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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삶

[삶과 추억] 명상·평화 가르친 인류의 영적 스승

[삶과 추억] 명상·평화 가르친 인류의 영적 스승

중앙일보

입력 2022.01.24 00:02

서구 사회에 생활 속 명상을 확산한 틱 낫한 스님. [중앙포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틱 낫한 스님이 21일 베트남 후에의 불교 사원에서 입적했다. 95세.

고인이 설립한 프랑스의 수도공동체 플럼 빌리지는 이날 스님의 입적을 알리면서 “틱 낫한 스님은 2014년부터 뇌출혈로 말하는 것이 어려웠고, 사람들과 소통할 때는 몸짓으로 했다”며 그간의 상황도 전했다.

고인은 1926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16세 때에 출가했다. 50년대에 선원을 세워 베트남 최초로 승려 교육 과정에 외국어와 서양 철학·과학을 도입했다. 베트남 전쟁이 가열되자 ‘행동하는 불교’ ‘사회 참여 불교’의 지도자로서 전란 피해자 구제와 평화 운동에 나섰다. 병원과 사회복지 청년학교, 불교 재단을 운영했으며 고아를 거두고 버려진 시신을 수습했다.

61년 미국에 가서 프린스턴대에서 공부했고, 코넬대와 컬럼비아대에서 강의도 했다. 베트남 전쟁 기간 세계 곳곳을 누비며 반전 평화 운동을 펼쳤다. 편지와 대화로 평화 운동에 대한 신념을 공유해온 미국의 마틴 루서 킹(1929~68년, 64년 노벨 평화상 수상) 목사의 추천으로 67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남베트남 사이공 당국의 탄압에 대한 저항 운동과 반전 평화 운동에 펼친 공로를 인정했다. 그런데 노벨평화상을 심사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66~67년 수상자를 뽑지 않았다.

그의 평화운동을 저지하려고 베트남 정부가 귀국을 명령하자 73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75년 북베트남 공산정권이 남베트남을 무력 점령해 통일을 이룬 뒤에는 보트피플 구제 사업을 펼쳤다. 그 뒤 망명 생활을 계속하다 2005년 비로소 귀국했다.

오랫동안 망명했던 프랑스에서도 난민 구제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82년에는 프랑스 보르도 인근에 수도공동체인 플럼 빌리지를 세워 불교에 국한하지 않고 명상과 힐링을 찾는 다양한 배경의 현대인에게 마음의 쉼터로 정착시켰다. 특히 서구인에게 불교식 명상의 현대적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오늘날 ‘마음 챙김’이라는 이름으로 심리적 안정과 편안함을 얻는 중요한 명상법을 보급해 대중에 자리 잡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행동하는 불교’ ‘사회 참여 불교’를 내세운 틱 낫한 스님이 2003년 3월 22일 방한 당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전쟁반대 평화염원대회에 참가한 모습. [중앙포토]

틱 낫한 스님은 2003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서울에서 전남 순천의 송광사로 버스로 이동하는데, 주최 측은 스님을 위해 따로 VIP용 승용차를 준비했다. 그러자 틱 낫한 스님은 “나는 함께 온 일행들과 움직이고 싶다”며 이를 사양하고, 대중과 함께 버스로 이동했다는 일화가 지금도 절집에서 회자한다. 그는 대중과 함께하는 일상생활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고자 했다.

틱 낫한 스님은 미국에서도 ‘그린 마운틴 수행원’을 세워서 일반인에게 명상을 전했다. 저술 활동도 활발해 『귀향』 『화』 『틱 낫한의 걷기 명상』 『부디 나를 참 이름으로 불러다오』 등 100권이 넘는 저서를 출간했으며 상당수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 틱 낫한 스님의 부고 기사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어록을 하나 소개했다.

“태어남과 죽음은 단지 개념일 뿐이다. 죽음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그들은 실제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진리의 자리는 오고 감이 없다고 가르친다. 태어남과 죽음도 바다 위에 일어나는 파도와 같다고 말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의 경지를 고스란히 드러낸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틱 낫한 스님의 열반 소식에 “스님의 족적과 어록, 가르침은 사람들의 실천 속에서 언제나 살아 숨 쉴 것”이라고 SNS에 애도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스님은 인류에 대한 사랑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신 실천하는 불교 운동가였다”며 “세계 곳곳을 누비며 반전·평화·인권 운동을 전개했고 난민들을 구제하는 활동도 활발히 했다”고 평가했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이지영 기자 vangog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