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로또 당첨을 대박이라고 한다. 1등에 당첨되면 수억원이 굴러들어오니 대박일 것이다. 그러나 그 대박도 화목한 가족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불행한 가족은 너무나 흔하디 흔한 세상이다. 언젠가 대기업 회장 형제가 서로 소송을 하는 기사를 접했다. 가까이는 칠순이 넘어 작고한 노인이 마약하는 아들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겨줬지만 그 아들마저 얼마전 운명을 달리했다. 오늘은 부모를 죽인 30대 아들이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잡혔다는 뉴스도 들었다.
무서운 세상이다. 가족이 붕괴되고, 파멸되고, 혼돈으로 달리는 세상이다. 어느새 한국도 이혼이 흔한 나라가 되어 모자 가정이 나오더니만 이제는 조손 가정이 늘어난단다. 젊었을 적에 ‘새끼’들 키우느라 허리가 휜 노인들이 이제는 그 ‘새끼들의 새끼’까지 부양해야 하는 현실이다. 어디 그 뿐인가. 퇴직금이라도 좀 남아 있으면 온갖 아양 다 떨며 찾아오지만 부모가 거덜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나 몰라라 하는 세상이다.
한 여인이 있다. 낯설고 물 선 타향에 시집 왔지만 시집 식구들의 구박과 냉대로 우울증에 걸렸다. 낮이고 밤이고 간에 꿈만 꾸면 시집 식구들한테 가위 눌리는 꿈이다. 시어머니조차 구박의 도가 지나쳤던지 시어머니가 죽자 모두들 그 여인에게 축복이 내려졌다고 축하를 했다. 여인이 병이 나자 여인을 안타깝게 여긴 팔순의 시삼촌 내외가 병 간호를 했다. 그 시삼촌도 버젓이 아들 며느리가 있지만 방치형이나 다름없어 서로 외로운 사람끼리 의지하며 살자고 했단다.
형제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아내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식간도 그렇고, 시누이와 조카 등 가족에서 파생하는 친 인척 모두가 이제는 보다 이기적이며 살벌하다. 누구 집에 친척들이 모여 해외여행을 간다거나, 가족들이 함께 윷놀이라도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솔직히 부럽다 못해 질투까지 난다. 어떻게 해서 그처럼 끈끈한 가족애를 갖게 됐을까 싶다. 내 주위에는 형 앞에서 새끼 손가락을 자른 동생도 있다. 형이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가자마자 문짝을 부순 동생도 있다. 밤마다 자기 ‘새끼’를 때리는 바람에 잠을 설친다는 이웃집 사연도 있다. 반면에 오로지 ‘내 새끼’만 최고 가치요, 최고 선이어서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는 집도 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곧잘 하게 된다. 얼마전 홍콩에 갔더니 가이드가 하는 말이 동남아 시장에서 ‘겨울연가’가 유일하게 실패한 곳이란다. 홍콩사람들은 서구화된지 이미 오래여서 사랑하다 싫어지면 헤어지는것이 당연하지, 왜 눈물콧물을 질질 짜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민족이란다. 그들에게는 가족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싫으면 안 보면 되지, 왜 고민하고 우울증에 빠지냐는 것이다.
홍콩인의 사고방식이 솔직히 부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한국적 정서가 어디 그런가. 가족 문제로 신음하고, 가족 때문에 평생을 눈물로 지새운다. 실례로 제 어머니가 죽어도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는 동생이지만 그 혈육을 찾으려는 형이 있다. 도박에 미친 아들에게 논밭 다 팔아 갖다 바쳤지만 생사도 모르는 아들이 그리워 숱한 날을 한숨으로 지내는 노모도 있다. 사고뭉치인 아들을 위해 대신 감옥살이를 자청하는 부모도 있으며, 폭행과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남편을 위해 시장 바닥에서 오늘도 한 아이는 등에 업고, 한 아이는 좌판 옆에 앉힌 채 손님을 기다리는 여인도 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분명 1등에 당첨된 로또복권보다 더한 행복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게 가족이다. 하지만 60억의 인구중에 신의 섭리로 그토록 어렵게 만난 인연이지만 곧잘 악연이 되기도 한다. 부부가 실과 바늘이라면 가족은 반짇고리 안에 든 모든 물건이 아닐까. 골무도 있어야 하고, 가위도 있어야 한다. 가족이란 그렇게 각각 쓰임새는 달라도 모두가 필요한 존재다. 사소한 갈등 끝에 바늘이 부러지면 그 반짇고리는 상처를 받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가족간에는 신뢰와 사랑이 필요하고,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다.
