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질 필요없는 부드러운 육질… 빈틈없는 감칠맛 혀를 뒤덮네
[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함박스테이크
햄버거와 함박스테이크는 다르다. 대부분 소고기 100%를 강조하는 햄버거와 달리 함박스테이크는 배합이 생명이다. 들어가는 재료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반반에 빵가루·양파 정도이지만 양파를 볶을지 말지, 빵가루를 우유에 적실지 말지, 겨자나 우스터소스 같은 부재료를 넣을지 말지에 따라 맛은 조금씩 달라진다. 요리사나 요리연구가에 따라 우스터소스·겨자·케첩을 넣기도 하고, 볶은 양파·육두구(nutmeg)·달걀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틀어진 맛의 영점은 먹는 사람에게 큰 차이로 다가온다. 그 차이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다가 길을 나섰다.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집의 함박스테이크는 또 어떤 모습일지가 궁금해졌다.
시작은 서울 잠실 신천동 ‘정순함박’이다. 재개발을 몇 십 년째 비켜 나간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 상가는 홍콩 누아르 영화 속 풍경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정순함박이 있는 장미B상가도 그랬다. 제대로 된 구획도 없이 가게와 가게가 군락을 이루며 자생적인 푸드코트를 이뤘다. 정순함박은 그 지하층 가장 중앙에 있다. 완전히 개방된 주방에서 젊은 요리사와 어깨가 굽은 나이 든 여인이 함께 음식을 다뤘다. 메뉴는 함박스테이크, 스파게티, 햄버거 등 예전 경양식 스타일이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태블릿으로 주문을 넣고 나니 조리하는 모습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소스가 흠뻑 뿌려진 함박스테이크 위에는 숙주나물이 올려졌다. 양배추 샐러드와 피클, 공기밥 한 덩이가 옆에 놓였다. 어두운 갈색 소스는 농도가 짙었다. 토마토의 산미보다는 육수를 졸여 만든 듯한 두터운 볼륨감이 우선이었다. 고기는 칼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소스의 양이 충분해 밥을 곁들여도 모자라지 않았다. 직접 담근다는, 신맛이 새콤하게 올라오는 깍두기를 반찬 삼았다.
광화문 ‘카페 이마’도 함박스테이크로 오래 이름을 날렸다. 일민미술관에 딸린 카페 이마는 정신 없는 광화문에서 그나마 우아하게 칼질을 하고 디저트로 와플까지 해결할 수 있는 귀한 곳이다. 큰 유리문을 밀면 높은 층고에 멀리까지 트인 넓은 실내 덕에 답답한 감이 없다. 앉아 식사를 하는 사람들 역시 힘차게 턱 운동을 하는 이들이 드물다. 그보다는 칼을 붓처럼 천천히 휘두르고 포크를 강태공 낚싯대처럼 이따금 드리웠다.
클래식 함박스테이크는 양파와 양송이버섯을 소스에 볶아 냈다. 살짝 구운 함박스테이크는 구운 고기보다는 흡사 빵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성질을 극대화했다. 토마토 칠리페퍼 함박스테이크는 3가지 칠리를 곁들여 소스를 만들었다고 했다. 살짝 매콤한 정도로 열이 올라오는 소스 덕에 맛에 리듬이 깃들었다. 코울슬로는 마요네즈의 고소한 맛보다는 기름기를 쫙 뺀 담백한 맛이 중심을 이뤘다. 노른자를 터뜨려서 소스에 무게를 더했다. 단맛이 절제된 소스, 단출한 구성, 쉬이 질리지 않고 오래도록 먹을 수 있는 맛이 점심 한나절을 기품 있게 만들었다.
주문을 넣으면 기본으로 수프와 단무지, 무 피클이 깔렸다. 수프에 살짝 후추를 쳐서 먹는 사이, 함박스테이크도 곧이어 테이블 위에 올랐다. 노른자가 살아 있는 반숙 달걀프라이, 진한 갈색 소스, 감자 튀김, 샐러드, 하얀 쌀밥이 옹기종기 사이 좋게 모여 있었다. 데미그라스 소스는 단맛, 신맛에 이어 혀를 뒤덮는 감칠맛이 빈틈없이 이어졌다. 성기게 엉긴 함박스테이크는 한입 먹을 때마다 두 손으로 고기 반죽을 했을 주인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복잡하고 어려운 음식은 아니다. 그보다는 매일 고기를 치대는 한결같은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말끔히 비운 접시를 보며 이 집 주인장의 레시피를 머릿속에 그려봤다. 윤이 나게 닦은 테이블 하나, 웃음으로 맞는 인사 한 숟가락, 정직한 하루 두 숟가락을 섞어 매일 같은 삶에 버무린 다음, 한가한 을지로 밤거리에 담아낸 당신의 함박스테이크를.
#정순함박: 함박스테이크 8600원, 매운크림파스타 9300원.
#카페이마: 클래식함박스테이크 1만4000원, 토마토칠리페퍼함박스테이크 1만5000원.
#우정함박: 데미함박스테이크 9500원, 로제함박스테이크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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