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가을 매미
입력 : 2021-09-03 22:53:33 수정 : 2021-09-03 22:53:32
숨이 턱턱 막히던 폭염이 끝나고 어느새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초입으로 향하고 있다. 한낮 무더위가 아직 심술을 부리지만 견딜 만하다. 아침저녁으론 제법 서늘한 가을 기운이 느껴진다. 집 주변 나무들에 매달려 목이 쉬도록 울어대던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많던 매미는 다 어디로 갔는지.
선선한 가을로 접어들면서 울지 않는 매미를 한선(寒蟬)이라고 한다. ‘한선’이란 말은 중국 동한 때 두밀(杜密)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유래했다. 그는 강직하고 청렴한 관리였다.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고 백성의 억울한 처지를 꼼꼼히 살폈다. 죄를 지으면 당시 권세가 막강하던 환관들도 봐주지 않았다. 재능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능력을 발휘하도록 조정에 천거했다. 동한의 유명한 경학자이자 교육가인 정현(鄭玄)도 두밀이 추천한 인물이었다. 그는 당대 대표적인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두밀은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낙향한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고을 군수에게 부패한 관리들 처벌을 요구했고, 유능한 인재를 찾아 천거하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두밀과 동향인 유승(劉勝)이란 사람도 비슷한 시기에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두밀과는 대조적이었다. 정사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고을 태수 왕욱(王昱)이 두밀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유승이 깨끗하고 훌륭한 선비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유승은 뛰어난 인재가 있어도 조정에 천거하지 않고, 잘못된 일을 보고도 추위에 떠는 매미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 대부라는 높은 벼슬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 ‘금약한선(噤若寒蟬)’이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가을 매미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걸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한국 언론이 ‘가을 매미’가 될 처지다. 여당이 폭주기관차처럼 밀어붙이는 ‘언론재갈법’ 탓이다. 진보와 보수,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반대 여론이 들불처럼 번져가니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을 뿐이다. 개정안이 끝내 국회 문턱을 넘는다면 언론은 꼼짝없이 입을 닫아야 할 판이다. 언론이 가을 매미 신세가 되는 나라에 희망과 미래가 있을까.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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