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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문화

尹-빈 살만, ‘신선로’ 함께 먹으며 화합 다져

이지윤 기자

입력 2022-11-21 03:00업데이트 2022-11-21 03:05
 
능이버섯 잡채 등 한식 코스
만찬주는 無알코올 오미자 칵테일
바이든 만찬땐 한미 화합 강조
美갈비-국산 야채 비빔밥 올려
17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남동 관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공식 오찬을 갖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한국에 머문 약 20시간 동안 총 40조 원에 달하는 통 큰 투자 계획을 발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윤석열 대통령과 즐긴 오찬 음식은 ‘화합’을 상징하는 궁중 해물신선로(神仙爐)였다. 한국 음식의 정수로 꼽히는 신선로는 예부터 ‘식탁에 더불어 둘러앉아 갖가지 다른 식재료가 어우러진 음식을 먹으며 화합을 다진다’는 의미가 깊다.

정상 간 화합을 다지는 국빈 만찬의 세계에서는 음식도 중요한 메시지의 일부다. 20일 호텔롯데 등에 따르면 1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열린 오찬에는 궁중 해물신선로를 비롯해 협력과 조화를 강조한 음식이 제공됐다. 빈 살만 왕세자 측의 대규모 투자에 적극적인 협조와 화합의 의지로 화답하기 위해서였다. 전통 조리법대로라면 육류, 어패류 등이 두루 들어가지만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 식문화를 고려해 해산물을 중심에 뒀고 만찬주로는 다섯 가지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오미자 논알코올 칵테일이 올랐다.
○ 이슬람 식문화 반영한 한식으로 ‘화합’ 강조
이번 오찬에선 ‘화합’이란 주제에 걸맞도록 사우디아라비아 식문화를 메뉴 선정에 최대한 반영했다. 애피타이저로는 ‘할랄 닭고기 두부선(두부에 각종 재료를 넣어 찌는 궁중요리)’을 비롯한 향토진미 9품 냉채와 가을 단호박죽이 준비됐다. 기본 찬에도 육류 대신 야채를 중심에 둔 반찬이 올랐다. 능이버섯 잡채와 더덕장아찌 등 총 5종이다. 또 술 제조와 판매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현지 문화를 고려해 각종 주류 대신 제주감귤 착즙주스가 식사와 곁들일 음료로 마련됐다.

음식을 담아 내놓은 식기 역시 이슬람 식문화를 배려했다. 기존 롯데호텔에서 사용하던 식기 대신 왕세자 측이 직접 공수한 금색 식기로 대부분 대체한 것. 왕세자 측은 방한 기간 사용할 용도로만 국내외에서 식기를 1억 원어치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에 구비된 식기가 기본적으로 이슬람교 율법에서 벗어난 음식을 담아왔기 때문이다.

 
만찬은 롯데호텔 연회팀이 한식 레스토랑인 ‘무궁화’와 협업해 준비했다. 전영진 롯데호텔 한식 연회 조리장이 이끄는 연회팀은 20∼30년 이상 경력을 가진 베테랑 요리사들로 구성됐다. 만찬 준비기간은 2주 내외였다. 통상 해외 국빈 만찬이 2∼3개월 전부터 준비되는 데 비하면 짧은 기간이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이달 7일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인사들이 롯데호텔을 드나들기 시작했다”며 “그때부터 왕세자의 식사, 보안 등 수행을 준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치적 메시지 전달하는 만찬 외교
올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화합을 강조한 음식이 만찬에 올랐다. 이 만찬에서는 지역별 대표 특산물과 미국산 식재료를 함께 사용한 한식 메뉴로 양국의 조화로운 관계를 표현했다. 미국산 갈비를 간장소스에 숙성시킨 소갈비 양념구이부터 엔다이브 등 해외에서 즐겨 먹는 야채를 국산 야채에 곁들인 팔도산채비빔밥까지 선보였다. 후식으로는 미국산 견과류와 이천 쌀로 만든 쌀 케이크가 올랐다. 만찬주는 미국 캘리포니아 내파밸리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와이너리의 제품이었다.

국빈 만찬의 세계에서는 정상 간 화합을 다지고자 조화로움을 강조한 음식이 애용된다. 위쪽 사진부터 다양한 산해진미를 한데 끓인 ‘신선로’, 인도네시아 각지에서 공수한 재료로 만든 ‘다이버시티 인 원’, 조선 영조가 치우침 없는 정치를 강조한 데서 유래한 ‘탕평채’. 사진 출처 롯데호텔·SNS 캡처·해외문화홍보원
귀빈 만찬으로 대접하는 음식은 대외적 정치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창구가 된다. 음식은 그 유래와 의미를 통해 상대 국가에 전하고자 하는 복합적인 메시지를 세련되고 은유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문화적 도구로 사용된다. 해외에서도 만찬 음식을 통해 국빈에게 화합 메시지를 강조하는 사례는 많다. 이달 15일(현지 시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만찬에 ‘다이버시티 인 원(Diversity in One)’이라는 명칭이 붙은 음식을 마련했다. 망고, 게살 등 인도네시아 각지에서 공수한 식재료를 조화롭게 사용해 G20 각국의 화합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해외 국빈뿐 아니라 국내 주요 인사를 맞이할 때도 화합을 강조한 음식이 마련된다. 올 3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을 초청한 청와대 상춘재 만찬에서도 화합을 상징하는 봄나물 비빔밥과 탕평채가 메인 요리로 올랐다. 청포묵을 여러 가지 채소와 섞은 탕평채는 조선 영조가 사색당파의 치우침 없는 탕평(蕩平)을 고심하면서 신하들에게 하사한 음식으로 비빔밥과 더불어 화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전통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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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