가족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지 않은 맨 얼굴로 마주치게 되는 사이다. 이 세상에 세수조차 하지 않은 맨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사이는 가족뿐이지 않겠는가. 맨 얼굴로 마주할 수 있는 관계! 이 얼마나 신선한 행복이고 신선한 충격인가. 주근깨가 있으면 있는 대로, 눈꼽이 끼였으면 끼인대로, 가식과 보탬없이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가족이란 인연이야말로 그 얼마나 성스러운가.
언젠가 중학교 문예반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봄비라는 제목으로 시를 짓게 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저 봄비는/엄마 비, 아빠 비, 아가 비/모두모두 떠나네//물방울들의 이별은 아름다워/생명 찾아 떠나네/가족 찾아 떠나네//아기 비 부모 찾고/부모 비 아기 찾고/ 물방울들의 해후는 아름답네/ 임 아무개 학생의 작품인데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그 아이의 시상이 참으로 대견하기만 했다.
어쩌다 사직을 하고 실업급여 청구서를 작성하러 노동부사무소에 갔다가 돌아온 날이었다.서재 벽에 거울이 있는데 그 한복판에 보지 못했던 종이가 붙어 있었다. 커다랗게 인쇄된 글씨는 모두 50자였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우리 집의 산이시다. 뜰에 서면 뜰이 가득, 방에 앉으면 방이 가득, 아버지! 불러만 봐도 높고 푸른 산이시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르르 뜨거운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꾸만 왜소해져 가기만 하던 그 시절, 그래도 나를 ‘산’으로 믿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갑자기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는 듯한 충만한 행복으로 인해 가슴이 뭉클했었다.
가족은 꿋꿋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가족은 한 송이 외로운 꽃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꽃들이 모인 꽃밭이다. 호박꽃도 있고, 장미꽃도 있다. 목련도 있고, 난이나 국화도 있다. 꽃밭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꽃들에게 제각기의 빛깔과 모양이 있듯이 가족 구성원 역시 저마다의 특색이 있을 것이다.
꽃밭이 아름다운 것은 그 꽃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가족은 저마다의 개성을 존중해준다. 각자의 취향과 빛깔뿐만 아니라 냄새까지도 존중해 줄때 가장 아름다운 가족이란 꽃밭이 될 것이다. 사랑으로 충만한 꽃밭을 만들어야 한다. 눈부신 아름다움이 있는 꽃밭을 만들어야 한다. 영원히 살아남는 건강한 꽃밭을 만들어야 한다. 이 세상 천지에 가족이란 꽃밭보다 더 아름다운 꽃밭이 어디 있으랴!
무서운 세상이다. 가족이 붕괴되고, 파멸되고, 혼돈으로 달리는 세상이다. 어느새 한국도 이혼이 흔한 나라가 되어 모자 가정이 나오더니만 이제는 조손 가정이 늘어난단다. 젊었을 적에 ‘새끼’들 키우느라 허리가 휜 노인들이 이제는 그 ‘새끼들의 새끼’까지 부양해야 하는 현실이다. 어디 그 뿐인가. 퇴직금이라도 좀 남아 있으면 온갖 아양 다 떨며 찾아오지만 부모가 거덜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나 몰라라 하는 세상이다.
한 여인이 있다. 낯설고 물 선 타향에 시집 왔지만 시집 식구들의 구박과 냉대로 우울증에 걸렸다. 낮이고 밤이고 간에 꿈만 꾸면 시집 식구들한테 가위 눌리는 꿈이다. 시어머니조차 구박의 도가 지나쳤던지 시어머니가 죽자 모두들 그 여인에게 축복이 내려졌다고 축하를 했다. 여인이 병이 나자 여인을 안타깝게 여긴 팔순의 시삼촌 내외가 병 간호를 했다. 그 시삼촌도 버젓이 아들 며느리가 있지만 방치형이나 다름없어 서로 외로운 사람끼리 의지하며 살자고 했단다.
형제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아내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식간도 그렇고, 시누이와 조카 등 가족에서 파생하는 친 인척 모두가 이제는 보다 이기적이며 살벌하다. 누구 집에 친척들이 모여 해외여행을 간다거나, 가족들이 함께 윷놀이라도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솔직히 부럽다 못해 질투까지 난다. 어떻게 해서 그처럼 끈끈한 가족애를 갖게 됐을까 싶다. 내 주위에는 형 앞에서 새끼 손가락을 자른 동생도 있다. 형이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가자마자 문짝을 부순 동생도 있다. 밤마다 자기 ‘새끼’를 때리는 바람에 잠을 설친다는 이웃집 사연도 있다. 반면에 오로지 ‘내 새끼’만 최고 가치요, 최고 선이어서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는 집도 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곧잘 하게 된다. 얼마전 홍콩에 갔더니 가이드가 하는 말이 동남아 시장에서 ‘겨울연가’가 유일하게 실패한 곳이란다. 홍콩사람들은 서구화된지 이미 오래여서 사랑하다 싫어지면 헤어지는것이 당연하지, 왜 눈물콧물을 질질 짜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민족이란다. 그들에게는 가족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싫으면 안 보면 되지, 왜 고민하고 우울증에 빠지냐는 것이다.
