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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문화

팔뚝만 한 게 팔딱! 1급 용천수로 키우는 ‘평창 송어’

팔뚝만 한 게 팔딱! 1급 용천수로 키우는 ‘평창 송어’

[강원 평창]
10~15도 찬물, 1급수에서만 살아
1965년 미국서 들여와 첫 양식
年 600여t 생산… 전국의 26%

입력 2022.02.21 03:00
 
지난 16일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한 송어 양식장에서 어부들이 송어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수조에 철제로 만들어진 별도의 그물을 설치해 송어를 가둔 뒤 뜰채로 다 큰 송어를 골라내 옆 수조로 던져서 옮기는 것이다. 송어가 마치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평창군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송어 양식을 시작한 곳이다. 전국 송어 생산량 중 약 30%가 평창에서 나온다. /오종찬 기자

지난 16일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한 송어 양식장. 가로 6m, 세로 25m의 거대한 수조 23개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수조마다 물레방아처럼 생긴 수차(水車)가 힘차게 돌면서 하얀 물보라를 일으켰다. 2대째 송어 양식을 하는 김재용(63)씨는 “수차가 돌면서 양식장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한다”고 했다. 수조 안엔 무지갯빛을 띠는 송어들이 회오리를 몰아치며 쉴 새 없이 헤엄치고 있었다. 김씨가 수조에 먹이를 뿌리자 어른 팔뚝만 한 송어들이 물 위로 힘차게 뛰어올라 순식간에 먹이를 낚아챘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성인 남성이 송어를 뜰채로 퍼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김씨는 “길이 40~50㎝, 무게 1.2㎏ 남짓한 송어를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면서 “부화 이후 1년 2개월가량 키워야 한다”고 했다.

◇송어의 ‘본고장’ 평창

평창군은 국내 최초로 송어 양식을 시작한 곳이다. 차디찬 용천수(땅에서 솟아나는 물)가 풍부해 송어 양식의 최적지다. 대관령을 품은 깨끗한 환경도 장점이다. 이곳에서 양식되는 송어는 ‘무지개송어’다. 몸통이 무지갯빛을 띤다 해 이름 붙여졌다. 연어목 연어과의 송어는 강에서 태어난 뒤 바다로 이동해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다시 강으로 돌아오는 회귀성 어종이다. 홍우석 강원도내수면자원센터 연구사는 “송어는 민물과 바닷물을 오가며 살 수 있지만, 평창에서 기르는 무지개송어는 민물에서 양식하는 민물고기”라고 했다.

국내 송어 양식은 1965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무지개송어 발안란(發眼卵·알의 발생 단계 중 눈이 보이는 시기) 1만개가 국내에 들어오며 시작됐다. 발안란은 곧장 강원 화천군 간동면에 자리한 강원도립송어양식장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송어 양식은 쉽지 않았다. 기술력이 부족했고, 서식 환경도 부적합했다. 1만 개의 알 중 부화에 성공한 송어는 겨우 15마리였다. 이후 연구를 거쳐 더 적합한 환경을 찾아 그해 10월 송어양식장은 평창으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국내 최초 송어 양식에 성공했다. 1968년엔 송어 알을 자체 생산하며 완전 양식 체제를 구축했다.

송어 양식장 어부들이 송어 선별 작업을 위해 수조에 철제 그물을 설치하는 모습. /오종찬 기자

평창에서의 송어 양식 성공은 차디찬 용천수와 깨끗한 환경 덕분이다. 송어는 냉수성 어종으로 10~15도 사이의 찬물과 조용한 환경에서 서식한다. 1급수가 아니면 살지 못하는 특성도 지녔다. 수온과 수질 등 물이 송어 양식의 성공을 좌우하는 셈이다. 미탄면에서 송어 양식을 하는 함준식(82)씨는 “송어는 수온이 너무 차갑거나 뜨거울 경우 성장 속도가 더뎌진다”면서 “그만큼 물이 중요한데 평창은 용천수가 풍부해 연간 15도 내외의 수온이 유지된다”고 했다.

평창군에선 2020년 626t의 송어를 생산했다. 전국 송어 생산량(2414t)의 약 26%에 달한다. 평창 경제에도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송어 양식으로 2019년 61억, 2020년 57억원의 수익을 거뒀다. 2017년엔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서 지역 대표 특산품으로 공인받았다. 안혜린 평창군농업기술센터 팀장은 “송어엔 치매 및 심혈관 예방에 좋은 오메가-3 지방산이 다량 함유돼 있다”면서 “고단백 저지방으로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고 했다.

송어 맛에 낯선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요리 개발도 하고 있다. 기존 송어 요리는 회와 매운탕 정도였다. 평창군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송어만두와 송어덮밥 등을 개발해 선보였다. 올림픽 기간 이 음식은 평창 지역 식당에서 판매되며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올림픽 이후에도 관광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짜릿한 손맛 송어축제도

평창에는 우리나라 대표 겨울 축제 중 하나인 송어축제가 있다. 매년 겨울 약 5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2007년 첫선을 보인 송어축제는 매년 12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진부면 오대천 일원에서 열린다. 관광객들은 꽁꽁 언 오대천에서 얼음구멍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짜릿한 손맛을 느낀다. 반바지를 입고 물속에 뛰어들어 맨손으로 송어를 잡기도 한다.

송어 덮밥 - 2018 평창 올림픽 당시 평창군이 개발한 송어 덮밥. /평창군

축제를 통한 경제적 효과는 상당하다. 평창군에 따르면 2019년 1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진행된 제13회 평창송어축제엔 44만명의 관광객이 찾아 282억원 상당의 경제효과를 가져왔다. 2020년 이후엔 코로나 여파로 축제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평창이 송어의 본고장임을 알리기 위해 송어 양식장이 많이 있는 미탄면의 한 도로에 ‘송어길’이란 이름도 붙였다. 진부면엔 98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송어의 형상을 닮은 평창송어종합공연체험장을 조성했다.

한왕기 평창군수는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송어 축제를 곧바로 재개할 것”이라며 “송어를 평창의 새로운 문화·관광 콘테츠로 육성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평창=정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