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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천부교 간부들에게 묻고 싶다.

 

 

 

천부교 간부들에게 묻고 싶다.

 

양심이란 무엇인가?

양심이란 "도리를 지키려/행하려는 마음"을 말한다.

양심적인 사람은 도리를 지키는 사람

종교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다.

 

일반적인 양심을 신앙심과 대비하여 언급해 볼때

너의 양심(신앙심)에 따라 행동해라. 즉 너희가 도리/도덕(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여라. 이처럼 양심(신앙심)은 종종 도덕(믿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나가려는 도리(믿음)의 기초인 양심(신앙심)에 따라 행동 하였을 때 다시 말해 도덕(믿음)이 행해졌을 때, 비로소 사회에서 우리는 양심(신앙심)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천부교내에서 말하는자유 율법을 실천해 나가는 도리/도덕(믿음)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도덕(믿음)이 행해지는 것과 도덕(믿음)은 같은 것일까?

 도덕(믿음)을 행하는 것과 도덕(믿음)을 아는 것은 다르다.

분명 도덕(믿음)을 기초로 행해지지만, 도덕(믿음)을 행하는 것과 도덕(믿음)을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양심(신앙심)은 도리/도덕(믿음)에 기초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도리/도덕(믿음)과는 같다고 말할 수 가 없다. 상대가 부정한 도리(믿음)로 한 점 흠 없는 양심(신앙심)을 꾸짖을 수 있는가? 하나님을 위하여 의지하며 실천한 양심(신앙심)은 꾸짖지 못한다. 신앙에서 인간의 행위를 꾸짖는 것은 인간적인 이성이다.

조직의 힘으로 양심을 꾸짖었다.

양심(신앙심)은 이성의 행위에 양심(신앙심)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판단한다. 이때 양심을 파악하는 기준이 '도리/도덕'(믿음)이 법규로 판단하는 종교적인 이성과 만난다.

 

'이성''도리/도덕(믿음)'에 의해 양심(신앙심)을 구분하고 신앙심의 행위에 대한 판결 하는것이다. 즉 꾸짖는 것은 이성의 역할이다. 이성이 꾸짖을 때의 기준이 양심(신앙심)의 유무이다. 양심(신앙심)을 판단하는 기준은 도리/도덕(믿음)이다. 그런데도 말로만 자유 율법과 양심의법을 주장하는 그들은 양심(신앙심)이 없이 사회인 보다 저급한 수준으로 이성에 의한 권징재판을 행하였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 20조에서 종교의 자유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만 양심이 윤리적 차원의 사고이지만 일반재판에서는 논리적 차원에서 판단 한다는 점에서 양심의 법 보다 엄격하고 세부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권징재판은 일반 형법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사실에 대하여 자신들의 과오를 합리화 하기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신앙심에 대법원 판례를 받아드린것은 억지에 불과하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도리/도덕(믿음)에 근거한 양심(신앙심)이 아니다.

 

그러므로 꾸짖는 것은 도리가 결여된 이성이지 양심(신앙심)이 아니다. 그들의 양심(신앙심)은 하나님을 팔아서 살아가면서 세상 법 수준도 못 미치는 미숙한 조직의 힘을 행사했다.

남자 일부 간부들을 평한다.

입으로만 양심의법과 자유율법을 떠 벌기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그들이 어떻게 참되신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 세울 수가 있겠는가 묻고 싶다. 하나님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가시었다.먼저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 데로 살아가는 자들의 숫자에 따라 교세가 달려있고 악의 세력이 물러가는 조건이 이루어진다고 눈물로 간곡하게 축복일 날이면 말씀하시었다.

그들이 그런 실천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 아니한 증거가 온갖 핍박속에서도 천부교 교리를 믿던 전국교인 숫자가 증가하기는커녕 날로 줄어 들고 있으며 자신들의 저지른 잘못도 바로보지 못하고 교인들을 속이며 미숙아 짓하는 데 무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수가 있겠는가.

부정직한 남자 간부들이 실세로 존재하는 한 미래는 없어 보여 안타깝다. 이슬성신 은혜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못할 것이 없고 못이룰 일이 없다고 하시었는데 지금의 처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나님은 어떤 조건으로라도 인간구원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신다고 하신 그 말씀을 깊이 의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