카` 테러범 습격 인질 51명 중 49명 구출
1976년 김영삼 총재사퇴 선언
1974년 브라질의 대통령(1945-50) 두트라 사망 - 입헌민주주의 회복
1971년 리비아, 대만과 단교 중국 승인
1970년 러시아 총리, 알렉산드르 표도로비치 케렌스키 사망
1969년 캄보디아, 미국과의 국교재개를 통고
1968년 프랑스, 반드골 학생데모 격화
1965년 베트남 쿠데타(5차)로 웬반티우 장군, 웬까오끼 장군 공동 집권
1942년 미국-소련 상호원조조약 조인(워싱턴)
1930년 중국 중앙위, 이입삼노선 채택 (도시무장봉기 결의)
1925년 삼시협정(미쓰야협정)으로 재만(在滿)한인의 단속강화
1923년 경성무선전신국 설치
1908년 의병장 허위 피체
1901년 바이올린 연주자 채동선 출생
1899년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한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출생
1895년 1955~1958년 소련총리로 재임한 불가닌 출생
1894년 동학군 전주성포기 동학혁명 종식 관군 전주성 점령
1880년 미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 랜킨 출생
1864년 20세기 초 대표적인 독일의 작곡가 슈트라우스 출생
1847년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지도자 포셋 출생
1815년 영국의 초상 사진작가 캐머런 출생
1475년 신숙주 사망
1455년 수양대군,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에 즉위
1294년 영국의 신학자 겸 철학자 로저 베이컨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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