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우표와 사건 06.02(1)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 2) 3)
1) 1987 - 에스파냐의 기타 연주자 세고비아(Segovia, Andres) 사망
세고비아 [Segovia, Andres, 1893.2.21~1987.6.2]
에스파냐의 기타 연주자.
리나레스 출생. 14세 때 데뷔하고, 성인이 된 후 유럽과 미국을 연주여행하여 인정을 받았다. 현대 기타음악은 에스파냐의 F.타레가에서 비롯되었는데, 세고비아는 이의 완성에 많은 역할을 하였다.
세고비아가 고전적인 기타음악을 세상에 소개하여 그 예술적인 가치를 일반에게 알린 공적도 크지만, 다른 악기를 위한
작품을 기타용으로 편곡하고, 예술적인 향기가 높은 연주로 세상에 널리 보급시킨 공적 역시 이에 못지 않게 크다.
수많은 작곡가가 그에게 작품을 헌정하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또한 그는 이탈리아의 시에나에 있는
기지음악학교에서 후진양성에도 진력하였다.
2) 2009 -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
2009년은 한국 만화가 100주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이다.
1909년 6월 2일, 항일사회단체인 대한협회는 국한문 일간지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이도영(1884∼1933)의 시사만화를 실었다. 한국 만화 역사의 첫 페이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후 광복과 분단, 독재로 이어진 암울한 근현대사에서 만화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고,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날카로운 혀가 되었다. 그리고 딱히 즐길 만한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 삶의 작은 즐거움으로 우리 곁에 있어 왔다. 한때는 하위문화라며 소외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영화와 드라마, 게임, 학습, 광고 등 문화 산업 전반에서 중요한 콘텐츠로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멋진 모습으로 성장해 온 한국 만화의 힘을 믿으며 100년 뒤에도 때로는 배꼽 빠지는 유머로, 때로는 촌철살인의 풍자로 우리 일상의 즐거움이 되고, 고된 삶의 작은 탈출구가 되어 주길 기대해 본다.
한국 만화 100주년을 축하하며 추억의 만화 중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과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 김수정의 ‘아기 공룡 둘리’, 윤승운의 ‘맹꽁이 서당’, 신문수의 ‘로봇 찌빠’를 소개하는 기념우표 1종을 발행한다. (우표발행안내) kstamp
3) 1970 - 미 F4 팬텀기 2개 대대 군산에 도착
F-4 팬텀기 도입 : 박대통령의 불같은 응징의 의지를 달래고자 한 미국의 약점을 간파하여 우리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팬텀기를 토입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일본조차도 F-104를 운영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거의 F22랩터를 도입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 였습니다. 1969년에 우리가 팬텀기 1개 대대(18대)를 운영하던 시기만 하더라도 미국외에는 영국만 운영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전략적 전폭기 역할을 수행하는 팬텀기를 도입하기 위해서 박대통령은 월남파병에 반대급부적 조건으로까지
이용하였습니다. 당시 우리 측 협상 대표인 최규하 외무부장관을 불러 “팬텀기 지원을 보장받지 못하면 회담을 깨고
나오라”고 지시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팬텀기를 보유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특기할 만한 것으로, 미국 이외로서는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F-4 운용국가가 된 것 뿐만 아니라 동북 아시아 최강의 항공전력을 보유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한편 일본의 항공자위대는 1970년 도입을 결정하여 1973년에 F-4E를 도입 개시하였습니다.
- 역사토론방 www.powercorea.com
F-4 팬텀(F-4 Phantom) : F-4 팬텀은 1950년대에 미해군이 맥도넬사에 개발을 의로한 함대 방공 전투기이다.
당시로서는 상식을 상회하는 대형 쌍발기였으며 큰 파워를 바탕으로한 고성능과 다용도성을 인정받아 미공군
미해군을 비롯한 서방 각국에서 채용하여 총 생산대수 5,129대를 기록하였다. 미공군은 와일드 위슬형 F-4G가 1996년에
퇴역한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기체가 퇴역하였으며, 표적용 Qf-4N/S(해군), QF-4E/G(공군) 기체만이 소수 사용중이다.
2008 - 이틀째 대규모 거리시위 강제해산…70여명 연행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9일째 `촛불 거리시위'가 2일 오전 4시30분께 경찰의 강제 해산 작전으로
9시간여만에 마무리됐다.
