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
謂鹿爲馬〔위록위마〕
여기 소개하는 고사 성어는 사회나 조직에 있어서 견해를 달리하는 상대방에게 이유를 붙여 제거 하기위해 만들어 낸 파렴치한 어휘이다. 그냥 웃고 넘겨질 우화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의 주위에서 무수히 경험하고 있는 인간사의 한 단면이고 실상이기도 하다.
힘있는 자가 펴는 논리에 약자가 아무리 바른 말을 해도 통용 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면 그런 조직에서는 정의가 이미 존재할 수 가없기 때문에 강자의 무슨 소리도 통용될 수밖에 없다.
시 황제는 37년 7월 전국을 순행하던 중 , 사구(砂丘․ 하북성 平鄕縣 東北)의 평대(平臺)에서 향년 50 세로 죽었다. 죽음에 앞서 그는 장자 부소(扶蘇)에게 「곧 함양(진의 수도)으로 돌아가서 짐을 묻어라」라는 조서 (詔書)를 환관 조고(趙高)에게 맡겼다.
부소는 시황제의 장남으로서 분서갱유의 무도함을 간했다가 상군(上君 ․ 섬서성 綏德懸)에서 몽념 (夢恬 ․ 만리장성을 쌓는 진의 장군)을 감독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실은 쫓겨나 있었다. 정승이사는 시황제의 죽음을 감추고 함양으로 돌아간 후 비로소 이 사실을 발표했다.
환관조고는 호해(胡亥) ․ 이사 등과 의논하여 조서를 짖어버리고 새로이 두통의 거짓조서를 만들었다.
한통은 호해를 황태자로서 2세 황제로 즉위시키라는 것이었고, 다른 한통은 태자 부소와 몽념 장군의 죄상을 들어 그들에게 죽음을 명한 것이었다.
부소와 몽념은 이 소식을 듣고 자살해 버렸다. 호해가 즉위하자 조고는 호해를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고 자신의 경쟁상대를 축출하기 시작했다. 정승마저 죽이고 스스로 정승이 되어 급기야는 황제의 지위가지 넘보았다.
그러자 궁궐에서는 자신의 위엄과 권위를 확고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측근과 적을 구분하려고 마음먹었다.
어느 날 조고는 2세 황제호혜에게 사슴을 현상하고 말이라고 우겼다. 호해는 웃으면서, 「정승은 지나치도다. 사슴을 말이라고 하다니 그렇지만….」하고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좌우에 늘어선 신하들은 조고를 두려워하여 침묵을 지켰고, 그에게 아첨하는 자는 「폐하, 말이 옵니다.」라고 동의 하였다. 개중에는 용기를 내어「사슴입니다 」라고 정직하게 대답한자도 있었으나, 후에 조고는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살해했다.
그 뒤로부터는 조정에서는 조고가 하는 일에 반대하는 자가 없었다.
이로부터 억지로 남에게 강압한다든가 , 흰 것을 검다고 말하게 한다든가 , 남을 눌러서 비리를 어거자로 통과시키려고 하는 것을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고 말한다. 당서(唐書)의 「원진전」(元稹傳 )에는 호혜가 말과 사슴을 구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도한 언행이 많았기 때문에 그 우매함을 「마록」 (馬鹿) , 즉 바보라고 했다고 적혀 있다.
조고는 후에 호혜를 죽이고 부소의 아들 영(瀴)을 세워 진왕으로 삼았지만 바로 이 영에게 주살된다.
謂鹿爲馬〔위록위마〕(<史記> 秦始皇 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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