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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뉴스

우표로 본 오늘 06.19

우표로 본 오늘 06.19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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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 버마서 아웅산 수지 여사 석방 요구 시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버마의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가 19일 62세 생일을 맞은 가운데 지지자들이 수지 여사의 가택연금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수지 여사가 사실상 이끌고 있는 버마의 제 1 야당 민주주의 민족동맹 당원들과 지지자들은 오늘(19일) 당사에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풍선을 날리며 수지 여사의 석방을 촉구했습니다.

수지 여사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가 전세계 12개 나라에서 열렸거나 개최될 예정이며 미국에서만 300 여개의 행사가 준비돼 있습니다. 미국 의회 의원들의 모임인 인권 코커스는 오늘 수지 여사를 위한 특별 행사를 개최합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아세안의 국회의원들 모임인 아세안 IPMC 는 오늘 성명을 내고 수지여사에 대한 지지를 밝혔습니다. 이 의원모임은 또 아세안이 버마 군사정부에 정치개혁을 촉구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버마당국은 19일  지난 18년 세월의 대부분을 가택연금으로 보내고 있는 수지 여사의 랭군내 자택에 대한 경비를 강화했습니다. 버마 군사정부는 지난 5월 수지 여사의 가택연금을 해제하라는 국제사회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가택연금기간을 1년 더 연장했습니다.

수지 여사의 전화선은 끊겨있으며 사실상 외부인의 방문도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 민족동맹은 지난 1990년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으나 버마 군사정부는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07-06-19

http://www.voanews.com/korean/2007-06-19-voa10.c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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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 영국의 에드워드 왕자, 소피 라이스 존스와 결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막내아들 에드워드 왕자(Prince Edward, 1964~ )와 평민 출신 소피 라이스 존스(Rhys-Jones, Sophie, 1965~ )양이 1999년 6월 19일 오후 5시 윈저성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형 찰스-앤드루와는 달리 이날 결혼식은 왕실 가족잔치로 조촐하게 진행됐다. 여왕 부부 등 왕실 가족, 소피 친정 식구, 하콘 노르웨이 왕세자, 브루나이 술탄 등 각국 왕족, 캔터베리 대주교,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 영화배우 존 트래볼타, 가수 엘튼 존 등 560명만 식장에 들어갔다. 인근 주민 8000명은 윈저성 경내에서 혼례행진을 지켜봤다.

이날 에드워드 왕자는 소피를 위해 손수 디자인한 백진주와 흑진주를 섞어서 만든 목걸이를 결혼 선물로 준비했다. 결혼식은 금반지가 소피 손가락에 잘 들어가지 않아 에드워드가 쩔쩔 맨 해프닝을 제외하고는 45분간 순조롭게 진행됐다. 신랑 신부는 성당 회랑에서 첫 키스를 나눈 뒤, 군중들이 샴페인을 터트리며 환호하는 가운데 마차를 타고 피로연 장소인 윈저성으로 향했다. 여왕은 결혼식 직전 "에드워드를 웨섹스 백작(Earl of Wessex)에, 소피를 웨섹스 백작 부인(The Countess of Wessex)에 봉한다"고 발표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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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 유럽 10개국이 공동개발한 우주로켓 `아리안` 발사

실용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하여 유럽우주기구(ESA)가 개발한 로켓 '아리안(Ariane)'은 1973년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독일·영국 등 유럽우주기구 가맹 11개국이 개발한 3단식 액체연료 로켓으로서 1t의 위성을 정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

1979년 12월 1호기를, 1981년 12월 4호기를 쏘아 올림으로써 실험단계가 끝났고, 1982년부터 본격적으로 상업위성()을 띄우기 시작하였다. 그때까지 통신위성이나 기상위성 등의 상업위성은 미국의 독점물이었으나 아리안의 등장으로 경쟁시대에 돌입하였다. 2005년 2월 12일에는 아리안 5-ECA 발사에 성공하였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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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 -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고리 원자력 1호기 점화

고리 1호기 연혁 

1971.03.19  한국전력-웨스팅하우스(WH) 고리 1호기 건설계약 체결

1971.11.00  착공

1977.06.19  초임계(원자로 점화, 핵분열 시작)

1978.04.29  상업가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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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 제1회 세계 여성대회 열려

1975년 6월 19일, ‘평등·발전·평화’를 캐치프레이즈로 한 제1회 세계 여성대회가 멕시코시티에서 열렸다.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해’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대회에는 반다라나이케 스리랑카 총리와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테레슈코바 등 세계 138개국에서 2000여명이나 되는 여성들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공통의 목표는 같았지만 국가마다 여성이 처한 상황이 달라 관심분야에 큰 편차를 보였다. 여성대회였음에도 35명의 대회 최고위직 중 여성은 사무총장이 유일할 정도로 주요직을 남성들이 차지한 것도 문제가 됐다. 특히 멕시코는 남성을 대표로 파견하고 그를 대회 의장으로 선출해 빈축을 샀다.

