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 - 이탈리아 통일운동가 가리발디(Garibaldi, Giuseppe) 사망
가리발디 [Garibaldi, Giuseppe, 1807.7.4~1882.6.2]
니스에서 선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르디니아 해군에 복무중 청년 이탈리아당의 혁명운동에 가담하였다가 1834년 관헌에 쫓겨
프랑스로 피신하였다. 프랑스에서 남미로 건너간 그는 리오그란데와 우루과이의 독립전쟁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848년 해방전쟁이 일어나자 귀국, 의용군을 조직하여 참가하였으나 패배한 후 로마의 혁명공화정부에 참가하여
나폴레옹 3세의 무력간섭에 대한 방어전을 지휘하였다.
이듬해 공화정부가 붕괴되자 뉴욕으로 망명하였다가 1854년 귀국하여 카프레라섬에서 살았다. 이 무렵부터 공화주의로부터 사르데냐왕국에 의한 이탈리아통일주의로 전향, 1859년의 해방전쟁에서는 알프스 의용대를 지휘하였고, 이듬해 5월에는 ‘붉은 셔츠대’를
조직하여 남이탈리아왕국을 점령, 사르디니아왕에 바침으로써 이탈리아통일에 기여하였다.
한때 카프레라섬으로 물러났으나, 로마 병합이 늦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18 62년과 1867년에 의용병의 로마탈취를 시도하였다가 실패, 카프레라섬에 연금되었다. 1870년 L.강베타의 모병에 호응하여 프랑스로 건너갔으며, 이듬해 보르도 국민의회에 선출되었으나, 프랑스인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 다시 카프레라섬으로 돌아와 사회사업 등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1857 - 영국의 작곡가 엘가(Elgar, Edward) 출생
엘가 [Elgar, Edward, 1857.6.2~1934.2.23]
영국의 작곡가. 잉글랜드 우스터 출생. 가톨릭교회 오르간 연주자의 아들로 태어나 한때 아버지의 권유로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였으나, 음악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못하고 독학으로 각종 악기의 연주법과 작곡법을 습득하였다.
1880년경부터 직업음악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1900년 오라토리오 《제론티어스의 꿈》으로 파셀 이후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고,
31년 준 남작(男爵)의 작위를 받았다.
작풍은 후기낭만파에 가까우며 대표작에 전기 오라토리오 외에 관현악변주곡 《수수께끼》(1898),
교향시 《팔스타프》(1913) 등이 있다.
1840 - 영국 시인, 소설가 하디(Hardy, Thomas) 출생
하디 [Hardy, Thomas, 1840.6.2~1928.1.11]
하디는 후기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영국 남서부 도싯 지방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중등교육을 마친 뒤 건축가의 제자가 되었다. 도체스터와 런던에서 주로 교회나 사제관을 설계하고 복원하는 건축가들을 도와
일하면서 폭넓은 독서와 함께 시를 썼다. 30세를 전후해 소설을 쓰기 시작해 <광란의 무리를 떠나서 Far from the Madding Crowd>(1874)로 처음 호평을 받았다. 이후 창작에 전념한 그는 영국 남서부 지방을 배경으로 한 <귀향 The Return of the Native>
(1878)·<캐스터브리지의 시장 The Mayor of Casterbridge>(1886)·<테스 Tess of the D'Urbervilles>(1891)·<미천한 사람 주드 Jude the Obscure>(1895) 등 이른바 '웨식스 소설'들을 발표했다. 중년에 접어들면서는 다윈의 진화론 및 뉴턴의 물리학에 근거한 결정론에 지배되는 비관적 세계를 그렸다. 또한 그는 소설 속에 주어진 운명에 헛되이 저항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인물들을 많이 등장시켜 엄격한 도덕 관습을 요구하는 빅토리아 시대에 큰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후 그는 <미천한 사람 주드>를
끝으로 소설에서 손을 떼고 시를 쓰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항상 소설보다 시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그는 이전부터 써온 시들을 모아 <웨식스 시집 Wessex Poems>(1898)을 발표했고, 이후에는 <과거와 현재 시집 Poems of the Past and Present>(1901),
장편 시극 <패왕 The Dynasts>(1903~08), <타이태닉호의 침몰 The Convergence of the Twain>(1912) 등 많은 시집을 냈다.
"비관주의란 간단히 말해 일종의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더 잃을 것이 없고 오히려 뭔가를 얻을 수 있으므로 결코 손해볼 것이 없는 인생관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좀더 나은 상황이 닥쳤을 때 산다는 것이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질 것이다."
- 토머스 하디
1835 - 교황 비오 10세(Pius Ⅹ, Saint) 출생
비오 10세 [Pius Ⅹ, Saint, 1835.6.2~1914.8.20]
이탈리아의 리에세 출생. 1893년에 추기경, 1903년에 교황이 되었다. 교회의 개혁에 헌신하였고, 교회법의 편찬,
신학교육의 충실, 성서연구의 권장, 성체배령(聖體拜領), 교회음악의 규정, 시복시성(諡福諡聖)의 추진 등 성속신자(聖俗信者)들의 종교생활 쇄신에 힘썼다. 대외적으로는 이른바 근대주의에 대한 논박(論駁), 정치적 중립의 주장, 노동조합의 용인,
교회에 대한 국가불간섭(國家不干涉)의 요구, 교황사절관(敎皇使節舘)의 설치 등 많은 일을 하였다.
출처 :함께 여는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 천둥산
'오늘의 뉴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우표와 사건 06.03 (0) | 2019.06.03 |
---|---|
오늘의 우표와 사건 06.02(1) (0) | 2019.06.03 |
오늘의 우표와사건 06.01 (0) | 2019.06.01 |
오늘의 우표와 사건 06.01 (0) | 2019.06.01 |
오늘의 우표 05,31(2) (0) | 2019.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