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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문화

[쿠킹] 향은 달콤한데 맛은 시다…매실의 반전 매력

[쿠킹] 향은 달콤한데 맛은 시다…매실의 반전 매력

중앙일보

입력 2022.04.25 09:00

업데이트 2022.04.25 10:14

살구꽃은 분홍빛을 띠며 매화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사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권정현 농업연구사

우리 동네에는 이른 봄에 흰색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포털에서 검색해보니 살구꽃이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 해 봄에 검색하니 앵두꽃이라고 말을 바꿨다. 정체가 모호해진 가운데 열매를 지켜보기로 했다. 꽃이 지고 몇 주가 지났을까, 나무에는 작고 동그란 초록색 열매가 열려 있었다. ‘매실이네’라고 생각한 다음 날, 누군가 나무에 “살구를 따지 마시오”란 팻말을 걸었다. 익으면 알 수 있겠지 했는데, 노란빛이 살짝 돌기 시작할 때쯤 열매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올해 봄, 포털 검색은 ‘살구꽃’이라고 입장을 다시 바꿨다.

매실일까 살구일까?
앵두는 확실히 아니다. 근처에 앵두나무가 많아 비교할 수 있어서다. 매화나 살구꽃 같지만, 검색을 온전히 믿을 수 없으니 박사님 찬스를 써보기로 한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핵과 과일을 연구하는 권정현 농업연구사(박사)는 “살구꽃과 매화는 얼핏 보면 비슷하다”고 말한다. 흰색 매화(白梅 백매)처럼 누가 봐도 매화인 것도 있지만, 보통 분홍빛을 띠는 살구꽃과 비슷한 매화도 있다. 왜 비슷하냐면 이 둘이 ‘근연종’이기 때문이다. 생물 분류에서 유연관계가 깊은 종류를 말한다. 권 박사는 “유연관계란 교배해서 종자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매실과 살구는 꽃가루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잡종 품종이 많은 이유다.

유연관계에 따라 분류도 나뉜다. 순수 매실‧살구성 매실‧중간계 매실‧매실성 살구‧순수 살구 등이다. 매실 유전자원을 연구한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김윤경 연구관(박사)은 “일반적으로 순수 매실은 원종(어떤 품종이 본래의 성질을 가진 종자)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순수 매실은 향이 강하지만 과실은 작고, 살구와 교배한 매실은 과실이 큰 편이다. 매실 주산지인 광양이나 순천에서 많이 생산하는 ‘백가하’ 품종이 바로 살구성 매실이다. 순수 매실인 갑주소매의 과중이 5g 정도인 것에 비해 백가하는 30g 정도다. 또, 매실성 살구인 풍후는 과실 성분이 매실에 가까워 매실로 분류해 재배한다. 풍후는 40g 정도의 대과다.

씨를 통해 매실과 살구를 구분할 수 있다. 사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권정현 농업연구사

매실과 살구가 얼마나 비슷한가 하면, 생산자들도 헷갈린다고 한다. 권정현 농업연구사에 따르면, 시장에서 산 매실로 절임과 청을 만들었는데 매실 향이 나지 않는다면서 매실인지 살구인지 확인해달라던 민원이 2~3년 전만 해도 많았다고 한다. 권 박사는 “아무래도 살구는 매실보다 향이 덜하다. 그해 매실이 귀하면 이런 민원이 많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럼 매실과 살구는 어떻게 구분할까? 과일만 봐서는 알 수 없다. 과육을 제거하고 씨를 봐야 한다. 매실 씨는 표면에 바늘로 콕콕 찌른듯한 구멍이 많다. 반면 살구씨는 표면이 매끄럽다.

겨울을 짧게 보내고 이른 봄에 피는 매화
매실나무를 구분하는 또 다른 방법은 개화 시기다. 독일의 원예학자이자 식물학자인 안드레아스 바를라게는 『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 싶었어』에서 “대다수 과일나무는 꽃이 비교적 늦게, 그러니까 대략 4월이나 5월에 핀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때 꽃이 피는 게 “아주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꽃을 망치는 냉해의 위험은 줄일 수 있고 곤충들이 돌아다니며 가루받이할 가능성은 높일 수 있어서다. 그런데 매화는 3월이면 핀다. 권정현 농업연구사는 “과일나무 중에서도 살구‧자두‧매실‧복숭아 등을 이르는 핵과 과일의 개화가 빠른데, 그중에서도 매실이 가장 빠르다”고 한다. 그다음이 살구‧자두‧복숭아‧체리 순이다. 그러니 벚꽃이 아직인데 흰 꽃이 피었다면 매화일 확률이 높다. 또 매화도 벚꽃도 아닌데 흰 꽃이 피었다면 자두꽃일 확률이 높다.

