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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흔적

[窓]“형제마저 갈라놓는 파업이라니”

[窓]“형제마저 갈라놓는 파업이라니”
 
농성중 다친 형 병실서 사측 동생 할말 잃어

5일 경찰이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조립공장 옥상에서 추락해 허리를 다친 조합원 차모 씨(49)가 이송된 경기 평택시의 한 병원. ‘정상 조업’이라 쓰인 분홍색 완장을 찬 쌍용차 직원 한 명이 응급실로 들어가려다 흠칫하더니 완장을 뗐다. 주변 조합원들의 눈을 의식해 완장을 숨긴 이는 차 씨의 동생(46)이었다. 함께 온 동료는 “형제까지 갈라놓는 파업이라니… 이게 뭐냐”고 한탄했다.

형제는 나란히 쌍용차 평택공장에 다녔다. 형은 총무과, 동생은 생산라인에서 일했다. 회사의 정리해고안에 대해 노조가 반대하며 파업을 선언한 5월 22일 형은 파업 대열에 동참했다. 하지만 동생은 정상 조업이 회사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해 파업에 참가하지 않았다. 동생은 “형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노조를 따르겠다기에 말리지 않았다”고 했다.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형제는 자주 통화했다. 공장 안의 열악한 상황과 공장 밖의 험악한 상황을 들을 때마다 동생은 형을 설득했다. 그때마다 형은 ‘허허’ 웃기만 했다. 동생은 “나와 형수의 설득에도 형은 동료들과 공장을 지키겠다며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형제의 생각과 행동은 달랐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동생은 “임직원 모두 쌍용차가 잘돼서 다시 예전처럼 일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4일과 5일 회사 측 직원들이 공장 안 장애물과 정문 밖 시민단체의 천막을 철거할 때 동생은 멀찍이 서서 상황을 지켜만 봤다. 그는 “형도 있고, 내 앞에 대치하고 선 사람들도 다 친구이고 선후배인데 차마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치가 격해지면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우리 형이 다칠 줄은 몰랐다”며 “팔순 되신 어머니는 이런 사실을 모르시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추락으로 허리를 다친 형 차 씨는 수술을 받기 위해 이날 오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응급실 앞에 주저앉은 차 씨의 아내는 “사람 다치고 나면 파업이니 뭐니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울먹였다. 동생은 형수 앞에서 바닥만 내려다봤다.

 


평택=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공장 점거한 노조원만 노동자냐”▼
사측 직원들 항의에 민노당 의원들 묵묵부답


 
 
“참견만 하고 회사 정상화를 늦추는 제3자는 그만 나가라.”

쌍용차 평택공장을 불법 점거 중인 노조원들에 대한 경찰의 진압작전이 한창이던 5일 오전 9시 반경. 사측 직원들은 노조원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와 대학생 등이 회사 정문 앞에 설치해 놓은 천막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천막을 철거당한 시민단체와 대학생들이 반발하면서 쌍용차 정문 일대는 깨진 보도블록과 소화기 분말이 날아다녔다. 한 시간 가까운 양측의 힘겨루기 끝에 시민단체와 대학생 등 100여 명은 정문 앞 도로 맞은편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이정희 의원, 민노당 당직자 등 30여 명이었다. 사측 직원 100여 명이 이들을 에워쌌고 양측의 충돌을 우려한 전투경찰 수십 명의 보호를 받으며 이들은 한 시간 넘게 고립됐다. 사측 직원들은 외부 인사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 냈다.

“국회의원이면 다냐” “노동자를 대변한다면서 공장 점거 노조원만 노동자냐” “500명을 위해서 20만 명이 죽으라는 얘기냐”….

그동안 각종 집회 현장과 국회에서 자주 보여줬던 강 대표의 ‘날아다니는’ 모습을 이번에는 볼 수 없었다. 사측 직원들의 고함과 질타에 강 대표와 민노당 관계자들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지난 선거에서 민노당에 표를 던졌다는 한 직원은 “마이크를 줄 테니 할 말이 있으면 여기 있는 노동자부터 설득해보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분을 이기지 못한 일부 직원은 민노당 관계자들을 향해 물병을 던지기도 했다.

강 대표는 고립에서 풀려난 뒤 오후 3시경 쌍용차 앞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정부는 쌍용차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라. 노노(勞勞) 갈등은 안 된다”는 기존의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사측 직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듣고 있자니 서글프네요. 우리도 회사 살리러 나온 노동자입니다. 지금은 ‘사측 직원’이라고 불리지만요. 회사 진입할 때 앞장서기 싫은 적도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다릅니다. 우리에겐 지금 조업 재개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평택=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기사입력 2009-08-06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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