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에 대한 단상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설이 닥쳐오면 양과를 만들기 위하여 엿을 고우는 작업을 하던 기억이 난다. 부뚜막에 앉아서 엿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손자에게 할머니는 주걱에 조청이 얼마나 굳어지는지 확인하면서 주걱에 조금 묻혀 주던 그 맛은 과히 하늘나라 천사들이 먹고 있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었다.
엿이 다 고아지고나면 할머니는 광에다 갱엿을 넣어두시고 필요시 꺼내어 사용하신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때 망치로 조각을 내는 가운데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시곤 하였으며 잇 발에 짝짝 붙어서 오물 그리며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지만 그 달콤함은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간식거리라고는 특별히 없던 시절 그 달디 단 엿은 귀한 최고의 군것질 거리였다. 동생은 멀쩡한 고무신을 찢어서 엿과 바꿔 먹고 기꺼이 회초리로 종아리에 빨간 줄을 상처로 남기기도 했었다
어쩌다가 일주일에 한 두번 마을을 찾아오는 엿장수 아저씨가 가위장단을 하며 깨엿, 땅콩엿, 호박엿, 갱엿, 등등 엿을 펼쳐 놓으면 우리는 넋을 넣고 그 단맛을 눈으로 탐닉했다.
선심 좋아하시던 엿장수 아저씨의 맛배기 엿은 어찌나 감질나던지, 애들은 집안의 고물을 찾아 엿 바꿔 먹곤 했는데, 그중엔 집안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도 모두가 고물로 보여 엿과 바꿔 먹고 된통 혼나는 친구들도 있었다.
방과 후 길거리에서 아저씨들이 구멍의 크기로 내기를 하던 엿치기 시합에는 우린 부스러기 하나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까하고 엿판에서 발을 떼지 못하기도 하였다.
세월이 흘러도 오래토록 엿은 최고의 간식거리로 우리의 생활 곁에 있었다. 어머님이 시장 갔다 오시면서 손녀들에게 주시려고 비닐봉지에 엿을 사 오신 그날 저녁은 어린것들의 웃음소리가 온 집안을 따뜻하게 했다.
국민소득수준 향상으로 나라의 살림살이가 나아져 풍요로운 시대로 접어들면서 다양한 간식거리가 등장하고, 서구의 패스트푸드가 더 각광받는 시대가 되자 엿은 뒷전으로 밀려나 합격을 기원하는 담벼락 선물용이나 폐백물품으로 활용될 정도로 용도가 제한되었다.
-엿을 사시오, 엿을 사, 울릉도 호박엿… , 메밀묵 사려 찹쌀떡~~, 추운 골목을 메아리치던 추억의 먹거리들이 생각나고 날씨가 추워진다고 하니 까마득한 시절 엿처럼 달콤한 그 추억의 시절이 떠오르니 눈물겨워진다.
근래에 와서 다시 우리 엿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고 있다고 하며, 엿을 통하여 추억을 떠올리고 효능을 주목하여 엿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고유 음식문화 계승발전을 위하여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엿에 대한 풍성한 기록은 1611년 허균이 조선8도 식품과 명산지에관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을 통해 확인된다. 이 고서에는 엿 만드는 방법은 물론, 전국각지 엿의 원료와 특성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 기록을 통하여 찹쌀, 맵쌀, 보리, 옥수수, 고구마, 조 , 호박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농산물을 주원료로 만든 다양한 엿을 생활 속에서 폭넓게 활용했던 것을 읽을 수 있다.
조선시대는 엿은 식사대용의 비상식량으로 쓰였다. 공문서를 전달하는 역원들의 경우하루평균 주행거리가 80-100리에 이르는데, 이들은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손바닥만한 갱엿을 배낭 속에 넣고 다녔다는 것이다.
특히 엿은 임신한 여성에게 권장식품이었다고 한다. 임신한 여성에게는 물론 ,뱃속의 아이가 단계에 맞춰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효과적으로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엿은 머리를 많이 쓰는 경우에도 애용됐다. 양반가문의 부녀자들이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남편에게 간식거리 이였고, 할머니들이 금지옥엽 (金枝玉葉) 같은 손자들에게 조청을 먹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두뇌를 많이 쓰는 경우 정맥 속의 혈당이 많아 소모되는 데 엿은 혈당을 보충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이라고 하니 가히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멀지 아니해 한해가 또 가고 설날이 돌아오려니, 한가한 날 하루 이 겨울을 따뜻하게 해줄 우리가 잊고 있었던 전통 먹거리 엿을 만들기 위해 친지나 식구들과 한자리모여서 정담을 나룰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는 것 또한 유익한 놀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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