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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의인 남편의 희생 잊히지 않게”...33세 아내는 나눔에 동참했다

 

[2022 아너 소사이어티] [4] 고인이 된 가족 기리며 기부

입력 2022.12.28 03:00
 
 
2019년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 배수 터널 침수 사고 당시 협력업체 직원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남편 안준호(당시 29세)씨 이름으로 사랑의열매에 1억원 기부를 약정한 배현주씨가 지난 20일 사고 장소 인근에 마련된 추모비를 찾았다. 배씨는 마음이 예뻤던 남편이 잊히지 않게 기부를 했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배현주(33)씨는 3년 전 삶의 전부였던 사람을 잃었다. 2019년 7월 31일 서울에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진 날 아침, 배씨의 남편인 현대건설 직원 안준호(당시 29세)씨는 양천구 목동 빗물 펌프장 수문(水門)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배수 터널 점검 작업을 벌이다 통신이 두절된 채 갇혀 있던 협력업체 직원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터널로 내려간 안씨는 물살에 휩쓸렸고, 아무도 살아 나오지 못했다. 배씨와 남편은 대학 시절부터 9년 연애 끝에 결혼한 2년 차 부부였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열흘 뒤 배씨는 아기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배씨는 지난 4월 사랑의열매에 안씨 이름으로 5년간 1억원 기부 약정을 했다. 기부금은 안씨 사망보험금과 보상금 일부, 그리고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경남 김해시의원으로 당선된 배씨에게 나오는 세비를 더해 마련했다. 안씨는 사랑의열매 개인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이하 ‘아너’) 회원으로 사후 추대됐다. 배씨는 “잘생긴 얼굴보다 마음이 더 예뻤던 남편이 잊히지 않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결혼 전부터 배씨는 국제 구호 단체에 다달이 기부금을 냈다. 결혼 자금이 빠듯해 망설이던 배씨에게 안씨가 “여유가 있을 때 기부하겠다고 미루면 평생 못 할 수도 있다”며 용기를 준 덕분이었다. 배씨는 사후 장기 기증 서약도 했다. 그는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잃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게 됐지만, 기부로 행복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82명이 고인을 기리려는 기부를 통해 사후(死後)에 아너 회원이 됐다. 왕승연 사랑의열매 개인모금팀장은 “고인의 자녀나 배우자가 ‘고인은 생전에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았고, 돌아가시면서도 나눔을 원했을 것’이라며 유산 일부를 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미 아너 회원인 기부자가 추가 기부를 통해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나 배우자를 아너 회원으로 모시기도 한다. 2020년에는 80대 박모씨가 어린 시절 한국에서 근무한 미국인 고(故) 프랭크 F 페이건 3세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며 기부를 통해 페이건 3세를 아너 회원으로 추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