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 내세운 과도한 ‘PC주의’ 거부
미국 사회에서 지성(知性)의 원천이라고 여겨져온 대학에 대한 존중이 빠르게 식어간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일(현지 시각) 발표된 월스트리트저널(WSJ) 설문 결과 대학 졸업장의 가치가 없다는 응답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의 퇴색, 지식인이 추구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피로감 등이 미국인의 반(反)대학·반지성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수십 년을 갚아야 하는 학자금 대출 등 천문학적으로 높은 대학 등록금도 대학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낮추는 요인이다.
WSJ는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와 함께 지난달 미 전국 성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대학 교육 인식 조사를 발표했다. ‘4년제 대학을 나오는 것이 평생 좋은 직업을 갖고 높은 소득을 올리는 데 비용만큼 효용이 있다’란 문장에 동의한 비율은 42%, ‘빚만 떠안고 쓸모 있는 직업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졸업하는 경우가 많아 대학은 가치가 없다’에 동의한 이는 56%였다. 2013년 CNBC가 같은 조사를 했을 때 ‘대학 졸업이 가치 있다’는 비율이 53%로 ‘없다’는 답변(40%, 나머지는 무응답·모름 등)을 앞섰는데 결과가 뒤집어졌다.
대학 졸업장의 가치가 없다고 보는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18~34세 젊은 층이었다. 10명 중 6명(63%)이 대학이 쓸모없다고 답했다. 아울러 남성, 공화당 지지자, 시골 거주자 등이 대학이 무익하다고 평가했다. 2016년 대선에서 당선됐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층과 겹친다.
설문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대학에 대한 회의가 커진 원인 중 하나로 대학의 정치 편향성 확대 및 이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꼽았다. ‘미 대학들이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에 집착하는 진보·좌파에 점령됐다’는 인식이 보수·중도적 사고를 가진 서민층 사이에서 늘어나면서 대학에 대한 염증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경제가 기우는 상황에 계속 급등하는 대학 등록금도 외면을 초래한 이유로 지목됐다.
실제 최근 수년간 미 대학들은 최대 이념 전쟁터가 되고 있다. 진보 진영은 백인 남성 중심의 역사와 노예제 잔재를 청산하고, 소수 인종과 성소수자 권리를 확대하자는 캠페인을 학계를 중심으로 펼치고 있다. 학계가 자신들이 정한 ‘지성의 틀’에 맞지 않는 학자나 예술인의 사상과 전력을 검열해 낙인찍는 일도 흔하다. 트럼프로 상징되는 반대 진영은 이를 워키즘(Wokeism, ‘깨어있자주의’ 정도로 해석)이라고 조롱하면서, 극단적 PC주의가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폄훼하고 서민을 소외시켜 계층·이념 갈등을 확대한다고 비판한다.
이 같은 경제·이념 갈등의 결과를 반영한 이번 대학 인식 조사는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실제로 미국인의 대학 진학률은 하락하는 추세다. 미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고교 졸업생의 2년제 이상 대학 진학률은 2021년 62%로, 역대 최고였던 2009년 70%에서 급감해 3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대학을 통한 ‘아메리칸 드림’의 성취가 극에 달한 때로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실시한 ‘제대군인 원호법’이 성행하던 시기가 꼽힌다. 유럽·아시아에 파병됐던 저소득 중·고졸 20대 남성 1000만여 명이 종전 후 귀국해 정부 지원으로 아이비리그(미 동부 명문대)와 법학전문대학원 등 원하는 학교에 진학했다. 이들은 중도 탈락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1950~1960년대 각계 엘리트로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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