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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흔적

67년간 방방곡곡 누빈 송해, 고향 ‘황해 노래자랑’ 꿈 못이룬채…

입력 2022-06-09 03:00업데이트 2022-06-09 07:14
 
[송해 1927~2022]
이젠 “천국~ 노래자랑”…95세 최고령 ‘국민MC’ 송해 별세
尹대통령, 금관문화훈장 추서
“전국∼(노래자랑)”을 목 놓아 외치던 ‘국민 할아버지’가 하늘로 돌아갔다. “내 인생을 ‘딩동댕’으로 남기고 싶었다”던 이의 늦은 퇴근길이다. 현역 최고령 방송 진행자인 송해 씨(사진)가 8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고인은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송 씨 측은 “식사하러 오실 시간이 지나 인근에 사는 딸이 자택에 가보니 화장실에 쓰러져 계셨다”고 전했다.

황해도 재령 출신인 고인은 해주예술전문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6·25전쟁 때 월남한 뒤 창공악극단을 통해 1955년 가수로 데뷔했다. 1988년 KBS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은 후 34년간 프로그램을 진행해 올해 4월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전을 보내 “정감 어린 사회로 울고 웃었던 우리 이웃의 정겨운 노래와 이야기는 국민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빈소를 찾아 영정 앞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른다. 유족으로는 두 딸 숙경 숙연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0일 오전 5시.

국민MC 송해가 걸어온 길
1950년 월남… 바다보며 예명 ‘송해’로
1955년 창공악극단 통해 가수 데뷔
34년간 전국노래자랑 진행 맡아… 2003년 ‘평양 노래자랑’ 사회보기도
생전 버스-지하철 타고 걷기 즐겨… 교통사고로 아들 잃은 아픔 겪어


 


“슬픔을 맛봐야 웃음이 나옵니다. 희극의 본류는 사실 비극이에요. 진짜 희극은 다 보고 귀가해서 밥 한 술 뜰 때 웃음이 나야 하는 겁니다.”

숱이 촘촘한 눈썹 아래, 뭉툭한 콧대 위, 두꺼운 안경테 속 송해의 작은 눈에 맺힌 눈물방울을 종종 보았다. 고인을 생전 몇 차례 만난 자리에서다. 팔도강산에서, 대한민국의 인간군상에서 길어 올린 지혜와 웃음을 그는 67년간 전국에 뿌리고 다녔다. KBS ‘전국노래자랑’을 비롯해 여러 프로그램으로 쉼 없이 팔도를 누빈 고인은 누가 들어도 무릎을 칠 격언을 국밥 테이블 앞에서 술술 풀어내곤 했다.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9년 해주음악전문학교 성악과에 입학해 음악교육을 받았다. 이후 ‘선전대’ 대원으로 북한을 돌며 공연하다 1950년 단신으로 월남해 국군에 입대했다.


“6·25전쟁 때 피란민 틈에 섞여 배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면서 망망한 서해를 바라봤어요.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내 인생은 그저 저렇게 떠돌게 될 것 같다는 먹먹한 생각이 떠올랐죠. ‘그래, 바다다. 이제부터 내 이름은 해(海)다…’.”

본명(송복희)을 대신한 예명은 그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1955년 창공악극단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전국을 돌며 재담과 가창력을 뽐냈고 1960년대 동아방송의 ‘스무고개’와 ‘나는 모범운전사’에 출연했다.

고인은 줄곧 땅과 인간에 천착했다. ‘방송인’을 연하며 서울 여의도나 상암동만 오가는 대신 시청자의 삶의 터전, 삼천리 방방곡곡을 누볐다. 필부필부의 노래와 이야기 속의 삶을 꿰뚫어봤다.

“농심(農心)이란 게 참 오묘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농사하는 분들만 못하죠.”

고인은 생전 입버릇처럼 “내겐 BMW가 있다”고 했다.

“버스(Bus), 메트로(Metro·지하철), 워킹(Walking·걷기). 합쳐서 B, M, W!”


매주 떠나는 전국노래자랑 녹화 때마다 제작진과 함께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 고인이 몇 년 전 본보 캠페인 ‘시동 꺼! 반칙운전’ 홍보대사를 자처한 이면엔 특별한 슬픔이 있었다.

그는 1986년 당시 대학교 2학년이던 아들을 길에서 잃었다. 아들이 서울 한남대교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다리 난간을 들이받고 숨진 직후 그는 17년째 진행하던 KBS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의 진행자 자리를 내놨다. 그는 “사고 이후 한남대교를 건너지 못하고 멀리 돌아간다”고 했다.

1970년대까지 TV와 라디오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간 고인은 1988년 5월 경북 성주 편부터 마이크를 잡아 말년까지 진행한 전국노래자랑으로 올해 4월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누빈 그의 ‘BMW’도 가닿지 못한 곳이 있다. 고향이다. 고인은 “2003년 평양 노래자랑 때 현지 기관원이 은밀히 옷소매를 끌며 ‘저와 동향이시네요’라 했지만 ‘거기 데려가 달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 게 크게 후회된다”고 했다.

KBS는 8일 오후 10시 고인을 추모하며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를 방송했다. 12일 방영하는 ‘전국노래자랑’도 추모 특집으로 편성된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