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숙박 금지·휴식공간 제한’ 등 규제 강화 입법예고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강모(51)씨는 은퇴 후 귀촌을 염두에 두고 강원도 홍천에 150평(약 495㎡)짜리 땅을 매입해 텃밭으로 쓰고 있다. 길이 6m, 폭 3m짜리 컨테이너를 개조한 농막(農幕)을 설치하고, 주말에 1박 2일로 채소를 가꾸고 가족들과 야외에서 식사한다. 자기 돈을 들여 전기를 끌어오고, 정화조도 설치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농막 활용’이 법으로 금지된다. 농막은 원래 농기구나 농작물을 보관하거나 농사일 중간에 잠깐 쉬는 용도의 임시 건축물이다. 지금까지는 ‘20㎡ 이하’라는 면적 규제만 있었다. 앞으로는 ‘야간 취침 금지’ ‘휴식 공간 농막의 4분의 1 이하’ ‘농지 면적에 따른 농막 규모 제한’ 등 규제가 추가된다. 정부가 “농막을 별장처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런 내용의 농지법 시행규칙을 지난달 12일부터 이달 21일까지 입법 예고 중이다. 면적 제한 규정은 기존 농막에 대해선 소급 적용하지 않지만, 야간 취침 금지는 시행규칙이 개정되면 곧바로 시행된다.
그러자 농막 규제에 대해 ‘주말농장족(族)’이나 귀촌을 준비 중인 사람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별장처럼 호화롭게 꾸며 사용하는 농막은 단속해야겠지만 컨테이너를 고쳐 만든 소소한 농막까지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농촌 인구 고령화로 일손 부족과 ‘지방 소멸’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라며 “현실에 맞게 규제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화별장 막겠다”며 농막 숙박 금지
‘국민참여입법센터’ 홈페이지에는 7일 기준으로 농지법 시행규칙에 대한 의견이 1300건 가까이 접수됐다. 이 홈페이지는 입법 예고된 법령에 대해 국민이 의견을 제시하는 곳인데, 농막 규제에 대해선 반대하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정부 부처의 제도 변경에 1000건 넘는 의견이 제기되는 것도 이례적이다. 또 귀촌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농막 규제에 대한 불만 의견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정부의 이번 농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핵심은 농막의 면적과 용도를 제한하는 것이다. 현재는 농지 면적과 관계없이 20㎡의 농막은 신고만 하면 설치할 수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농지 면적에 따라 달라진다. 농지가 660㎡ 이하면 농막은 7㎡까지, 660~1000㎡는 농막 13㎡, 1000㎡ 초과면 농막 20㎡까지 지을 수 있다. 또 농기구·농산물 보관이라는 농막 본래의 목적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신발을 벗고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은 농막 면적의 25% 이하로 제한된다. 농지가 660㎡(약 200평)보다 작은 경우, 농막 내 휴식 공간은 최대 1.75㎡로 공중 화장실 한 칸 정도 크기다.
정부는 또 농막을 주거지로 쓰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전입신고뿐 아니라 야간 취침도 금지했다. 바뀐 규정을 어기면 건축법, 농지법 등 관련 규정에 따라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어야 하고 농막을 해체하거나 규정에 맞춰 재시공하는 ‘원상 복구’ 명령도 받게 된다. 야간 취침 금지는 기존 농막도 적용받기 때문에 주말농장족은 물론, 논밭이 주거지에서 떨어진 전업 농민들까지 불편을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방 소멸 시대 안 맞는 과잉 규제”
정부가 농막 규제를 강화하기로 한 것은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퇴직 직원을 비롯한 일부 공직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후 농막을 투기에 활용하거나 별장으로 쓰는 사례가 많다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다. 실제 감사원이 전국 20개 시·군의 농막 3만3140개를 실태 조사한 결과, 절반 넘는 1만7149개가 불법 증축됐거나 용도 외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농림부는 “농막이 본래 목적과 달리 이용되며 농지를 훼손하고 있어 구체적인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규칙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농막 규제의 취지는 좋지만, 일률적 적용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농촌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최근 농막은 은퇴 이후를 준비하며 시골 땅을 사는 도시인들이 주로 활용하고 있는데, 농막을 모두 규제하면 농촌 토지 거래나 인구 유입이 끊기면서 지역 활력이 떨어지고 도시와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 농막 설치 신고 건수는 2014년 9175건에서 2021년 4만6057건으로 약 4배로 늘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도시 사람들의 주말농장 활동 또는 귀촌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면적 규정(20㎡)에 맞춰 창고, 침실, 화장실, 부엌을 갖춘 조립식 주택 형태의 농막들을 전문적으로 내놓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가뜩이나 농사지을 일손도 부족한 상황에서 농막에서 하룻밤 묵는 것까지 규제했다간 귀촌 인구가 끊기면서 지방 소멸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야간 취침 규정은 삭제하고, 공간 활용도 각기 사정에 맞춰 유동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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