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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문화

정관 스님 "음식은 탐내서 먹으면 병, 성글게 먹으면 약" [쿠킹]

중앙일보

입력 2022.12.30 09:00

송정 기자


사찰 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백양사 천진암 주지)이 지난달 서울을 찾았다.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에서 운영하는 한식당 ‘수운’과 함께 준비한 ‘선한 테이블’을 위해서다. 정관 스님의 사찰음식과 수운의 한식을 함께 맛볼 수 있는 행사로,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조용히 열고 싶다’는 정관 스님의 뜻대로 홍보하지 않았지만, 스님의 음식을 맛보고 선한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예약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디너 전석이 매진됐다. 디너를 앞두고 준비 중인 스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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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이 수운과의 콜라보 디너 '선한 테이블'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 [사진 수운]

레스토랑과 하는 협업 자체가 모험이셨을 것 같아요.

수운의 임대한 셰프가 사찰음식을 배우겠다며 동료들과 천진암을 찾아왔고 열심히 배우더니, 협업하자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듣자마자 거절했습니다. 사찰음식과 우리나라의 발효에 대해 알리기 위한 강의엔 관심이 많지만, 행사, 특히 상업 행사는 하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끈질기게 부탁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보니, 코로나 19로 모두가 힘들 때, 특히 매끼 다른 이들을 위해 요리하는 셰프들, 그리고 한 해 동안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디너에는 셰프들이 많이 왔는데, 요리하며 소통하는 사람들과 마주하고 보니 그 자체가 조화롭더라고요. 음식을 통해 서로 배려하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보내서,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셰프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음식을 하는 것은 저에겐 수행입니다. 음식으로 마음을 주고받고, 소통하죠. 수행을 하면서 보니, 요리하는 사람들의 노고가 보이더라고요. 특히 셰프라는 직업은 정신적·육체적으로 무척 힘든 일이에요.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잖아요. 함께 일하는 사람, 음식을 먹는 사람의 감정까지 챙겨야 합니다. 그런 셰프들을 보면 마음이 쓰리고 아프더라고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따뜻한 밥 한 끼 해줄 테니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번 행사도 참여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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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테이블에서 선보인 정관스님의 음식.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주전부리와 겨울 모듬전, 흑임자깨죽. 수운의 대표 메뉴인 금태솥밥과 대세 잣즙 냉채등도 함께 준비됐다. [사진 수운]

셰프들도 정관 스님을 존경하고 따른다. 장을 담거나 김장하는 날에는 전라남도 장성까지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스님을 찾아온다. 비단 국내 셰프뿐만 아니다. 2017년 넷플릭스의 음식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에 출연해 사찰음식을 알린 덕에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셰프들도 찾는다. 지난 3월엔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Asia’s 50 Best Restaurants) 2022’가 세계 요리업계에 영감을 준 인물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공로상(Icon award)’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쟁쟁한 셰프와 업계 고수들이 모여 농사지은 배추를 뽑아 절이고 양념해서 버무려 단지에 묻기까지 한마음으로 김장하고, 표고버섯 밥과 국수말이를 나눠 먹는 일은 백양사 천진암의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젊은 사람들이 사찰음식에 빠졌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사찰음식은 본래 스님이 수행하면서 먹던 음식이에요. 그래서 정말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운만 얻을 수 있게 만들어 음식에 거품이 없어요. 음식은 필요한 것보다 더 먹으면 숨이 가쁘고 소화가 안 되고 몸이 무겁고 그러다 보면 잠이 오고 게으름이 나죠. 그렇게 먹으면 건강도 해쳐요. 최근 먹고 사는 것이 넉넉해져 과하게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죠. 또 고기와 빵 위주의 서구화된 식사를 많이 하면서 몸이 지쳤을 겁니다. 그래서 반대로 필요한 만큼만 먹는 사찰음식에 관심이 생긴 것이 아닐까요. 본디 음식은 잘 먹으면 본전, 탐내서 먹으면 병, 그대로 성글게 먹으면 내 몸에 약이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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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정관 스님. 백종현 기자

직접 농작물을 기르시죠.

텃밭에서 자라는, 그대로 놔둡니다. 씨앗을 뿌리면 햇빛과 눈, 비, 바람이 키웁니다. 자연과 함께 기르는 거예요. 사람이 보기 좋으라고, 화학 비료를 쓰고, 생김새를 다듬고, 빠르게 자라게 하면 될까요. 비뚤어지고 흙 묻은 채소가 내 몸을 살리는 약이에요. 이렇게 농사를 짓고 먹는 건 자연을 살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변해야 지구도 환경도 바뀐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난히 추위가 매서운 겨울입니다. 요즘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뭘까요.

추운 겨울엔 체온을 뺏기지 않고 조절해주는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무·배추·연근·우엉은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대표적인 채소예요. 그리고 한겨울엔 밭에서 나는 채소를 구하기 힘들잖아요. 절에선 이때, 1년 내 농사지어놓은 뿌리채소나 제철에 삶고 데치고 말려 보관한 나물, 간장, 된장, 고추장에 박아둔 절임음식 등을 먹어요.

정관 스님은 인터뷰를 마치며 “음식으로 차디찬 몸과 마음을 녹이며 한해 마무리를 잘하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과 평화로운 인연이 생기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 새해에는 “좋은 인연과 함께 배려하고 나누는 마음으로, 음식을 통해 인연을 만들고 이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