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문명전 실크로드와 둔황
얼마 전 불광출판사 출판 왕오천축국전을 온라인 구입하여 구독한일이 있는데 출판사에서 이벤트행사에 당첨되었다고“실크로드와 둔황”초대권이2장 우편으로 송달되어왔다.
서초동 고등법원에 용무가 있어서 갔다가 오는 길에 찬바람이 볼을 엘이게 하는 날인데 친구와 같이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관람하러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작년 말 그 유명한 왕오천축국전이 우리나라에 왔다는 소식에 단단히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기획전시실 입구에는 ‘실크로드와 둔황-혜초와 함께하는 서역기행’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쏙 들어왔다. 전시실 내부에는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관람에 열중하고 있었다.
서쪽 로마에서 동쪽 중국을 거쳐 한반도까지 이어졌던 실크로드. 이 길을 따라 멀고 험난한 여정 속에서 꽃피운 찬란한 문화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 ‘실크로드와 둔황’전이 국민들에게 관심 있는 기획 전시로 보여 졌다.
우리에게 실크로드는 신라시대 승려 혜초(704~787년)가 기록한 ‘왕오천축국전’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다. 왕오천축국전(往五 天竺國傳)은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신라승려 혜초의 여행기로 해외 공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세계처음이다. 1908년 중국 둔황(敦煌)막고굴 (莫高窟)장경동 (藏經洞)에서 발견돼 프랑스로 넘어간 이래지금까지 한 차례도 공개 전시한 적이 없었다. 혜초가 727년 이글을 완성했고 2010년12월 이 땅에 돌아왔으니 1283년만의 귀향인 셈이다. 왕오천축국전은 혜초가 723~727년 다섯 천축국(인도의 옛 이름)과 페르시아 중앙아시아등 서역지방을 기행하고 쓴 여행기다.
당시 그가 여행한 길은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부터 시작해 뱃길로 중국 광저우를 거쳐 인도에 도착한 뒤 육로로 페르시아, 중앙아시아를 지나 당의 수도 장안(지금의 시안)까지 2만km에 이르렀다. 혜초가 그렇게 험난한 길을 여행하며 남긴 ‘왕오천축국전’에는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풍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때문에 ‘왕오천축국전’의 가치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7세기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 13세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14세기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와 함께 세계 4대 여행기로 꼽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왕오천축국전’은 대한민국의 소유물이 아니다. 1908년 3월 동양학에 심취해 있던 프랑스 탐험가 폴 펠리오가 중국 둔황 막고굴 장경동에 있는 것을 발견한 뒤 이를 관리인으로부터 싼값에 구입,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보내 지금껏 보관하고 있기 때문.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총 2백27행에 5천8백93자, 폭 28.5cm, 총길이 358cm인데 전시장에는 두루마리 형태 책의 끝 부분만 일부 펼쳐놨다. 이는 ‘60cm 이상은 펼치지 말 것’이라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대여 원칙 때문이라고. 대신 복제 본은 실물 그대로 길게 펼쳐놔 혜초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은 약 1300년 전의 문서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글씨가 정교했고 보존도 비교적 깨끗했다. 나는 이 문서를 보고 또 봤다. 앞으로 내 인생에 이 같은 축복은 더 없으리라는 확신 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를 깨닫게 하는 시간 같았다. 세월을 초월하여 왕오천축국전을 통해 혜초 스님을 만났고 또 나를 만났다.
내가 구독한 왕오천축국전을 생각하면서 영상물을 감상하고 있으니 1300여전 남천축국에서 고향 신라가 그리워 지은 오언 시을 읊은 혜초스님의 직접 만나 보는 듯한 착각을 일게 하였다.
月夜膽鄕路 (월야담향로 ) 달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
浮雲颯颯歸 (부운삽삽귀) 뜬구름만 흩날리며 돌아가고 있네.
咸書參去便 (함서참거편) 편지라도 써서 구름판에 부치고 싶건만
風急不聽廻 (풍급불청회) 바람이 급해서 구름을 돌아보지도 않는구나.
我國天岸北 (아국천안국) 내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는데
他邦地角西 (타방지각서) 남의나라 당 서쪽 모퉁이에 와 그리워하네.
日南無有雁 (일남무유안) 더욱 남천축은 기러기도 없으니
維爲鄕林飛 (유위향림비) 누가 고향의 숲을 향해 날아가려나.
밝은 달밤 구름들이 달 위로 지나가는 그림자를 보고 세월의 유수함과 고향에 대한 강한 향수에 망향의 정이 불처럼 일어나 순례자 심정을 이 시를 읽는 이로 하여금 고향의 소중함을 세삼 느끼게 한다.
객수(客愁)를 달랬던 호밀국에서
어느 날 토화라(토카리스탄)에서 눈을 만난소회로 순례자로 당하였을 고난과 역경을 마음으로 느껴 볼 수 있는 한편의 오언시가 있다.
君恨西蕃遠 (국한서번원) 그대는 서쪽 이역이 멀다고 한탄하지만
余嗟東路長 (여차동로장)나는 동쪽 길이 멀다고 탄식한다네.
險潤賊途倡 (험윤척도창) 험한 골짜기 길엔 도적떼가 들끓고
道荒宏雪嶺 (도황굉설령)길은 험하고 산마루엔 눈이 잔뜩 쌓였는데
鳥飛驚峭嶷 (조비경초억) 새도 날다가 솟아 있는 산봉우리에 놀라며
人去 徧梁 (인거편양) 사람은 가다가 조심조심 외나무다리도 건너야 한다네.
雖平生不捫淚 (수평생불문누) 평생 눈물을 훔쳐 본적 없었는데
今日灑天行 (금일쇄천행)오늘따라 하염없이 눈물이 걷잡을 수 없구나.
혜초스님의 수행을 위해 떠난 수례자의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웠던 길이였는지 가늠 할 수 있는 한편의 눈물어린 시이다. 이 불굴의 개척과 도전 정신이 신라인의 넋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면면히 이어오는 민족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도 이제 깊은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기 도전과 불굴의 의지로 세계를 향하여 끝없이 떨쳐나가자고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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