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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타이레놀만 먹고 버틴 손흥민…대표팀 따라간 명의도 놀랐다

 

중앙일보

입력 2022.12.11 05:00

업데이트 2022.12.11 09:07

지난 2일(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H조 최종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 후반 동점상황에서 손흥민이 팬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손흥민 선수는 골절 수술받은 뒤에도 도핑(약물 반응)검사에 걸릴 것을 우려해 제일 약한 진통제만 복용하며 버텼습니다. 황희찬 선수는 햄스트링 부상을 누구보다 빠르게 이겨냈습니다. 의사 입장에서 혀를 내두를 만큼 강인한 우리 선수들의 정신력이 16강 진출의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주치의(팀 닥터) 왕준호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지난 20여일간의 여정을 마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이틀 전 귀국해 아직 시차 적응 중”이라는 왕 교수와 9일 전화인터뷰를 통해 선수들의 빛나는 투혼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축구협회는 왕 교수와 조윤상 강서바른세상 병원장(재활의학과)에 의무팀을 이끌어달라고 청했다. 벤투 감독의 요청이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조 원장은 지난 10월 28일부터, 왕 교수는 지난달 14일부터 대표팀과 동행했다.

왕 교수가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우리 대표팀이 사상 첫 준우승 신화를 쓴 2019년 폴란드에서 열린 U20(20세 이하 선수) 월드컵 때 팀 닥터를 맡아 한 달여 간 선수들과 동고동락했다. 지난해엔 도쿄올림픽 대표팀의 건강을 챙겼다. 왕 교수는 “폴란드에선 20세 이하 선수들을, 도쿄에선 23세 이하 선수를, 이번엔 전체 선수를 맡았다”라며 “단계별로 선수들을 모두 맡아본 건 제가 처음일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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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교수는 국내 최고의 스포츠손상 권위자다. 2019년에 프로야구 나성범(기아타이거즈) 선수의 전방십자인대 응급 수술을 맡아 성공적으로 회복시키는 등 다양한 종목 선수들의 주치의로 활약했다. 유명세만큼 진료대기가 엄청나다고 한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왕 교수 진료를 받으려면 외래는 최소 반년, 수술은 외래 후 2~3년 대기해야 한다”라고 귀띔했다. 바쁜 스케줄을 쪼개가며 대표팀과 동행한 이유는 뭘까. 왕 교수는 “2019년에 축구협회 의무위원회 추천으로 합류하게 됐다”라며 “제 전공 분야가 스포츠손상이라, 다쳐서 오는 다양한 종목의 많은 선수를 치료하게 된다. 현장에서의 경험이 선수들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대표팀 합류 결정을 내리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왕 교수는 “제가 팀 닥터를 맡고 싶다해도 병원에서 장기간의 해외 출장을 양해해주지 않는다면 못했을텐데, 박승우 삼성서울병원 원장님 덕분에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이하는 왕 교수와의 일문일답.

2022 카타르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팀닥터를 맡은 왕준호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

-팀 닥터가 하는 일, 평소 진료하는 것과는 다를 텐데

“병원에서 진료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훈련이나 경기 도중 선수들에게 발생하는 근골격 손상 상태를 관찰하고, 진단하고, 어떤 조치를 해야 할지 결정한다. 문제가 있다면 현지 병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 검사 등을 하고 어떤 치료를 할지 판단하기도 한다. 또 손상이 있는 선수가 언제쯤 다시 복귀해 뛸 수 있을지 판단해서 코치진에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경기 시에는 근골격계 손상뿐 아니라 뇌진탕, 드물게 심정지 같은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팀 닥터는 벤치에서 경기를 주시하다가 이런 상황이 있을 때 빨리 판단해서 응급조치해야 한다.”

-장기간의 국제대회에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역할을 해야겠다.
“맞다. 다쳤을 때 대처만 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의 전반적인 건강관리도 해야 한다. 영양관리 등도. 감기 걸리는 선수, 배탈 나서 설사하는 선수도 진료해야 한다. 스페셜리스트(전문의)뿐 아니라 일반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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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는 어디에서 했나

“호텔 2층에 방 한 곳을 치료실로 썼다. 파주 트레이닝센터처럼 체외충격파 치료기, 고주파 치료기, 레이저치료기, 마사지 테이블 침대 등을 모두 한국에서 실어갔다. 선수들에게 문제 생길 때마다 병원에 갈 수는 없으니 조그만 병원처럼 모든 종류의 약을 갖춰두고 그때그때 진단하고 약을 처방했다.”

-주로 어떤 치료를 했나
“통증 완화를 위한 치료를 많이 했다. 고주파 치료기 등으로 다친 부위에 통증을 덜어주고, 소염진통제를 처방하는 식이다. 의무팀 트레이너 선생님들은 선수들의 근육 컨디셔닝을 위해 마사지나 스트레칭을 주로 했다. 또  훈련이나 경기할 때 축구화 스터드에 찍혀서 상처 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몸싸움 도중 부딪혀서 입술이 터지고 피 나고, 헤더 경합 도중 머리가 깨지는 일도 흔하다. 이런 때 외상 드레싱도 했다.”

지난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이 기념촬영을 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손흥민 선수를 비롯해 이번 대회에선 부상 상태로 합류한 선수가 많았다.

“벤투 감독님은 선수들의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싶어했다. 대표팀 소집 전부터 선수 소속팀의 팀 닥터들과 전화통화, 메시지를 교환하면서 상태를 파악했다. 손흥민 선수의 경우 토트넘 팀 닥터와 개인적으로 연락하며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 결과 등을 받아 상황을 파악하고 코치진이 결정 내리는 데 도움이 되려 노력했다. 저보다 보름 먼저 대표팀에 합류한 조윤상 원장님이 훨씬 고생했다.”

-마스크를 쓴 손흥민, 전 국민이 걱정했다.

“의무팀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의사로서는 수술 3주도 안 돼 경기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해내더라. 현장에서 헤더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다른 선수들과 잘못 부딪히면 어쩌나, 점프해서 다른 사람 얼굴이나 몸에 부딪히면 어쩌나 걱정했다. 무사히 대회를 마쳐 다행이다. 손흥민 선수가 마스크도 어색했을 테고 추가 부상 우려에 위축될까 걱정했는데 경기를 거듭할수록 자신감 있게 거침없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마음이 놓였다.”

-손흥민 선수, 도핑 우려 탓에 진통제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는데.

“흔히 마약성 진통제, 소염진통제, 일반 진통제 셋으로 구분한다. 일반적으로 수술 뒤에 최소 2주~4주는 마약성 진통제를 쓴다. 그런데 그 약은 약물 도핑 검사에서 걸릴 수 있다. 손흥민 선수는 수술 마취할 때 딱 한 번 쓰고 쓰지 않았다. 소염진통제가 두 번째인데 골절(회복)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손 선수는 가장 약한 타이레놀을 주로 썼다. 통증이 극심했을 텐데 참고 견뎌낸 것 같다.”

-황희찬 선수는 오래 가기로 소문난 햄스트링 부상을 극복했다.

“선수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했다. 빨리 회복하려고 노력을 정말 많이 했다. 덕분에 눈에 띌 정도로 회복이 빨라 뛸 수 있겠다 판단했다. 적기에 투입돼 좋은 결실을 내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