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압도' 여론조사 왜 틀렸나…오판 원흉 '흰머리 청년' 정체
입력 2022.03.10 14:56
업데이트 2022.03.10 15:48
앞줄 왼쪽부터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김기현 원내대표, 이준석 대표, 정진석 의원이 지난 9일 오후 7시 30분 대선 투표 종료 직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개표 상황실에서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 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 초박빙 결과가 나오자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이 포착됐다. 국회사진기자단
“박빙 흐름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 못했기 때문에 출구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측근으로 불리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대선 승리가 확정된 직후인 10일 오전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처럼 말했다. 당초 여유 있게 승리할 것으로 봤지만 전날 오후 7시 30분 투표 종료 직후 발표된 지상파 출구조사 결과 윤 당선인(48.4%)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7.8%)의 격차가 불과 0.6%포인트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실제 최종 결과도 출구조사 예측과 거의 일치했다. 윤 당선인 48.56%, 이 후보 47.83%로 0.73%포인트 차이에 불과했다. 역대 대선 가운데 최소인 24만7077표 차이였다.
국민의힘이 개표 결과를 낙관했던 건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이른바 ‘깜깜이 기간’(3월 3일~8일) 이전에 발표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3~4%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몇 여론조사업체는 깜깜이 기간 동안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투표 종료 직후에 발표했는데 여기서도 윤 당선인은 여유있게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지난 7~8일 한국갤럽 조사에선 윤 당선인 46%, 이재명 후보 40%였다. 이 수치에 의견 유보층의 선택을 추정하고, 투표율을 가중하는 과정을 거쳐서 한국갤럽은 예상 득표율을 윤 당선인 52.0%, 이 후보 44.4%라고 발표했다. 같은 기간 미디어헤럴드-리얼미터 조사에선 윤 당선인 50.2%, 이 후보가 47.1%였다. 리얼미터는 이를 토대로 “윤석열 당선인은 48.4~52.0%, 이 후보는 45.3~48.9% 범위 내에서 득표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역대 대선에서 막판 여론조사가 이런 정도로 빗나간 건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이러한 민간업체의 조사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여의도연구원을 통한 국민의힘 자체 조사에선 깜깜이 기간 동안 “윤 당선인과 이 후보의 격차가 10%포인트 이상”이란 말이 나왔다. 권 의원이 출구조사 결과를 본 뒤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자체 조사 결과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출구조사, 어긋난 여론조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번 대선은 유독 여론조사 결과가 들쑥날쑥한 선거였다. 같은 업체가 한 조사도 하루 이틀 사이에 흐름이 휙휙 바뀌었다. 이번 대선 여론조사가 민심의 흐름을 정확히 읽는 데 실패한 이유는 뭘까.
업계 일각에서는 “예견된 참사”라는 말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여론조사업체 고위관계자는 응답자의 의도적인 ‘허위 답변’ 문제를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통신사로부터 가상번호를 받아서 여론조사를 할 때 연령대 정보를 받게 된다”며 “분명히 전화를 받은 가상번호의 주인은 60대로 표기돼 있는데 본인은 20대나 30대로 응답하는 경우가 적잖게 존재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흰머리 청년’을 자주 목격했다는 증언이다. 그런 과정에서 윤 당선인의 지지율이 과대 계산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응답자의 의도적인 왜곡까진 아니더라도 조사 과정에서의 ‘표집 오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응답 포기층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유독 그러한 왜곡이 심했던 것 같다”며 “선거 무관심층이나 투표 포기층으로 분류되던 부류가 막판에 투표에 참여하면서 이들의 표심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봤다. 이 관계자는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로 ‘이대녀’(20대 여성)를 꼽았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도 ‘이대남’(20대 남성)이 윤 당선인에게 58.7%의 표를 몰아주는 사이 이대녀는 이 후보에게 58% 표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대남에게 인기를 끈 윤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반(反)페미니즘 노선이 이대녀의 역결집을 이끌어낸 셈이다. 결과적으로 출구조사로만 봤을 때 20대 전체적으로 윤 당선인은 45.5%를 얻어 47.8%를 얻은 이 후보에게 근소하게 뒤졌다.
정치권에선 “결과적으로 ‘샤이 이재명’이 존재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지난해 4·7 재·보궐선거 이후 이번 대선까지 핵심 화두는 부동산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 내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그런 캠페인이 지속되자 야권에서조차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이 아닌 다른 정책으로) 수혜를 받는 계층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우려가 일부 나왔다. 게다가 수도권 집값이 정체 내지 하락 국면을 맞고, 여야 할 것 없이 초고가가 아닌 한 ‘1가구 1주택’에 관해선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일치된 목소리를 내면서 수도권 부동산 민심도 분화했다는 가설이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개표 상황실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국민의힘 내부에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막판 단일화가 역결집의 부작용만을 키운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단일화 효과에 대해선 윤 당선인 대선 캠프 내부에서도 “지지율 상승 효과보다는 기세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실제 단일화에 따른 야권 지지층 결집 효과와 여권 지지층 역결집 효과는 쉽게 비교하기 어렵다.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단일화에 따른 역결집 효과가 있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면서도 “문제는 결집 효과와 역결집 효과가 두 방향으로 모두 작용해 사실상 상쇄됐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큰 의미는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가 너무 늘어난 탓도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전화 면접 방식의 여론조사에서는 숙련된 면접원의 역할이 중요한데,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업체가 늘고 조사 자체도 늘면서 “면접원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업계에서 나오기도 했다.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너무 자주 하다 보니 제대로 된 여론조사 결과가 안 나온 영향도 크다고 본다”며 “무분별한 여론조사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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