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지는 가로수를 거닐며
가을의 정취를 맛 볼 수 있는 것은 앙상하게 메달라가는 시골의 호박 넝쿨 드리운 토담 벽에서 만도 아니고, 곱게 물던 단풍잎이 어울러 진 숲에서만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천만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곳 수도권 외곽 도시의 가로수에도 가을은 멋을 부리다가 떠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크나무 가로수 나무로 둘려진 아파트 앞 곱게 뻗은 도로 옆 가로수는 신호등의 지시 따라 흐르는 차량 행렬에 순간순간 모습도 달아지나 봅니다. 차량이 뜸한 가로수 길은 오늘따라 깊은 적막이 흐르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처음 강남에서 이곳으로 이사 올 땐 황량하기만 하던 도로변에 외나무 막대기에 지나지 아니하던 나무들이 이제는 자라서 어디로 가도 손색없는 서양 도토리 숲을 이루고 내가 살고 있는 옥빛마을 감싸주고 있다.
아침저녁이면 이 가로수 길을 오르내리던 지나온 한해. 어찌 보면 무척 짧은 세월이었지만 때로는 또 얼마나 지겹고 힘겨웠던 세월이었던가? 이제 돌이켜보면 부질없어 보이는 일들 같다. 잘못된 결정은 없이 과업 수행에 보람을 가지고 추진했던 일들이 있었지만 받아드리는 현실에서는 자신들의 보호막을 위해 또 다른 이름의 미명으로 나의 꿈을 산산이 조각내어 불태워졌다. 감정의 다툼이란 나에게 수많은 희한의 껍질들을 발밑에 수복하게 쌓이게 하였고, 거기에 쏟아 부은 땀과 눈물들은 이제 허망한 껍데기 이였던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부인할 수 없는 오랜 세월동안에 싸여온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다. 이젠 그것을 삶의 보람으로 삼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어제의 지워지지 아니할 추억들은 한스럽고 비록 오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슬픔을 실어다주지만 삶을 살아가는 길에서 당장 지워버리지 못함은 이것도 나의 삶에 일부분이며, 세월이 흐른 후에 언젠가 다시 아름다운 모습의 추억으로 되살아 날 테지?
우리들은 각자의 신앙과 삶의 자세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성실하게 땀 흘리며 살아간다. 자신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기 위하여 비록 나를 질투하고 미워하기는 했을망정 서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위한 열정이지 지나쳐 일어난 일 일라고 생각하니 편안하다. 조직을 망치고 자신을 파멸하기위하여 그러지는 아니하였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우리는 서로 자신의 맡은 일에 사랑하고 사랑을 나누는 방식과 표현에 잘못은 없었을까? 독단적인 판단과 부족한 지식을 깨닫지 못하는 심성이 한탄스럽다. 지금 생각하면 열심을 다하여 살아온 나에게는 후회스러움을 남기게 하고 돌이켜 고치기 어려운 아픈 상처가 따르지만 법의 판단에 맡겨져 음해를 벗어나게 되어 한편으로는 서글픔을 가눌 수 없지만 도리어 편안하게도 한다.
아무도 나의 이런 독백을 들어 줄이 없는 외로이 낙엽이 쌓여 가는 쓸쓸한 가로수 따라 거니는 발자국 마다엔 지난 간 세월이 묻어 나오고 어디에선가 나를 부르는 음성이 들여 오는듯하다.
단풍 비 휘날리는 가로수위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면서 거닐어보는 묘한 감정 속에 현실과 사유의 세계는 이렇게 혼재한 속에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하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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