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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백설에 대한 생각

 

 

 

 

 

백설에 대한 생각



백설은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자꾸 뿌려주는 선물'이라고 동시(童詩)는 노래한다. 참으로 멋진 표현이다. 하지만 하늘에서 사뿐히 내리는 백설은 선녀님들이 주는 선물이라기보다는 하이얀 옷자락 펄럭이며 이 세상으로 임하는 선녀들이라고  생각한다.


백설이 선녀들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이토록 순결할 수 있으며, 백설이 선녀들이 아니라면 무슨 수로 이처럼 고요하고 그윽한 서기(瑞氣)를 내뿜을 수 있으랴. 백설이 흰 눈송이 날리면서 온 세상이 은백색으로 아름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백설이 내리는 날이면 나는 하늘을 보며 환호했다. 눈밭에서 손가락 호호 불며 눈사람 만들기에 정신이 없었던 그 시절, 첫눈 오는 동네 입구에서 눈싸움을 하면 함박웃음 짓던 할아버지의 인자한 얼굴. 그 어느 하나 소중하고 유년기의 추억은 아름답다.

백설이 내리는 날엔 더럽고 추한 것들이 없다. 쓰레기장에도, 오염된 거리나 강에도, 사악한 사람의 머리 위에도 백설은 쌓인다. 백설은 썩은 나무 가지도, 적(敵)의 초소도, 원수도, 반역자의 무덤도 모조리 포용하여 한 점 얼룩까지 포장해버린다. 순백의 세계에서는 누구나 착한 인간이 되고, 선녀가 되고, 신선이 되는 기분이다.


그런 백설이 새해벽두부터 전국 지방마다 겁이 날만큼 펑펑 내렸다. 백설은 태백의 준령과 도시 주변의 야산을 온통 눈의 나라로 만들었다. 이런 폭설은 무슨 전조(前兆)이기도 한 것일까. 그것은 이 세상에 우리가 행한 악업(惡業)이 너무나 크고 두텁기에 한꺼번에 죄다 맑히려는 하늘의 뜻인지도 모른다.


도시에 유난히 많이 내린 날 밤이면 거리마다 자동차의 발길도 뚝 끊기어 퇴근하는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허둥대게 하며 일상생활의 불편을 가져다주는 불쾌함으로 닥아 왔다. 이는 우리들의 삶의 생활 방식과 사고가 세월에 따라 변화를 가져와 눈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게 하였다는 증거이다.

 

그렇게 순수하고 흰 눈이 좋아서 강아지 앞세워 뛰놀았던 시절은 까마득한 세월의 저편에 있을 뿐 나는 눈이 한없이 좋으면서도 바로 옛날처럼 눈과 손잡을 수 없다.

혹시라도 미끄러지어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결과는 예측할 수 없고 나의 곁에 있는 사람에게 심려를 끼치게 하는 일이 아닌가. 지극히 작은 하나라도 나로 인하여 부담 주는 그런 일은이제 저지르고 쉽지 아니하다. 

 

내가 철들고 살아오면 첫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면 눈길을 걸으며 이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르며 내 삶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한 편의 시가 눈 길 위를 걸어보지 못해도 다시 떠오른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발걸음 어지럽히지 말라.

오늘 나의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므로."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


산사(山寺)에서 오로지 진리를 깨치기 위해 정진했으면서도, 국난(國難)이 닥쳤을 때는 승병을 일으켜 항전했던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시라고 기억한다. 이 시를 백범 김구(白凡 金九) 선생도 붓으로 즐겨 썼다고 한다. 불세출의 위대한 애국자이신 그분의 백설처럼 고결한 생의 의미가 이 시에 새겨져 있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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