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푸른기운 살포시 ‘곤드레밥’...입안에 녹아드는 구수한 맛의 향연
[향토밥상] ① 강원 정선 ‘곤드레밥’
곤드레, 1970년대 주린배 달래준 나물 5~6월이 제철…데쳐 냉동보관해 사용
묵나물보단 생으로 먹어야 연하고 향긋 식이섬유·비타민A 등 풍부…소화 잘돼
돌솥에 밥 안치고 뜸들이기 직전에 올려 간장·막장 모두 넣어 비벼먹으면 맛 일품
밥상을 들여다보면 그 지역 삶을 엿볼 수 있다. 무엇이 많이 나는지, 또 어떤 재료를 조리해 먹었는지 우리네 부엌문화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밥상에선 선조들 지혜도 배울 수 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적은 식재료지만 어떻게든 식구들 배를 함께 채워야 했던 고민이 밥과 반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향토밥상’에선 예부터 즐겨 먹던 지역별 독특한 밥을 소개하는 한편 밥에 얽힌 사연과 함께 그 지역 밥상문화를 살펴본다.
강원 정선은 산세가 깊고 험해 벼농사가 쉽지 않았다. 지금처럼 영농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1970년대엔 부잣집도 흰 쌀밥을 마음껏 먹기 어려웠다. 삼시 세끼 챙기는 일이 걱정스럽던 시절, 지천에 자라는 산나물은 이곳 주민들에게 구황작물이나 다름없었는데 이게 바로 ‘곤드레’다. 이곳에선 산과 들에서 자란 곤드레를 뜯어다 쌀·보리 등을 섞어 죽을 쑤어 먹었는데, 곡식을 조금만 넣어도 식구 여럿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더이상 끼니 걱정을 하지 않게 된 지금은 쌀을 아낌없이 넣고 곤드레를 올려 죽 대신 밥을 지어 먹는다. 정선지역 향토음식으로 꼽히는 ‘곤드레밥’에 얽힌 사연이다.
곤드레는 ‘고려엉겅퀴’라고 불리는 국화과 여러해살이풀이다. 강원 정선·영월·평창과 충북 단양 등에서 많이 난다. 5∼6월이 제철이지만 수확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 제철에 잔뜩 수확해 삶아서 말려두고 일년 내내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7월이면 쇠어버려 생으로 먹기 어렵고 주로 데쳐 먹는다. 잎을 한번 뜯어내도 이내 새잎을 밀어 올린다. 어린잎은 쌈으로 먹거나 장아찌로 담가 먹는다. 갖은 양념을 더해 무쳐 먹거나 국·조림·찌개·찜 등에 넣어 먹는다. 말려뒀다가 먹는 ‘묵나물’이어도 식감이 부드럽고 향이 구수한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청정한 숲속에서 자라 건강한 식재료로 최근 인기가 높다.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칼슘과 비타민A 등 무기질이 들어 있다. 소화도 잘되는 편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널리 알려진 레시피는 곤드레밥이다. 밥을 지을 때 간한 곤드레를 넣어 만든다. 밥이 완성되면 간장이나 된장으로 만든 양념장을 넣고 비벼 먹는다.
정선군 정선읍 ‘동박골식당’은 대표적인 맛집이다. 창업주 이금자씨(64) 뒤를 이어 조카 며느리인 박미숙씨(60)가 30여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선 수확하자마자 데쳐서 냉동 보관한 곤드레를 사용한다. 돌솥에 밥을 안치고 끓이다 뜸을 들이기 직전 소금과 들기름에 무친 곤드레를 올린다. 예전엔 묵나물로 밥을 짓는 식당도 꽤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말리지 않은 것을 쓴다. 박씨는 “곤드레는 묵나물로 먹어도 좋지만 생으로 먹어야 더 연하고 향긋하다”며 “제철에 거둔 곤드레를 전부 데쳐 냉동 보관해두고 날마다 쓸 만큼 해동해 조리한다”고 설명했다.
곤드레밥 정식을 주문하면 밥과 함께 비벼 먹을 양념장으로 간장과 막장을 내놓는다. 강원도식 된장인 ‘막장’은 메주를 잘게 부순 후 보리와 고추씨 등을 섞어 볶은 장이다. 색이 일반 된장보다 훨씬 진하지만 생각보다 짜지 않다. 박씨는 식당을 찾은 다른 지역 손님에게 “곤드레밥에 막장과 간장을 모두 넣어 비벼 먹으면 건강에도 좋고 맛도 일품이다”고 귀띔했다.
시대가 바뀌었음은 밥상을 보면 알 수 있다. 보릿고개를 버티게 했던 ‘곤드레죽’이 이제는 ‘곤드레밥’이 되어 건강식이자 지역 별미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정선=지유리 기자 yuriji@nongmin.com, 사진=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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