경찰은 지난달 31일부터 1일 아침에 걸쳐 거리시위자 228명(3명 훈방)을 연행한 데 이어 대규모 거리시위
이틀째인 1일 밤부터 2일 새벽까지 진압 과정에서 70여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했다.
전날 오후 7시45분께 서울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태평로 일대로 쏟아져나온 시민 2만여명(경찰추산·주최측 추산 3만여명)은 세종로사거리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청와대 방면 진출을 막는 경찰과 대치하며 밤샘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경찰이 행진을 저지하기 위해 세종로 차도에 주차해 둔 전경버스 약 20대 중 4대를 밀어냈으나 차벽을 뚫고 나가는
데는 실패했다.
대치 5시간만인 2일 오전 0시45분께 경찰은 대규모 경력을 투입하고 분말소화기 등을 뿌리면서 세종로 일대 차로에 남아있던
시위대 3천여명을 좌우측 인도와 서울광장 방면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해 오전 4시30분께 작전을 완료하고 차량 소통을 재개시켰다.
전날 시위 진압 과정에서 `물대포'를 쏘고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했던 경찰은 이날은 물대포 사용 등은 자제했지만 일부 시민들이
방패에 맞거나 밀려 넘어져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차로에서 밀려난 시위대는 그대로 귀가하지 않고 서울광장과 인근 인도,
횡단보도 등에서 마무리 집회를 벌였다.
(서울=연합뉴스) 한겨레 2008-06-02 오전 05:32:26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91025.html
시민·사회단체 ‘쇠고기수입·대운하 반대’ 100인 시국선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최병모 변호사 등 시민.사회단체
인사 100명은 2일 한미 쇠고기 수입과 대운하 건설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통해 "대통령과 정부가
현 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쇠고기 재협상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통령은 지난 100일 동안 비도덕적 공직자 인선, 학교 자율화, 공영방송 장악, 공공부문 민영화, 대운하 건설 사업,
쇠고기 수입 협정 등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정책들을 일방적으로 추진해왔다"며 "이것이 바로 지난 한 달 동안 시민들이
촛불을 밝혀야 했던 이유"라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쇠고기 수입 협상 결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졸속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재협상을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에 대통령과 정부는 변명과 거짓 해명으로 일관해왔다"며 "촛불집회는 전면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은 지금 오히려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쇠고기 수입 협상과 대운하 사업, 공영방송 장악 시도 등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삼 기자 jslee@yna.co.kr (서울=연합뉴스) 한겨레 2008-06-02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91038.html
- 공중전화 카드
1980 - 장기신용은행 개점
한국장기신용은행은 1967년 4월 한국개발금융(주)으로 출발하였으며, 1968년 국제금융공사(IFC) 등 9개 외국은행의 출자로 외국인투자 기업등록을 하였고, 1969년 5월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였다.
1971년 6월과 1975년 2월에 한국투자금융(주)과 한국개발리스(주)를 각각 설립하였다. 1979년 장기신용은행법이 공포되자 1980년 6월 업종을 바꾸어 지금의 상호로 법인 전환하였다. 금융업을 확대하기 위해 1987년 4월, 1989년 10월, 1997년 3월에 장은경제연구소(주), 장은투자자문(주), 장은선물(주)을 각각 설립하였다.
주요 사업으로 민간기업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기업의 설립, 시설의 확장·개체 등에 소요되는 내·외자 시설자금을 민간기업에 지원하였고, 장·단기 운전자금 등을 공급하였다. 또한 장기 신용채권을 일반에게 매출하였으며, 예금·적금 및
내외국환 업무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산업자금의 융자를 주업무로 하는 한국산업은행과 업무내용에 유사한 점이 있으나, 한국산업은행이 전액 정부출자의 국책은행인 데 비해 한국장기신용은행은 순수한 민간은행이라는 점이 다르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 사태 이후 은행권의 구조조정으로 1998년 12월 국민은행(주)에 흡수합병되었다.
1979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폴란드 방문
1979년 오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공산국가인 조국 폴란드를 방문한다.
그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도착하자 거리로 나온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찬송가를 부르거나 기도를 하며 열광적으로 환영한다.
