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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Trick or treat!” 부모들 신종 스트레스로 등극한 핼러윈

[아무튼, 주말]

크리스마스급 명절 된 핼러윈
파티 준비에 괴로운 엄마아빠

입력 2022.10.29 03:00
 
지난 4일 서울 한 마트에서 아기를 안아 든 한 엄마가 핼러윈 상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다음주에는 우리 ○○ 키즈들이 가장 좋아하는 Halloween Party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Halloween Party 당일에는 Halloween Costume을 입고 등원합니다. 오감을 활용한 Halloween Event를 통해 미국 문화를 경험해 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중략) 학부모님들의 Halloween Costume은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작은 소품이라도 준비하셔서 착용하시면 더 즐겁고 흥미진진한 Halloween Event가 될 수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한 영어 유치원의 ‘핼러윈 파티’ 공지)

최근 몇 년 새 핼러윈(10월 31일) 행사를 하는 곳이 많아졌다. 놀이공원·쇼핑몰은 물론, 유치원·어학원 등에서도 파티를 연다. 핼러윈이 ‘제2의 크리스마스’가 됐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 자녀들에게 색다른 추억을 선물할 수 있어서 좋다는 부모도 있지만, 금전적·시간적 비용이 부담되고 외국 명절을 챙겨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핼러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도 적지 않다.

◇엄마들도 유령 분장… “우리 애만 빠질 순 없잖아요?”

영어 유치원에 자녀를 등원시키는 주부 A씨는 9월부터 핼러윈 파티를 준비했다. 해외 직구를 통해 아이가 원하는 코스튬(옷)과 각종 소품을 구매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용은 10만원가량. A씨는 “유치원에서 코로나 이후 첫 핼러윈이라 파티를 성대하게 하겠다고 공지를 해서 더 신경을 썼다”며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문화 행사라고 생각하지만 의상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 건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 맘카페 등에는 부담을 호소하는 부모가 많다. ‘하루만 입고 말 건데 공주 옷 사기는 부담이 크네요’ ‘애 기죽지 말라고 비싼 걸 사줘야 하는 건지…. 핼러윈을 대체 왜 챙기는 건지 모르겠네요’ 등의 글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워킹맘 B씨는 유치원이 평일에 핼러윈 행사를 열기로 해 연차 휴가를 내기로 했다. B씨는 “다른 엄마들은 다 유령 분장을 하고 아이들 등원길에 사탕을 나눠준다는데, 나만 빠질 수 없어 회사에 양해를 구했다”며 “아이가 평소 입고 싶어 하던 특별한 옷도 입고, 간식도 잔뜩 받으니 엄청 좋아한다. 내가 조금 수고로워도 아이가 즐거워하니 그걸로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B씨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주제로 아이와 자신의 의상을 골랐는데, 의상과 소품, 사탕 등을 사는 데 15만원을 지출했다. 외국 문화원에 6세 아들을 등원시키는 남모(34)씨는 “핼러윈 파티를 한다고 해서 급하게 의상을 만들어 입혀 보냈는데, 다른 아이들이 엄청 화려하게 하고 와 주눅이 들었다”며 “한국 부모가 왜 외국 명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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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에서 어린이들이 '핼러윈 몬스터 파티'(Halloween Monster Party)를 즐기고 있다. /레고랜드 제공

◇'핼러윈 캠핑’도 유행… 일각선 ‘보이콧’ 선언도

핼러윈 캠핑과 홈파티를 즐기는 가정도 늘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핼러윈 캠핑’ ‘핼러윈 홈파티’ 등의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수만 개가 넘는다. 7세, 5세 형제를 키우는 회사원 이모(40)씨는 아이들 성화에 지난 주말 서울 근교 캠핑장에 1박 2일로 ‘핼러윈 캠핑’을 다녀왔다. 이씨는 “큰애가 친구들은 다 핼러윈 캠핑을 간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다녀왔다”며 “캠핑장 전체가 핼러윈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는데, (캠핑장에 온) 아이들 옷이 포켓몬, 마리오, 가오나시, 공룡 등 정말 다양하더라”고 했다. 이씨는 잭오랜턴(속을 파낸 호박에 얼굴 모양을 내고 그 안에 불을 밝힌 등) 만들기, 캠핑장 돌며 사탕 받아오기 등을 했다면서 “애들 어릴 때 몇 년만 하는 것이니, 돈은 조금 아까워도 잘 다녀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4세 쌍둥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직장인 김모(38)씨는 집에서 가족끼리 핼러윈을 즐기기로 했다. 김씨는 “우리 애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선 핼러윈 행사를 열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들이 원장에게 엄청 고마워했다”며 “언젠가부터 핼러윈이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처럼 아이들에게 뭔가 해줘야 하는 날이 됐다”고 했다. 그럼에도 홈파티를 준비하는 이유에 대해선 “아이들이 프랑스 동화 ‘추피와 친구들’을 좋아하는데, 핼러윈을 큰 비중으로 다루다 보니 자연스레 호기심을 갖더라”며 “다이소에서 저렴한 장식을, 남대문 시장에서 의상을 구매할 생각”이라고 했다.

‘핼러윈 보이콧’을 선언한 부모도 있다. 5세 딸을 둔 박모(36)씨는 “핼러윈에 등장하는 유령, 좀비 같은 것들이 아이들 정서에 좋지 않고, 사탕·초콜릿도 몸에 좋지 않다”며 “극성 맞게 핼러윈을 챙기는 것보단, 우리나라 명절인 단오를 챙기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는 “‘코스튬’이 가장 큰 특징인 핼러윈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사진·영상 공유’라는 요즘의 놀이 문화와 잘 조응한다”며 “외국 문화의 유래와 의미를 전혀 모른 채, 단지 ‘포모(FOMO·자신만 뒤처져있다는 두려움) 심리’ 때문에 기업들 마케팅에 넘어가 핼러윈의 이미지만 소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