 

매화는 이른 봄에 피어 진하고 달콤한 향을 뽐낸다. 사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권정현 농업연구사

그런데 매화는 왜 일찍 필까? 김윤경 연구관은 “저온에 필요한 시간이 다른 과수에 비해 짧아서”라고 한다. 정확히는 ‘저온 요구도’라고 하는데 종자가 싹을 틔우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일정 온도 이하의 시간이다. 김 박사는 “온대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겨울 동안 아주 서서히 다음 해 피울 꽃을 준비한다. 저온이 없으면, 그러니까 추위를 겪지 못하면 꽃눈분화가 안 되고 열매가 안 열릴 수도 있다. 반드시 필요한 시간인데, 매실나무는 이 기간이 짧아서 꽃이 빨리 핀다”고 설명한다.

일찍 꽃이 펴서 불리한 점은, 앞서 책에 나온 내용의 반대라 할 수 있다. 꽃을 망치는 냉해의 위험은 늘고 곤충들이 돌아다니며 가루받이할 가능성은 낮다. 그해 겨울 기상 조건, 나무의 영양 조건, 품종의 특징 등에 따라 꽃의 발육은 달라지는데,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하면 ‘불완전화’의 발생이 많아진다. 씨방이 기형이거나 정상보다 암술이 작거나 하는 식으로 화기(꽃의 기관)를 갖추지 못한 것을 뜻한다. 실제로 매실은 다른 과수보다 ‘불완전화’의 발생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예쁜 꽃을 빨리 피우는 대가가 어째 만만하지 않아 보인다.

향은 달콤한데, 맛은 시다
큰 분류에서 보면 매실나무는 장미과(Rosaceae)에 속한다. 장미과 중에는 과일나무가 많다. 핵과인 매실‧살구‧자두를 포함해 배와 사과, 복숭아와 체리도 장미과에 들어간다. 김윤경 연구관은 “그중 향으로는 매화가 최고 아닐까 싶다. 진하고 달콤한 향이다. 매화는 꽃봉오리일 때 따서 씻은 후 냉동실에 넣어두거나 말려서 꽃차로 먹기도 한다. 꺼내서 뜨거운 차에 살짝 띄우면 꽃이 피는데 향이 참 좋다”고 설명한다.

홍매실 계통의 '남고'는 향과 맛이 좋고 익으면 붉은빛이 살짝 돈다. 사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권정현 농업연구사

향은 달콤한데 맛은 시다. 매실을 두고 “생식하지 않는다”고 흔히 말하는데, 달리 안 먹는 게 아니라 맛이 셔서 그렇다. 광양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의 박종수 팀장은 “익으면 맛이 나아지긴 하는데, 그래도 거의 아무 맛이 없다. 잘 익어 단맛이 강한 다른 과일에 비하면 별다른 맛이 없다는 뜻이다. 식감은 살구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은 핵과 과일의 특징인 것 같기도 하다. 요리를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작가이자 과학자인 해럴드 맥기는『음식과 요리』에서 핵과 과일을 이렇게 설명한다. “전분을 비축하지 않으며, 따라서 수확 후에는 말랑말랑해지고 향이 발달하기는 하지만 당도가 향상되지는 않는다.”

신맛이 센 건 완숙 직전의 덜 익은 매실을 뜻하는 청매(또는 청과)다. 노란빛을 띨 정도로 익으면 황매라고 한다. 잘 익어서 향이 강하지만 과육이 물러 유통이 어렵다. 박종수 팀장은 “지금까진 청매실이 많았지만, 갈수록 황매실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청매와 황매가 익은 정도를 말한다면, 익은 빛깔에 따라 계통을 나누기도 한다. 익어서 노란빛이 도는 품종은 청매실 계통, 붉은빛이 살짝 돌면 홍매실 계통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청매실 계통은 백가하, 홍매실 계통은 남고와 앵숙이 있다. 박종수 팀장은 “어림잡아 광양의 60%가 청매실 계통이고 40%는 홍매실 계통이다. 홍매실 계통 역시 늘어나는 추세다. 그중에는 남고 품종이 20%로 가장 많다”고 말한다. 향과 맛이 좋기 때문이다.

