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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김순덕 칼럼]문재인 정부는 왜 다급한가

김순덕 대기자 입력 2020-11-26 03:00수정 2020-11-26 03:00

 

헌정사상 최초의 검찰총장 직무배제
국민이 모르는 정권비리 또 있는가
유신 말기 같은 광기와 무리수 넘쳐도
가만히 있는 문 대통령이 더 섬뜩하다

김순덕 대기자

집권세력이 뭔가 쫓기는 느낌이다. 곧 쓰나미가 닥친다는 예보에 미친 듯이 방파제를 쌓고, 비상발전기를 점검하고, 그러고도 두려워 버킷리스트까지 해치우는 분위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무정지시키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다음 날 국정조사와 총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집권당은 국가정보원의 대공(對共)수사권을 사실상 폐지하는 법안을 정보위 법안소위에서 저희들끼리 의결했다. 25일 야당 측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추천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집권당은 아예 거부권을 박탈해 연내 공수처를 출범시킬 태세다.

요 며칠 사이 문재인 정부가 강행한 일을 꿰어보면 계엄령 없는 계엄 상태로 가는 수순이다. 물리적 폭력만 안 보일 뿐 광기와 무리수, 속임수는 유신 독재 말기보다 덜하지 않다. 대통령 퇴임이 1년 반이나 남아 있어도 그들은 불안한 것이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이 지리멸렬한 건 고맙지만 친문 후계자 없이는 퇴임 후 안전을 믿을 수 없다. 윤석열의 치솟는 대선 후보 지지율은 현 정권을 응징해야 한다는 국민 여망을 반영한다. 문 대통령이 최근 치과 치료를 받은 것도 이런 고통 때문일 터다.

 

한 번도 경험 못한 이 나라에 철근 콘크리트를 박아 되돌릴 수 없게 만들려면 다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칭 민주개혁정부가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의 직무상 명줄을 끊은 건, 하루라도 빨리 윤석열을 찍어내지 않으면 안 될 정권 비리가 있는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들게 한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은 집권세력에 치명상을 안길 수 있다. 추미애가 공개를 결사반대했던 검찰 공소장엔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고 명시돼 있다. 문 대통령 30년 지기인 피고인 송철호의 당선을 위해 청와대 참모들이 대거 나섰다는 공소장이 맞는다면,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부를지 모른다. 조국 역시 “검찰이 집권 여당의 총선 패배를 예상하며 문 대통령의 탄핵을 위한 밑자락을 깐 것”이라며 탄핵 사안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원전 폐쇄 정책은 이보다 더 폭발성이 클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 윤건영 민주당 의원이 월성1호기 폐쇄 수사에 착수한 검찰을 향해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한 지 열흘 만에 집권세력이 윤석열 찍어내기에 본격 착수한 건 심상치 않다.

검찰의 울산 관련 공소장에는 문 대통령의 구체적 행위가 안 나온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사력을 다해 지켜낸 감사원의 원전 감사보고서는 대통령의 행위가 두 차례 적시돼 있다. ‘대통령이 월성1호기의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지 질문하였다’는 대목이다. 조성진 전 한국수력원자력 이사는 이적(利敵)행위라고 했다. 원전을 단종 사업으로 만들어 해외 수출도 못 하게 해놨다는 의미에서다.

그 정도면 차라리 낫겠다. 문 정권의 탈원전 단행은 단순히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 아니다. 북핵을 나날이 고도화하고 있는 김정은 앞에서 우리 핵개발 잠재력을 스스로 말살시킨 것과 다름없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원장을 지낸 싱크탱크 여시재도 최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 및 핵무장을 원하는 나라는 원전을 포기하기 어렵다”고 소개했다. 국민을 속여 가며 탈원전을 강행한 의도가 ‘무장해제’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국가 안보의 탈원전’이랄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김승규 국정원장은 일심회 간첩단 사건 수사 중 청와대 압력으로 사퇴를 해야 했다. 국정원이 대공·대정부전복 정보 수사를 못 하게 되면 일심회 후예들은 만세 부를 판이다.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북한 김여정에게 바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경찰에 대공수사와 국내 정보 업무를 이관하면 사냥개 같은 충성 경쟁으로 내년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2022년 대통령선거에 기여할 것이다. 문 대통령과 26일 만나는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을 성사시키면, 집권세력은 내년 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해도 발 뻗고 자는 게 가능해진다.

국민은 숨이 막히는 상황이다. 추미애가 윤석열 찍어내기를 보고해도 문 대통령이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판단 능력이 없어졌거나 누군가 써준 A4용지가 없으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은 아니길 바란다. 이 와중에 “사람 중심의 따뜻한 인공지능 시대를 열겠다”는 원고는 차라리 안 읽는 게 나았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