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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담임목사 세습에 한 마디

교회세습 문제가 논쟁에 올랐다. 27일 한국기독언론협회 주최로 열린 기독언론포럼에서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으니 나서서 이렇고 저렇고 할 입장이 전혀 아니다. 다만 보도를 보면서 이 땅 남북한에 만연한 세습에 대해 이런저런 잡생각이 든다.


이 땅의 중대형 교회들이 언제부턴가 담임목사직을 자식에게 세습하는 이상한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원인을 잘 모르겠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권력세습에서 영감을 얻었나? 아니면 이 땅의 무수한 재벌기업들에서 행해지는 족벌 세습경영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나? 그것도 아니면 학교를 곧 죽어도 사유재산이라 우기면서 족벌세습을 하는 사학들에서 배웠나?


김일성-김정일 부자세습에서 영감을 얻었다면 그건 참 아이러니하다. 아마 김일성-김정일 세습체제를 가장 비난하는 집단 중 하나가 우리나라 중대형 교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교회는 십중팔구 보수교회들일 터이고, 또 그들이 김일성-김정일 체제에 가장 적개심이 강한 집단이니 말이다. 그런데 웬 세습인지 모르겠다. 따라할 걸 따라해야지. 허긴 욕하면서 배운다던가?


아니면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의 행태에서 배웠나? 그렇다면 배울 걸 배워야지.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기관이다. 그러니 천민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기업주가 노동자를 착취해서(?) 돈을 많이 벌어 그 돈을 내 자식들한테 물려주겠다고 우기는 데야 당할 장사가 있나? 헌법에도 보장된(?) 내 돈 내 맘대로 쓰겠다는 데 말이다. 이 땅에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번 놈이 장땡이다.


그런데 교회는 무슨 근거로 담임목사직을 세습할까? 성경에 교회를 부자간에 세습하라는 구절이라도 있나? 교회라면 신자들이 낸 이름을 다 열거하기에도 벅찬 수많은 종류의 헌금으로 운영될 터인데 그게 목사가 창출한 이익은 아닐 터이고. 그렇다면 교회와 교회의 재산은 담임목사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교인들의 재산인데 무슨 근거로 세습을 하지?


허긴 대형교회라면 목사의 역량이 남달리 특출해 많은 교인들이 몰려들었고 헌금을 많이 했으니 뭐 담임목사의 능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긴 하다. 그렇더라도 그 재산은 하느님의 재산이지 목사 개인의 재산일 수는 없다. 목사들 스스로도 자신을 하느님의 종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하느님의 종이 주인인 하느님의 재산인 교회를 마음대로 세습하면 그게 어떻게 되나? 지옥에 갈 일 아닌가? 세속으로 치면 절도죄로 감옥에 갈 죄인 것 같은데.


목사가 특출나서 큰 교회를 일으켰다면 그건 하느님의 은총을 분에 넘치게 입었다는 뜻일 터이고, 그러니 늘 감사한 마음으로 더 겸손하고 청빈하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눔의 미덕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담임목사직이 뭐기에 그걸 불끈 쥐고 온갖 욕을 얻어먹으면서까지 자식에게 세습하려는가? 그러고서 일요일마다 신자들에게 ‘마음이 가난한 자는’ 어쩌고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설교할 터이지. 참 철면피하거나 낯간지러운 짓이다. 정말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많은 목사들을 보라. 다들 하나같이 가난하고 초라하다. 그러면서 그들의 표정은 더 없이 맑고 밝다. 그리고 겸손하다.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게 자식이라지만 자식사랑 그렇게 하는 것 아니다. 또 죽으면 천국에서 영생을 얻을 터인데 그 놈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재산이니 명예니 뭐 그렇게 악착스럽게 챙기나? 인간이라는 게 물욕이 강해서 교회든 뭐든 재산이 많으면 다툼이 많다. 그러니 쓸데없이 큰 교회 만들고 재산을 불리는 건 천국에 갈 역사(役事)가 아니라 지옥에 갈 죄를 짓는 짓이다. 많은 신자들을 하느님이 아니라 물욕이라는 우상에 빠뜨렸으니 말이다.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 뛰어난 목사로 하느님께 바쳤으면 기독교 신자로서는 그것만으로 자랑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식은 다시 스스로의 힘으로 노력해 교회를 일으키고 하느님과 신자들에게 봉사해야 한다. 그게 참 목회자의 길이다. 그런데 자신이 세운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도 그렇고, 아버지가 일으킨 교회를 온갖 비난을 무릅쓴 채 꿰차고 앉아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목회자로서 좀 그렇잖나? 하느님과 아버지를 한꺼번에 욕 얻어 먹이는 짓이다. 설령 모든 신자들이 한 마음으로 추대하더라도 사양하는 것이 참 목회자의 길이다. 그러니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더라도 담임목사직 세습은 폐습이요 악습이다.

출처:한겨레 토론방 글 wkf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