달고 아삭한 식감 vs 부드러운 과육과 강한 풍미

 

잘 익은 황매는 달콤한 향과 익은 매실 특유의 부드러운 신맛이 장점이다. 사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권정현 농업연구사

청매와 황매, 둘 중에는 어떤 걸 고르는 게 좋을까? 사실 익지 않아 열매 속 핵이 굳지 않은 풋매만 아니라면, 더 좋고 나쁜 건 없다. 핵심은 향과 맛, 식감 중에 어떤 것을 살리느냐에 있다. 채소를 사용한 발효식품과 요리를 선보이는 발효카페 ‘큔’의 김수향 대표는 “청매는 시원한 신맛과 단단한 과육이 장점이다. 황매는 달콤한 향과 익은 매실 특유의 부드러운 신맛, 부드러운 과육이 장점”이라고 설명한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에서는 황매를 소금에 절여 신맛 가득한 우메보시를 만들고, 한국에서는 신맛 강한 청매로 당 발효를 한다는 것이다. 김수향 대표는 “신맛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한국은 주로 당 발효를 하는데 이때는 청매가 적합하다. 발효 후에 나오는 수분 빠진 꼬들꼬들한 매실을 고추장에 담가 반찬으로 활용하는 한국의 맛있는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반면 일본은 매실을 통해 신맛과 산미료를 얻는 쪽에 집중한다. 섬나라인 일본에서는, 부패로 인한 식중독을 막아주는 역할로써 매실이 중요시되었기 때문이라는 게 김 대표의 의견이다.

어떻게 먹든 자유지만, 사실 매실의 매력은 신맛에 있다. 당 발효를 하더라도 특유의 새콤한 맛이 포인트다. 박종수 팀장은 매실을 먹는 이유를 “구연산을 먹기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매실 완숙과는 4~6% 정도의 구연산을 함유한다. 또 사과산, 수산도 포함돼 있다. 과실이 익을수록 구연산은 늘고 사과산은 준다. 권정현 농업연구사는 “신맛이 센 것은 사과산이다. 모두 영양 가치가 있지만, 구연산에 관한 연구가 더 많긴 하다”고 말한다. 가장 잘 알려진 구연산의 효능은 피로 해소, 그리고 소화불량과 위장장애 회복 등이다. 또 식중독 예방과 항균 효과, 그리고 변비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청매실 계통은 5월 하순~6월 상순에 출하한다. 사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권정현 농업연구사

자 그럼, 올해 매실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박종수 팀장은 “농협과 협의해 수매 날을 정하는데 올해는 5월 25일쯤으로 추측한다”고 말한다. 출하는 두 번에 나눠서 한다. 청매실 계통은 5월 하순~6월 상순에, 수확기가 늦은 홍매실 계통은 6월 중하순이다. 그나저나 5월 말에야 매실을 만날 수 있다니! 매실 이야기를 너무 빨리 꺼냈나 갑자기 불안하다. 별수 있나, 작년 매실을 먹으며 올해 매실을 기다리는 수밖에. 매화는 이미 졌고, 5월의 봄꽃을 보며 매실을 곁들인 피크닉을 하는 것(출하가 한참 남아 하는 말은 딱히 아니다)도 좋지 않을까? 가볍게 한두 잔 정도라면, 매실주도 아주 괜찮은 피크닉 친구다. 고백하자면 실제로 해봤는데, 매실주 향이 꽃 향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이야기가 있다. 정체 모를 꽃 사진을 권정현 농업연구사에게 메일로 보냈더니 “자두꽃”이라고 회신이 왔다. “자두꽃인데 살구꽃이라고 나온 것을 보면, 이미지 검색은 좀 더 개선이 필요해 보이네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물론 매실과 살구, 자두는 식물분류학적으로 가까운 종이지만…, 하여간 섣불리 꽃 이름 아는 척은 하지 말아야겠다.

도움말=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김윤경 연구관‧권정현 농업연구사‧광양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 박종수 팀장‧발효카페 큔 김수향 대표
참고서적=『농업기술길잡이 자두‧매실(개정판)』 『핵과류 GAP 영농기술서』 『매실 유기재배 매뉴얼』 『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 싶었어』 『음식과 요리』

이세라 쿠킹 객원기자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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