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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흔적

조선 사대부의 글 읽는 소리 송서(誦書)

조선 사대부의 글 읽는 소리 송서(誦書)



조선시대 선비들은 글을 읽을 때 그 속에 가락을 넣어서 마치 노래처럼 읽곤 했습니다. 사대부들은 대학이나 논어 같은 고문을 읽을 때 가락을 넣어 구성지게 읽었다. 사대부들은 고전을 읽을 때 눈으로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어 입으로 익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읽을 때 음악 양식을 불어넣어 읽는 것을 ‘송서(誦書)’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읽는 소리는 우리음악의 한 장르이기도 한데, 이것이 바로.. “송서”..입니다  송서' 는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는 뜻이고요. 옛 문장이나 소설을 읽을 때 가락을 넣어 구성지게 낭송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송서는 독서에서 시작을 했지만 그렇다고 책 읽는 소리가 모두 송서가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송서에는 분명 선율구성의 특징이 있고 사설의 붙임 방식이 존재하는 전문가들에 의해 노래됩니다.


 혼례나 제례 때 축문을 읊조리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송서에 해당된다.‘적벽부’나 ‘출사표’, ‘삼설기’등이 송서로 불리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옛날 안동기생은‘대학’, 영흥기생은 ‘출사표’를 잘 외웠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송서의 전문가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송서에 대한 자료가 드물어 정확치는 않지만, 1930년대 서울지역에서 활동하던 이문원 이라는 이가 송서를 잘 불렀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이문원은 삼설기, 짝타령, 등왕각서 등을 불렀는데 다소 빠른 듯한 속도로 담백하고 소박하게 불렀다고 합니다. 경기명창 묵계월은 1936년 무렵 이문원에게 송서 삼설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송서는 1930년대의 뛰어난 가객 이문원 선생에 의해 전수되었다. 또 그에 의해 송서가 많이 알려짐에 따라 1930년대까지 송서 향유 층이 상당수 존재했다. 그러나 1930년대를 기점으로 송서는 잊혀 진 문화가 되었다.


“사대부가 향유하는 문화로서 500년가량 이어져 온 송서가 일제 강점기 때 우리문화가 말살되면서 사장되다시피 했다. 대신 일제에 의해 하층민의 문화만이 우리전통문화로 인식하도록 강요받아 왔다”고 전한다.


이렇게 현대에 와서 일반화되지 못했지만 조선시대 사대부 층의 전통문화의 한 갈래였던 송서가 고양시 덕양구 아람누리에서 재현되었습니다. 송서는 경기소리, 서도소리 등 낭송조의 선율로 오랫동안 배우면서 수련을 거듭해야만 잘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송서에 해당되는 작품 중에서‘삼설기’는 1848년(현종 14년) 간행된 작자미상의 국문단편소설집이다. 서초패왕기 ․ 삼자원종기 ․ 노처녀가 등 9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성이나 문장에 있어 근대성을 띠고 있고 특히 해학적 기교가 두드러졌다. 삼설기는 현재 전창되는 부분만 보더라도 약 35분이 소요된다. 흥겹거나 멋들어진 창법을 구사하지는 않지만 다른 소리들에 비해 송서 특유의 꺾음 새를 구사하는 창법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 때 배운 소리를 잊지 않고 꾸준히 부르고 있다.


 또한 이문원의 유성기 음반을 토대로 짝 타령과 등왕각서 등을 복원해서 끊길 뻔 한 송서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1012. 29일 오후 5시 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펼쳐진 ‘송서 삼설기 발표회’는 고양시 향토문화보존회의 주관으로 진행된 일이 있습니다.

 

내가 유년시절 고향 창녕에서 살았을 때 동내 젊은이들이 날이 세지도 아니한 새벽 녘 먼 산에 나무하려가려고 골목에서 부산을 뜰 즈음이면 어김없이 할아버지는 명심보감을 소리 내어 외우시었고 어머니는 동내 아주머니들이 모이던 좁은 등잔불 밑에서 유충렬전과 권익중전 등등 밤마다 내용이 다른 책을 바꾸어 가면서 읽어 주시었는데 그때 어머님은 지금의 성우 같은 목소리이기에 나는 어머님의 풍부한 감정어린 소리에 매료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없지만 그것이 바로 송서 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할아버지 ,어머님이 모두가 돌아가신지 몇 십 년 세월이 흘러갔지만 다시 그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날이 다시 돌아 올려나 기대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