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은 어떻게 보는가요"
"박근혜와 정몽준 중에서 누가 더 유리한가요"
"어떤 사람들이 대권 도전에 뜻이 있는가요"….
정치부 데스크에서 심심치 않게 받는 질문이다. 물론 정답을 안다면 신(神)이 아니면 사기꾼, 둘 중 하나이다.
그러나 2007년의 대선, 그리고 그 이전의 대선 트렌드를 분석해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메시지가 잡힌다. 그중 으뜸은 기업에서 성장한 인물의 대권 도전의 물줄기가 거세게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조는 고인이 된 '왕회장' 정주영씨였다. 정 회장은 1992년 현대그룹을 박차고 나와 통일국민당을 만들어 대선에 전격 도전했다. 여의도 정가에서 볼 때는 '재벌 오너의 무모한 대권 실험'이었다. 정치권에는 "돈, 명예, 권력, 세 가지를 한꺼번에 갖게 하는 것은 누구든 용납할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다. 왕 회장의 대권 도전은 노태우 정권 말기에 현대에 떨어진 1600억여원의 세금폭탄이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여의도 정가는 자신들의 불문율을 깨부수려는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정 회장은 388만표(16%)를 얻어 3위로 낙선했다. 김영삼 후보가 42.0%를 얻어 당선됐고, 김대중 후보는 33.8%를 얻어 2위를 했다. 여의도에 뼈를 묻은 직업 정치인들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2년엔 정 회장의 아들 정몽준 의원이 깃발을 들었다. 월드컵 축구 붐을 업은 그의 대권 도전은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에서 지는 바람에 미완(未完)으로 끝났지만 두 번에 걸친 부자(父子)의 대권 문 두드리기였다.
2007년 대선에선 재벌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CEO 출신 2명이 대권의 깃발을 들었다. 이명박, 문국현, 두 사람이다.
이명박의 정치적 DNA는 두 가지다. 1960년대에 대학을 졸업해 운동권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기업으로 방향을 돌려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던 성공한 CEO 출신이라는 점과 여의도의 '비주류'로 전문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국민에 의해 선택됐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흐름은 문국현이다. 외국어대 출신으로 유한킴벌리에서 성공한 CEO였던 그의 대권 도전은 정주영 회장만큼이나 파격성, 모험성을 담고 있었다. 현직 CEO가 자리에서 물러난 뒤 곧바로 대권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그는 137만표(5.8%)를 얻어 4위를 했다. 무려 100억원 가까운 자기 돈을 쓰고도 그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이명박 당선자는 물론, 이회창, 권영길, 이인제 등 여의도·정치인 출신 대선후보를 거칠게 공격했다. 표현은 달랐지만 "이제 여의도 출신, 정치인 출신들은 좀 조용히 하라. 여의도 밖에서 자란 우리들도 할 말 있다"였다.
이처럼 여의도 밖에서 성공한 인사가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고 대권에 도전하는 물꼬는 트였고, 앞으로 이 흐름은 더욱 거세지리라는 예감이다.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사람, 금배지 달고 거들먹거리는 여의도 출신보다 내가 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데 더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비(非)여의도권 인사들, 시대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잘 대응해 천문학적인 부를 쌓은 신흥재벌들…. 이들이 "우리도 있다"고 외치고 나오는 빈도가 더 많아질 것 같다.
더구나 2012년 대선은 수십 년 지배해오던 '3김(金)의 권력우산'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게 된다. 이미 차기 대권 도전자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는 여의도 출신들이 고정관념과 타성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에 눈을 뜨지 않으면 대낮에 코가 베일 수 있는 상황이 자꾸 머릿속에 그려진다.
"박근혜와 정몽준 중에서 누가 더 유리한가요"
"어떤 사람들이 대권 도전에 뜻이 있는가요"….
정치부 데스크에서 심심치 않게 받는 질문이다. 물론 정답을 안다면 신(神)이 아니면 사기꾼, 둘 중 하나이다.
그러나 2007년의 대선, 그리고 그 이전의 대선 트렌드를 분석해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메시지가 잡힌다. 그중 으뜸은 기업에서 성장한 인물의 대권 도전의 물줄기가 거세게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조는 고인이 된 '왕회장' 정주영씨였다. 정 회장은 1992년 현대그룹을 박차고 나와 통일국민당을 만들어 대선에 전격 도전했다. 여의도 정가에서 볼 때는 '재벌 오너의 무모한 대권 실험'이었다. 정치권에는 "돈, 명예, 권력, 세 가지를 한꺼번에 갖게 하는 것은 누구든 용납할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다. 왕 회장의 대권 도전은 노태우 정권 말기에 현대에 떨어진 1600억여원의 세금폭탄이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여의도 정가는 자신들의 불문율을 깨부수려는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정 회장은 388만표(16%)를 얻어 3위로 낙선했다. 김영삼 후보가 42.0%를 얻어 당선됐고, 김대중 후보는 33.8%를 얻어 2위를 했다. 여의도에 뼈를 묻은 직업 정치인들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2년엔 정 회장의 아들 정몽준 의원이 깃발을 들었다. 월드컵 축구 붐을 업은 그의 대권 도전은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에서 지는 바람에 미완(未完)으로 끝났지만 두 번에 걸친 부자(父子)의 대권 문 두드리기였다.
2007년 대선에선 재벌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CEO 출신 2명이 대권의 깃발을 들었다. 이명박, 문국현, 두 사람이다.
이명박의 정치적 DNA는 두 가지다. 1960년대에 대학을 졸업해 운동권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기업으로 방향을 돌려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던 성공한 CEO 출신이라는 점과 여의도의 '비주류'로 전문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국민에 의해 선택됐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흐름은 문국현이다. 외국어대 출신으로 유한킴벌리에서 성공한 CEO였던 그의 대권 도전은 정주영 회장만큼이나 파격성, 모험성을 담고 있었다. 현직 CEO가 자리에서 물러난 뒤 곧바로 대권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그는 137만표(5.8%)를 얻어 4위를 했다. 무려 100억원 가까운 자기 돈을 쓰고도 그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이명박 당선자는 물론, 이회창, 권영길, 이인제 등 여의도·정치인 출신 대선후보를 거칠게 공격했다. 표현은 달랐지만 "이제 여의도 출신, 정치인 출신들은 좀 조용히 하라. 여의도 밖에서 자란 우리들도 할 말 있다"였다.
이처럼 여의도 밖에서 성공한 인사가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고 대권에 도전하는 물꼬는 트였고, 앞으로 이 흐름은 더욱 거세지리라는 예감이다.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사람, 금배지 달고 거들먹거리는 여의도 출신보다 내가 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데 더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비(非)여의도권 인사들, 시대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잘 대응해 천문학적인 부를 쌓은 신흥재벌들…. 이들이 "우리도 있다"고 외치고 나오는 빈도가 더 많아질 것 같다.
- ▲ 김민배 정치부장
조선일보 입력 : 2008.01.19 00:26 / 수정 : 2008.01.1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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