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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삶

가을과 독서

'가을' 하면 함께 떠오르는 몇몇 문구들 가운데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정작 사계절 중에서 도서 매출 실적이 가장 저조한 때가 바로 가을이라고 하니 그 이유가 금세 수긍이 갈 듯도 하다. 하늘 높고 바람 좋은데다 덥지도 춥지도 않아 나들이 하기에는 그만인 날씨에, 온 산하를 울긋불긋 물들인 단풍이며 물과 뭍에서 들려오는 풍성한 수확의 소식이 누구라도 그만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든다.
그래서 이렇듯 어려운 사정을 타개해 보고자 출판업계가 마케팅 차원에서 만들어 사용해 오던 문구가 바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이 따로 있을까 고개가 살짝 기울여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꿈보다는 해몽이라고, 넉넉한 수확의 계절에 시절놀이를 제대로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누려볼 것을 권하고 싶다. 가을이 주는 여유와 휴식의 의미를 한층 무르익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출판업계의 고민은 가을 한 철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세상은 책 속의 활자보다 저만큼 앞서서 날아가는 형국이다. 책에서만 얻을 수 있었던 요긴한 정보는 자판 몇 번 두드리는 수고만으로도 얼마든지 수집이 가능한 인터넷이라는 전지전능한 장치가 대신한 지 오래고,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이 가져다주는 여유와 정취에 기꺼이 취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알맹이보다 껍데기에 주목하게 만드는 진풍경마저 연출된다. 과도한 출판 마케팅이며 표지 장정이 그것이다. 속 빈 강정이 흔해진 것도 사실이다.
책을 사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쉬워졌다. 집에 앉아서 더 싼 값으로 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 세대라 대부분 서점으로 향한다. 구입하려고 계획한 책, 읽고 싶었던 책뿐만 아니라, 신간 매대를 기웃거리거나 우연히 눈길이 마주친 책 앞에서 책장을 열어보는 즐거움은 누려본 사람만 알 것이다. 재래시장 장보기에서 덤을 얻은 기쁨이랄까, 그와 비슷한 사소한 행복감이리라.
입시생들도 입학전형을 치르면서 스스로 느꼈으면 좋겠다. 논술과 구술이 인터넷과 족집게 과외선생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핑계대지 말고 조금씩, 꾸준히 독서를 했었어야 했다고. 팍팍한 입시 현실에 무슨 팔자 좋은 소리냐고 되물을까?
고린내 나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필자가 가진 지금의 지적 재산의 팔 할은 이미 스무 살 언저리까지의 독서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아직 기회가 있는 젊은이들에게 혹시 지금은 멀게만 느껴질지도 모르는 책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길 권한다.
책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힘겹고 어려울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 안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우리가 예상했던 그 이상이니까. 정답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 삶의 해법,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 이런 것들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책이 든든한 지렛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가난했던 시절, 값싼 문고판이나 신서판만으로도 책을 읽는 즐거움에 벅차오른 적이 있던 사람이라면, 그래서 그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누리고 싶다면 이 깊어가는 계절에 서점으로 가을소풍을 가 보자.
김동언/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중부일보 /게재일 : 2007.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