교황은 폴란드 국민들의 신앙심이 더 굳건해지기를 기원했다.
바오로 2세는 9일 동안의 방문 기간에 젊은이들과 어울려 민요를 부르는 등 폴란드 국민에게 친근한 교황으로서 인상을 남겼다.
그의 방문은 폴란드 국민의 자유에 대한 갈증을 분출시켜 14개월 후 폴란드 자유노조 운동의 탄생을 가져왔다.
-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탄생 (2008.4.8. 발행)
1978 - 한국 최초의 우주인(우주비행 참가자) 이소연(李素姸) 출생
이소연 [李素姸, 1978.6.2~ ]
이소연(李素姸, 1978년6월 2일/음력 4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연구자로, 2008년 4월, 대한민국 최초로 우주 비행 참가자(Space Flight Participant)로서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11일간 체류하였다. 전 세계적으로는 475번째, 여성으로서는
49번째 우주인이며, 역대 3번째로 나이가 적은 여성우주인이다. 아울러, 2명의 아시아계 미국인을 포함하여
4번째 아시아 여성우주인이기도 하다.
약력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아버지 이길수씨와 어머니 정금순씨의 1남 2녀 중에 첫째이다. 광주과학고등학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8년 3월에는 바이오시스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우주 여행
대한민국 과학기술부(현 교육과학기술부)가 2000년 12월 러시아와 공동으로 우주여행자 양성계획을 수립하고, 2006년 4월에 우주여행자 모집공고를 한 이래, 전체 지원자 3만 6206명중 고산과 함께 최종후보 2인으로 선발되었다. 두 사람은 2007년 3월부터 모스크바 북동쪽 근교의 스타 시티에 위치하는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GCTC)에서 우주적응과 우주과학 실험수행을 위한 기초 훈련을 받았다.
2007년9월 5일 고산이 우주 비행 참가자로 선정, 이소연은 고산이 만일의 문제로 탑승할 수 없을 경우를 대비 예비 우주 비행 참가자로 선정되었으나, 2008년 3월, 고산의 관련 보안 규정 위반으로 인해 이소연이 우주 비행 참가자, 고산이 예비 우주 비행 참가자로 변경되었다.
ISS에서는 9박 10일간 머물면서 18가지 우주과학 실험 등의 우주임무를 수행하고, 한국시각 4월 19일 오후 2시 6분 30초에 기존에 머물고 있던 엑스퍼디션 16의 공식 크루멤버였던 러시아의 유리 말렌첸코, 미국의 페기 윗슨과 함께 소유스 TMA-11로 갈아타고 도킹을 풀었고, 한국시각으로 오후 5시 28분경 예상착륙지점에서 420km 떨어진 카자흐스탄 국경 부
근의 오르스크시 남동쪽 초원지대에 착륙, 귀환하였다.
1970 - 금산 위성통신지국 개국
우리나라 최초의 위성지구국인 금산 제1위성통신지구국이 1970년 6월 2일 충청남도 금산에서 개국됐다. 높이 35m의
콘크리트지주 위에 세운 직경 27m의 원형안테나와 부속시설은 체신부가 1969년 5월 총공사비 18억 4천만원을 들여 착공,
1년 만에 완공한 것이었다.
이 지구국을 통해 태평양지역 통신위성 인텔새트(INTELSAT)Ⅲ호에 접속하여 태평양 연안 7개 국가간 136회선의 국제통신망이
구축됐다. 세계에서 31번째로 국제통신위성기구 가입국이 된 우리나라는 이로써 태평양상에 떠있는 통신위성 인텔새트Ⅲ호, F-4의 중계로 전세계에 전파를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또 바다건너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안방에서 듣고 볼 수 있게 됐다.
금산위성통신지구국 개국 후 우리나라의 국제통신은 경제성장에 발맞춰 빠른 속도로 성장, TV뿐 아니라 태평양연안과의 직통전화 회선도 늘고 빨라지게 됐다.
1977년 9월에는 인텔샛 인도양 위성용 금산2국이 개통되어 서유럽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에도 국제회선을
공급함으로써 서비스와 운용상의 문제점을 해결하여 균형을 갖춘 국제통신망 발전을 도모했다.
