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지난달 31일 올해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발표하려다 보류했다. 생활 물가가 크게 오른 상황에서 전기요금까지 인상하면 여론의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유와 가스, 유연탄 등 연료비 가격이 크게 올랐는데도 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전기요금을 계속 묶어 두면 한전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한전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 한전채 발행을 늘리면 국내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 한전은 지난해 부족한 전력구입비 정산 등 대금 지급을 위해 2020년의 12배, 2021년의 3배가 넘는 한전채를 발행했다. 총 발행액은 약 37조원이었는데 이중 국내 발행액 35조원이었다. 국내 회사채 발행액 77조원의 45%가 넘는 수준이다. 과도한 한전채 발행과 레고랜드 사태까지 겹치면서 국내 채권시장은 한때 큰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한전의 영업손실이 쌓이면 한전법에서 정한 회사채 발행 한도를 초과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설비 투자와 대금 지급 등 정상적인 경영이 힘들어진다. 지난해 한전법을 개정해 사채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친 금액 대비 2배에서 6배로 확대한 것도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기요금 인상이 지연되면 지난해 43조원가량의 자금조달이 필요했던 것처럼 올해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만약 한전이 자금조달에 실패하면 대금 지급이 지연되면서 협력업체의 경영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전력산업 생태계 전체가 붕괴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론을 의식해 전기요금을 동결하거나 소폭 올리는 수준에 그치면 전기 과소비 관행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문제도 생긴다. 원가보다 낮은 비정상적인 가격 신호는 비효율적인 전기 소비를 유발하고 이에 따른 에너지 수입 증가와 무역적자 심화로 이어진다. 지난해 무역수지는 역대 최대 규모인 475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에너지 수입액의 급격한 증가가 주요 요인이다. 한국은 저렴한 전기요금 탓에 전기소비량은 세계 최상위이고 에너지 효율은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기소비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과소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가격 상승과 연동해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에너지 시장 충격에 따른 소비자의 에너지 절약을 장려하고 친환경 전력으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에너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되 취약계층에 대한 목표 구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세계은행(WB)도 “인위적으로 에너지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정책은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며 이는 소비자 행동, 청정에너지 투자 등에 왜곡된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면 장기적으로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도 있다. 전력산업은 설비를 미리 건설하고 장기간에 걸쳐 투자금을 회수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필요한 설비를 적기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장기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탄소중립을 위해선 한전의 선제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다. 전기요금 인상 지연에 따른 한전의 재무 악화는 미래를 위한 투자를 위축시켜 전력산업의 퇴행을 유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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