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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마리, 효자 되어 돌아왔다…尹이 번쩍 들어올린 대구의 부활[e슐랭 토크]

2억마리, 효자 되어 돌아왔다…尹이 번쩍 들어올린 대구의 부활[e슐랭 토크]

중앙일보

입력 2022.03.13 05:00

업데이트 2022.03.13 09:20

 

윤석열, 유세중 청년 어부에게 대구 선물 받아

제20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달 19일 경남 거제시.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유세 도중 대구를 번쩍 들어 올렸다. 거제 지역 청년 어부인 강모씨가 선물한 말린 대구였다. 대구는 거제를 상징하는 물고기(시어·市魚)다. 그만큼 대구는 거제 인근 지역에서는 중요한 생선으로 통한다.

윤석열 당선인이 지난달 19일 경남 거제 유세 도중 말린 대구를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이 대구는 이날 유세 현장에서 거제 청년 어부가 선물했다. 윤석열 당선인 페이스북

대구는 명태와 특수 관계다. 명태는 대구의 일종인 왕눈폴락대구로, 서로 사촌쯤 되는 어종이다. 대구는 입이 커서 대구(大口)라는 이름이 붙었고, 머리가 커서 대두어(大頭魚)라고도 한다. 대구는 차갑고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게 특징이다. 대구와 명태는 한때 국내 대표적인 어족자원이기도 했다.

대구는 남해 어민들에게 꽤 괜찮은 소득원으로 자리 잡았다. 약 40년간 복원 작업을 꾸준히 해온 덕분이다. 반면 서해에서는 남해와 달리 복원 자체가 쉽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 충남도가 하던 대구 수정란 방류 사업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대구 치어, 남해에 2억6100만 마리 방류

13일 경남도 수산자원연구소 등에 따르면 대구는 1980~1990년대만 해도 남해에서 어획량이 급감했다. 1년에 10마리도 잡히지 않을 때도 있어 1마리 값이 20만~30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가격이 치솟았다.

경남도 수산자원연구소는 1981년부터 수정란과 1㎝ 크기의 치어(稚魚)를 통영·거제·고성·남해·진해 등 남해에서 키웠다. 지금까지 방류한 수정란은 978억개, 치어는 2억6100만 마리 정도 된다. 올해도 지난 1월 한 달간 수정란 40억개와 치어 1800만여 마리를 바다에 풀어 놓았다. ‘육식성 대식가’로 알려진 대구는 몸길이 40∼110㎝, 최대 20㎏까지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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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외포 앞바다에서 전용돈(왼쪽)와 전민탁씨가 호망으로 잡은 대구를 보여주고 있다. 송봉근 기자

장기적인 노력 덕분에 남해 대구 어획량은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통영수협과 거제수협 등에 따르면 대구 위판량은 2019년 4만8660t에서 2020년 7만1513t, 지난해 7만5455t으로 늘었다. 경남도 김제홍 해양수산국장은 “대구는 지난 1월 거제 외포를 중심으로 진해만에서 하루 3000여 마리가 잡힐 정도로 어민에게 중요한 소득원이 됐다”고 말했다.

서해는 ‘대구 복원’ 사실상 실패 

반면 서해에서 대구 복원작업은 성과가 신통치 않다.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는 2019년 충남 최서단 격렬비열도 인근 해역에 대구 수정란 600만개(립)를 방류했다. 살아있는 대구에서 알을 짜낸 뒤 배 위에서 수정시켜 곧바로 방류하는 방식이었다. 수산자원연구소는 수정란이 부화한 뒤 3년이 지나면 포획 가능한 크기(60㎝)로 성장해 겨울철 서해 어민의 소득원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했다.

수정란을 만들기 위해 대구에서 알을 짜내고 있다.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수정란에서 성장한 대구를 포획했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 측은 “수정란 방류 지점이 육지에서 너무 먼 55㎞ 정도 떨어져 있어 복원이 쉽지 않은 환경”이라며 “향후 수정란 추가 방류 계획도 없다”고 했다.

