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호
- 최초승인 2023.03.31 13:41:48
- 최종수정 2023.03.31 13:41
박영수 전 특검이 평검사 내지 초임 간부로 있을 때, 기자는 풍모와 대인관계가 좋은 그가 전남 목포 태생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기자가 기억하기로 그는 자신의 고향을 서울이라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아는 기자들이 많았다.
김영삼 정권 때까지만 해도, 광주일고나 광주고, 전주고, 목포고 같이 감출 수 없는 호남의 명문 고교 출신이 아닌 검사들은 자신의 고향을 감추는 경우가 많았는데 검사 박영수도 그런 사람이었다. 198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 박영수 검사는 자신의 고향이 되자 전남 목포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대검 공안기획관으로 있던 박영수 부장검사는 2001년 6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윤석열 정부가 없애버린 민정수석실의 사정비서관은 가장 믿을 수 있는 검사에게 맡기는 ‘정권의 칼’이었다.
당시 사정비서관으로 발탁된 배경을 두고 아버지와 김대중 정권의 목포 출신 박지원과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뒷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에서도 그는 출세가도를 달려 검찰의 꽃 중 하나로 꼽히는 대검 중수부장에 올랐다.
검사 박영수를 가장 잘 수식하는 용어는 ‘보스기질’이다. 기자들 한테도 수사 진행상황을 잘 알려줘 인기가 믾았고, 술자리에서도 자주 어울렸다. 그러다 보니 그의 주변에는 특별히 ‘적’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박영수 전 특검의 인연을 봐도 “호방하고 사람을 잘 품는” 그의 보스기질에 윤 대통령이 끌렸던 것 같다. 두 사람은 대검 중수부에서 같이 일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온갖 적폐혐의로 ‘똘똘 말아서’ 징역 22년을 선고받고록 한 주역이다.
그런 박영수 전 특검이 뒤늦게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있다. 2021년 가을 대장동 의혹이 불거지고 ‘50억클럽’의 핵심 멤버로 그의 이름이 나왔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인지 50억클럽에 대한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50억클럽의 핵심으로 박영수 전 특검을 둘러싼 비리의혹은 대장동사건의 주범인 김만배의 녹취록은 물론 수십억원대의 금품거래, 그의 딸이 김만배 회사에 취직해 아파트와 상여금 등의 명목으로 수십억원 상당의 이익을 취한 것 등 넘쳐날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31일 박 전 특검이 대장동 사업 초기에 우리은행을 컨소시엄 대표 금융사로 세워 주는 대가로 측근 변호사를 통해 대장동 일당에게 200억원 상당의 대가를 약속받은 정황이 검찰에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 엄희준)는 3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등의 혐의로 박 전 특검과 측근 양모 변호사의 주거지와 사무실, 우리은행 본점·성남금융센터·삼성기업영업본부 등을 압수수색했다.
박 전 특검은 대장동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담당 대표 금융기관으로 본인이 이사회 의장으로 있던 우리은행을 내세우는 조건으로 양 변호사를 통해 200억원 상당의 대가를 약속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에 이같은 내용을 적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검찰은 대장동 관계자들로부터 “양 변호사가 200억원가량의 지분·건물이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약속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돈과 박 전 특검 사이의 관련성을 계속 수사해 왔다.
양 변호사는 박 전 특검이 대표변호사로 있던 법무법인 강남에서 일하며 2016년 특검보로 박 전 특검을 보좌하기도 했다. 2014년 9~10월 대장동 사업 논의 당시 정영학 회계사와 우리은행 관계자 등은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에 모여 2~3차례 컨소시엄 구성 관련 논의를 진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장동 관계자는 “양 변호사는 민간업자와 실무 업무를 담당하는 등 컨소시엄 실무를 진두지휘했다”고 주장했다.
양 변호사는 그 외에도 대장동 관계자들과 가깝게 지내며 사업 관련 법률 컨설팅을 도맡았다고 한다. 그는 변호사 비용도 따로 받지 않은 대신 박 전 특검과 함께 200억원가량의 대가를 약속받았다는 것이 대장동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검찰은 박 전 특검과 양 변호사가 공범 관계로 대가를 약속받은 것을 비롯해 대장동 관련 사항을 모두 공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대장동 일당이 양 변호사 영입을 두고 ‘신의 한 수’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한편 검찰 수사에 대해 박 전 특검은 입장문을 내고 “대장동 개발 관련 사업에 참여하거나 금융알선 등을 대가로 금품을 받거나 약속한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이 이처럼 압수수색 등을 통해 50억클럽 수사에 속도를 내는 것을 놓고 검찰 안팎에서는 정치권에서 민주당 주도로 50억클럽에 대한 특검법안 발의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의 50억클럽 특검 추진에 대해 여당인 국민의힘도 크게 반대하지 않는 모습이다.
검찰의 50억클럽 수사로 박영수 전 특검의 총체적 비리가 드러날 경우 그의 ‘부패한 칼’에 희생된 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가 또다른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우리 형법의 대원칙, “독이 든 나무는 열매에도 독이 있다”는 이른바 ‘독수독과 (毒樹毒果)론’, 의 원칙에 견주어 볼 때 과연 박영수 전 특검이 벌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적폐수사의 법적,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법원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좁은 의미로 독수독과론은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적법한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수사주체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 부패는 수사대상자의 형량을 넘어 기소행위 자체의 정당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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