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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최저임금 또 오르면, 가게 지키다 과로사” 빗속 1000명 호소

 

자영업자 집회 참석 작년의 3배
“고용 줄이고 내가 뛸 수밖에 없다”

입력 2023.06.21. 17:28업데이트 2023.06.21. 19:00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동결 촉구' 피켓을 들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이날 개최한 '최저임금 동결촉구 결의대회'에는 전국 소상공인 1000여명이 참석했다./뉴시스

21일 오후 3시쯤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비에 젖은 연단에 한 중년 여성이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이날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가 개최한 ‘최저임금 동결 촉구대회’에 참석한 편의점 점주 김미연씨다.

그는 “전국 편의점 하루 매출이 평균 160만원 정도다. 여기에 본사와 계약에 따라서 이익을 나누고 폐기 상품과 카드 수수료를 빼면 한 달 영업 수익은 평균 850만원 정도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전기 요금 약 90만원, 월세 180만원, 4대 보험료 50만원을 제하면 530만원이 남는다고 했다. 김씨는 “내가 쉬는 날 없이 하루 12시간씩 근무하고, 나머지 12시간은 초단시간 쪼개기로 주휴수당 없는 알바(아르바이트)를 쓰면 인건비로 350만원 나간다”며 “편의점주 수익이 얼마인지 짐작이 가느냐”고 소리쳤다. 이어 “점주가 하루 12시간씩 쉬는 날 없이 일해도 남는 건 180만원이 고작”이라며 “내년에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더 올린다? 편의점주들은 24시간 가게를 지키다 과로사로 죽는다”고 했다.

김씨는 “노동생산성이 높아 수익률이 높고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하는 산업은 (최저임금을) 많이 주라고 하라”며 “노동 강도와 생산성이 높지 않은 편의점 같은 업종은 낮은 임금을 주자는 요구가 틀린 주장이냐”고 소리쳤다. 연단 아래에선 ‘옳소’ ‘맞습니다’라고 외치며 공감을 표했다.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참석자 작년의 3배…우비 입고 “최저임금 동결” 호소

이날 오전부터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소상공인들은 우비를 입고, 젖은 바닥에 앉아 ‘최저임금 동결하라’ ‘업종별 구분적용 시행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편에선 ‘최저임금 인하’를 외치기도 했다. 소공연에 따르면 이날 결의대회에는 전국 17개 광역지회 소상공인이 1000명 넘게 모였다. 지난해 집회 때 300여 명과 비교하면 3배 이상이다. 행사 전 준비했던 우비 1000여장이 모두 동났다. 소공연은 “작년 하반기부터 계속된 경기 침체로 어려움이 가중되자 절박한 심정으로 수많은 소상공인이 거리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전남 나주에서 주꾸미 전문 식당을 운영하는 이종범씨는 “지금보다 최저임금이 더 오르면 가게 유지를 위해 서빙 로봇이건 조리 로봇이건 도입해서 직원을 더 줄일 수밖에 없다”며 “최저임금을 논의할 때 이런 상황을 좀 제대로 이해하고 내년 최저임금은 동결해주길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말했다.

◇“생존권 위협…업종별 구분 적용 시행하라”

소상공인이 최저임금 동결과 함께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업종별 구분 적용이다. 업종마다 경영 상황이나 생산성, 인건비 지급 능력이 모두 다른데도 모든 업종에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정경재 대한숙박업중앙회 회장은 “직원 월급을 올려주고는 싶지만, 한 달에 200만원씩 적자를 내 오히려 직원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수백억원 영업이익을 내는 고급 호텔과 작은 숙박업소는 사정이 다르니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박경애씨는 “코로나와 경기 침체로 손님이 줄어 헤어 디자이너 수익보다 청소하면서 기술을 익히는 보조 스태프 월급이 더 많아지는 현상이 발생했고, 결국 ‘나 홀로 사장’이 됐다”며 “도제식으로 운영되는 업종에는 일정 수련 기간을 부여하고 해당 기간 최저임금 일부를 정부가 보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인상’이란 문구가 쓰인 블록을 쌓아 만든 벽을 ‘동결 망치’로 때려 무너뜨리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소상공인 생존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깨부수고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또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이 소상공인에게 큰 보호막이 되어 줄 것이란 염원을 담아 ‘업종별 구분 적용’이라고 적힌 우산 7개를 펼쳐 보이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오세희 소공연 회장은 “과중한 최저임금은 가까스로 버티는 소상공인을 헤어 나올 수 없는 적자의 수렁에 빠뜨리고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게 되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2024년도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이러한 소상공인 현실을 반영해 최저임금 동결과 업종별 구분 적용이 반드시 관철되길 촉구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시간당 9620원)보다 24.7% 오른 1만 2000원을 주장하고, 경영계는 동결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 고시 시한은 매년 8월 5일로 6월 한 달간 집중 논의를 거쳐 보통 7월 말쯤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