서해 대구는 남·동해 대구와 성장과 번식 등 생태도 다소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평양에서 서식하는 남·동해 대구와 달리 서해 대구는 서해에 냉수대가 생성되며 들어왔다 갇힌 대구가 토착화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보령수협 위판 실적을 기준으로 할 때 충남도내 대구 생산량은 2007년 8478t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5년 2473t까지 떨어졌다. 2017년 3645t으로 회복되긴 했지만 2020년 1123t으로 다시 감소했다. 충남도 수산자원연구소 관계자는 “남획과 기후변화에 따른 먹이 부족 등으로 어획량이 떨어진 것 같다”며 “서해상에 자주 출몰하는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도 대구가 갈수록 줄고 있는 원인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 위판장에서 대구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거제도 등 남해에서는 대구가 많이 잡힌다. 송봉근 기자

지방 적은 대구, 버릴 게 없는 생선

대구는 지방이 적어서 비린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잘 먹는 생선이다. 해물탕 중에는 담백하고 맑게 끓인 대구백숙과 얼큰한 대구 매운탕이 가장 인기가 좋다. 명태나 마찬가지로 버리는 부분 없이 아가미·알·눈·껍질까지 모든 음식에 활용된다.

부산 지방의 명물 음식인 뽈국과 뽈찜도 대구 머리로 만든 음식이다. 머리가 커서 살이 꽤 붙어 있어 먹을 만하고, 뼈와 함께 끓여서 국물이 아주 시원하고 깔끔하다. 알과 아가미, 창자로는 젓갈을 담근다. 대구모젓은 아가미와 알을 소금에 절였다가 고춧가루·마늘·파·생강 등 양념과 함께 버무리고 때로는 무채를 절여서 섞어 삭혀서 먹는다.

거제시 장목면 외포항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는 대구탕. 중앙포토

대구 내장과 명태 내장을 절여서 양념을 넣고 버무려서 담근 창난젓도 있다. 대구를 말린 대구포는 오래전부터 만들어 온 가공식품으로 소금에 절였다가 등을 가른 뒤 펴서 말린 것으로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올린다. 예전에는 산후에 젖이 부족한 산모들이 영양 보충을 겸하여 먹었다. 윤석열 당선인이 선거 유세중 받은 말린 대구는 거제도 등 남해 어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거제시 장목면 김영삼 대통령 생가 앞 건어물 상가 등에서도 말린 대구를 판다.

대구, 美 메사추세츠주 의사당 나무에 걸려

한편 대구는 미국과 유럽에서 주요 식량이자 부를 쌓는 수단이었다. 보스턴에 있는 매사추세츠주 의사당 건물 입구에 나무로 조각한 대구가 걸려 있을 정도로 미국을 일으킨 생선으로도 꼽힌다. 미국인들 사이에선 “보스턴은 대구 때문에 탄생한 도시”라는 말도 있다.

바이킹이 콜럼버스보다 훨씬 더 먼저 뉴잉글랜드(아메리카)에 도착한 데도 대구의 역할이 컸다. 먼 거리를 항해하는 동안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말린 대구를 주식으로 삼아서다. 바스크족은 자신들만 아는 북아메리카 해안의 대구 황금어장에서 엄청난 수의 대구를 낚아 올렸으며, 소금 절임 대구를 유럽인들에게 판매해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지난 1월16일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 위판장에 올라온 거제도 앞바다에서 잡은 대구들. 송봉근 기자

신대륙 이주민, 대서양 대구 덕분에 생존 

1620년 영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도착한 사람들은 대구가 풍부한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정착했다. 1602년 영국의 항해가 바솔로뮤고스널드가 근처 해안에 있는 갈고리 모양의 곶에 케이프 코드(대구 곶)라는 이름을 붙이고 대구가 ‘들끓는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나그네들이 정착한 지 25년 만에 뉴잉글랜드인들은 삼각무역으로 방문하는 곳마다 돈을 벌었다.

당시 신대륙은 척박해 먹을거리가 부족했지만 이주민들은 대구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다. 대서양에서도 남획 때문에 대구가 급격히 줄어든 적이 있다. 이에 캐나다 정부는 1990년대 들어 뉴펀들랜드에 근해, 그랜드뱅크스, 세인트로렌스 만 해저 어업을 무기한 금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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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