홍콩인의 사고방식이 솔직히 부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한국적 정서가 어디 그런가. 가족 문제로 신음하고, 가족 때문에 평생을 눈물로 지새운다. 실례로 제 어머니가 죽어도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는 동생이지만 그 혈육을 찾으려는 형이 있다. 도박에 미친 아들에게 논밭 다 팔아 갖다 바쳤지만 생사도 모르는 아들이 그리워 숱한 날을 한숨으로 지내는 노모도 있다. 사고뭉치인 아들을 위해 대신 감옥살이를 자청하는 부모도 있으며, 폭행과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남편을 위해 시장 바닥에서 오늘도 한 아이는 등에 업고, 한 아이는 좌판 옆에 앉힌 채 손님을 기다리는 여인도 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분명 1등에 당첨된 로또복권보다 더한 행복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게 가족이다. 하지만 60억의 인구중에 신의 섭리로 그토록 어렵게 만난 인연이지만 곧잘 악연이 되기도 한다. 부부가 실과 바늘이라면 가족은 반짇고리 안에 든 모든 물건이 아닐까. 골무도 있어야 하고, 가위도 있어야 한다. 가족이란 그렇게 각각 쓰임새는 달라도 모두가 필요한 존재다. 사소한 갈등 끝에 바늘이 부러지면 그 반짇고리는 상처를 받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가족간에는 신뢰와 사랑이 필요하고,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다.
가족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지 않은 맨 얼굴로 마주치게 되는 사이다. 이 세상에 세수조차 하지 않은 맨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사이는 가족뿐이지 않겠는가. 맨 얼굴로 마주할 수 있는 관계! 이 얼마나 신선한 행복이고 신선한 충격인가. 주근깨가 있으면 있는 대로, 눈꼽이 끼였으면 끼인대로, 가식과 보탬없이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가족이란 인연이야말로 그 얼마나 성스러운가.
언젠가 중학교 문예반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봄비라는 제목으로 시를 짓게 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저 봄비는/엄마 비, 아빠 비, 아가 비/모두모두 떠나네//물방울들의 이별은 아름다워/생명 찾아 떠나네/가족 찾아 떠나네//아기 비 부모 찾고/부모 비 아기 찾고/ 물방울들의 해후는 아름답네/ 임 아무개 학생의 작품인데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그 아이의 시상이 참으로 대견하기만 했다.
어쩌다 사직을 하고 실업급여 청구서를 작성하러 노동부사무소에 갔다가 돌아온 날이었다.서재 벽에 거울이 있는데 그 한복판에 보지 못했던 종이가 붙어 있었다. 커다랗게 인쇄된 글씨는 모두 50자였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우리 집의 산이시다. 뜰에 서면 뜰이 가득, 방에 앉으면 방이 가득, 아버지! 불러만 봐도 높고 푸른 산이시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르르 뜨거운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꾸만 왜소해져 가기만 하던 그 시절, 그래도 나를 ‘산’으로 믿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갑자기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는 듯한 충만한 행복으로 인해 가슴이 뭉클했었다.
가족은 꿋꿋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가족은 한 송이 외로운 꽃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꽃들이 모인 꽃밭이다. 호박꽃도 있고, 장미꽃도 있다. 목련도 있고, 난이나 국화도 있다. 꽃밭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꽃들에게 제각기의 빛깔과 모양이 있듯이 가족 구성원 역시 저마다의 특색이 있을 것이다.
꽃밭이 아름다운 것은 그 꽃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가족은 저마다의 개성을 존중해준다. 각자의 취향과 빛깔뿐만 아니라 냄새까지도 존중해 줄때 가장 아름다운 가족이란 꽃밭이 될 것이다. 사랑으로 충만한 꽃밭을 만들어야 한다. 눈부신 아름다움이 있는 꽃밭을 만들어야 한다. 영원히 살아남는 건강한 꽃밭을 만들어야 한다. 이 세상 천지에 가족이란 꽃밭보다 더 아름다운 꽃밭이 어디 있으랴!
영남일보 소백단상(小白斷想) | 김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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