국제위성통신망은 국가 경제활동의 필수적인 국제통신 서비스는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개최되는
각종 국제행사 및 해외 현지 스포츠의 위성TV 생중계 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55 - 유고-소련 평화협정 체결(베오그라드 선언)
1955년 5월 26일 소련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베오그라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티토와 악수를 나누고 레닌의 이름으로 국제 노동자 운동을 위해 화해할 것을 요청했다. 독자노선을 취하고 있는 티토에 대한 소련의 이같은 태도변화에는 양국의 관계단절 이후 7년이 소요됐다.
소련수상 니콜라이 불가닌을 포함한 고위대표단을 대동한 흐루시초프는 1948년 공산권에서 축출된 유고에 이념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또한 과거 유고에 취했던 도발적인 태도에 대해 사과하고 이를 1953년 처형된 전 소련 내무장관 라프렌티 베리아의 음모로 돌렸다.
6월 2일 소련의 흐루시초프 수상과 유고의 티토 대통령은 양국화해의 베오그라드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은 1.유고슬라비아는 중국의 대만에 대한 영토권 주장을 지지한다. 2.유고와 소련은 독일문제의 해결을 지지하며 이 해결은 독일 인민의 소원 및 일반안전보장에 대한 기여와 일치하는 민주주의적 원칙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3.양국 정부는 조약체결을 통하여 독립된 구주집단안보기구를 지지한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1953 -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거행
1953년 6월 2일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에서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에드워드 8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조지 6세의 큰딸로 태어났다. 1947년 엘리자베스 공주는 영국 해군 중위 필립 마운트배튼과 결혼해 큰아들 찰스 왕자를 낳았다. 1951년 여름부터 아버지 조지 6세의 건강이 악화되자 여러 국가행사에 참여해 아버지를 대행하다가, 1952년 2월 6일 조지 6세가 사망함으로써 왕위를 넘겨받게 되었다. 그녀는 왕실 가정생활의 텔레비전 중계를 처음으로 허용했으며
여동생 마거릿 로즈 공주의 파혼을 묵인하기도 했다. 또한 검소한 궁중생활을 선호하며 신중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1940 - 그리스의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Constantinos Ⅱ) 출생
콘스탄티노스 2세 [Constantinos Ⅱ, 1940.6.2~ ]
제2차 세계대전 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망명생활을 한 뒤, 1946년 그리스로 돌아왔다. 1947년 아버지가 그리스 왕위에 올라
파울로스 1세가 되자 콘스탄티노스는 황태자가 되었고, 1964년 3월 6일 아버지가 죽자 왕위를 물려받았다. 좌익이 군대에 침투하는 것을 두려워한 그는 1965년 7월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를 해임하고 임시내각을 구성했다. 그러나 1967년 4월 21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그해 5월에 실시할 계획이었던 선거마저 무산되었다. 1967년 12월 13일 그리스 북부지방에서
역(逆)쿠데타를 시도했지만 동조자를 거의 얻지 못했고,
그는 가족과 함께 로마로 탈출했다. 군사정권은 왕국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고,
도망친 콘스탄티노스를 대신할 섭정관을 임명하는 한편, 왕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좋다고 허락했다. ...
1933 - 충무공 영정 봉안, 제승당(制勝堂) 중건 낙성
1593년 8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받아 한산도에 통제영 본영을 설치했을 때
지금의 제승당 자리에 막료 장수들과 작전 회의를 하는 운주당(運籌堂)을 세웠다.
정유재란때 폐허가 된 이곳에 제 107대 통제사 조경(趙儆)이 1740년 유허비(遺墟碑)를 세우면서 운주당 옛터에
다시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 이름했는데,지금 걸려 있는 "制勝堂" 현판은 제 107대 통제사 조경이 쓴 글씨이다.
1976년 지금의 제승당과 충무사, 한산정, 수루 등을 새로 짓고 경내를 정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학생들 수학여행 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사적지이다.
통영시청 관광과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1882 - 이탈리아 통일운동가 가리발디(Garibaldi, Giuseppe) 사망
1857 - 영국의 작곡가 엘가(Elgar, Edward) 출생
1840 - 영국 시인, 소설가 하디(Hardy, Thomas) 출생
1835 - 교황 비오 10세(Pius Ⅹ, Saint)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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