첫 대회인 탓에 눈에 띄는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세계 여성이 처음 한자리에 모였고 미스·미세스로 불리던 여성을 ‘미즈’로 통일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대회였다. 이후 5년마다 대륙을 달리해 대회가 열리고 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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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uari Boumedienne
 

1965 - 알제리, 군부쿠데타 발생

1965년 오늘, 알제리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쿠데타 주동자는 국방장관인 후아리 부메디엔(Houari Boumedienne)!
아흐메드 벤벨라 대통령을 쫓아내고 실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
쿠데타로 실각한 벤벨라는 알제리 독립 1년 뒤인 1963년 초대대통령으로 선출돼 범아프리카운동과 반식민주의 운동의 지도자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쿠데타에 성공한 부메디아는 혁명평의회를 구성해 주요 산업과 은행 등을 국유화하면서 급진사회주의 노선을 추진하고 1967년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이후 1978년 12월 숨질 때까지 알제리를 통치했다.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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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 쿠웨이트, 영국의 보호령(62년간)으로부터 독립

1961년 6월 19일 영국 정부는 보호령이었던 쿠웨이트의 완전한 독립을 승인했다. 쿠웨이트가 처음으로 유럽 강대국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세기말이다. 독일과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막기 위해 영국과 쿠웨이트는 1899년 영국에게 쿠웨이트의 외교권을 넘겨 준다는 내용의 조약을 맺었다. 1914년 영국-터키 전쟁이 일어나자 영국은 쿠웨이트에 보호령을 설치했다. 1923년에는 이라크와 북쪽 국경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1961년 쿠웨이트가 독립한 이후 아랍 연맹도 이를 승인했다. 그러나 1980년에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은 쿠웨이트의 안보를 위협했고, 1990년 쿠웨이트가 이라크군에게 점령당하자 미군이 이끄는 연합군이 이라크에 대한 공중폭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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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방한

1960년 오늘,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미국 대통령이 1박2일 일정으로 우리 나라에 왔다.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방한한 아이젠하워! 서울 시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정동에 있는 미국대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이젠하워는 이튿날 우리 국회에서 두 나라 사이의 협력를 강화하자고 연설했다. 아이젠하워는 미국이 공산 세력의 침략에 적극 대응할 것을 약속하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허정 과도정부 수반과 두 차례에 걸쳐 한미 고위회담도 가졌다. 이 회담에서 두 나라는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합의했다.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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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 로젠버그(Rosenberg) 부부 사형 집행

미국 전역이 매카시 선풍으로 이성을 잃고 있던 1953년 6월 19일, 미국의 전기기사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그의 부인 에설 로젠버그가 뉴욕주의 싱싱형무소에서 전기의자에 의한 사형에 처해졌다. 1944년부터 1945년 사이에 미국의 원자폭탄 제조비밀을 빼내 소련에 넘겼다는 것이 처형이유였다.
로젠버그는 35세였고 부인은 37세였다. 이들은 1951년 4월 5일 스파이 주모자와 적극적 협력자라는 죄명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이들 부부는 1950년 여름 간첩활동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아왔다. 공산당원이었던 로젠버그는 재판기간 내내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고, 간첩행위에 대한 물증도 없었지만 마녀사냥의 광기는 이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당시의 연방수사국장 에드거 후버는 이 사건을 `세기의 범죄`로 규정했고, 이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담당 판사 어빙 카우프먼은 "이들이 조국을 배반하고 소련에 원폭 기밀을 넘김으로 인류 역사가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사형선고는 세계의 여론을 들끓게 했다. 수많은 미국 시민을 비롯, 교황과 아인슈타인, 피카소, 사르트르, 러셀 등 세계의 지성들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며 구명운동을 펼쳤다.
사건의 진실은 이들이 처형된 지 44년이 지난 1997년 `워싱턴 포스트`지에 의해 밝혀졌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1943년부터 1946년까지 로젠버그를 50여차례나 비밀리에 만난 전 KGB 요원 알렉산더 페크리소프의 증언을 통해 로젠버그가 원폭 제조기밀을 소련에 넘기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증언에 따르면 로젠버그는 소련에 고급 산업정보를 제공한 스파이이긴 했지만 원폭 기밀은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로젠버그는 간첩이 아니라는 좌파의 주장도, 원폭기밀을 제공했다는 우파의 주장도 모두 거짓임이 입증된 셈이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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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회 총선거 기념, 1950.5.30
 

1950 - 제2대 국회 개원

1950년 오늘, 제2대 국회가 개원했다.
국회의장에 신익희씨, 부의장에는 장택상, 조봉암, 김동성씨가 선출됐다.
제2대 국회는 우리 나라 의정 사상 최초로 우리 손으로 만든 국회의원선거법에 의해 구성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제2대 국회의원 210명은 20일 전인 5월 30일 소선거구,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됐다.
무소속이 60%인 126석, 민주국민당과 대한국민당이 각각 24석을 차지했다.
2대 국회는 엿새 뒤 6.25전쟁이 일어나자 수도(首都)와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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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 발표

1946년 오늘,  미 군정청은 국립 서울종합대학교 설립안을 발표했다. 경성대학과 8개 관립전문학교, 사립학교인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를 통합해 서울대를 설립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설립안이 발표된 지 두 달 만인 8월 22일 9개 단과대학과 한 개의 대학원으로 구성된 우리 나라 최초의 국립종합대학인 서울대가 출범했다.
서울대학교는 1975년 서울 동숭동을 떠나 지금의 관악캠퍼스로 이전했다.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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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 미얀마의 정치가 아웅산 수지(Aung San Suu Kyi) 출생

아웅산 수지 [Aung San Suu Kyi, 1945.6.19~ ]

양곤에서 출생했다. 미얀마의 독립운동 지도자인 아웅산의 딸로 15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 등을 공부하였다. 1988년 4월에 귀국하여 국민들의 반독재시위에 참가하였고, 이어 9월에 민족민주연합(NLD)을 결성하여 민주화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내란을 선동하였다는 이유로 가택연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을 계속하여 1990년 5월 다당제 선거 실시의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총선거에서 NLD가 친군부세력인 민족통일당(NUP)을 물리치고 압승을 거두었다.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1995년 7월 자택연금 해제 이후 NLD의 사무총장으로 복귀하여 정치활동을 재개하였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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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 마리아나 해전서 일본군 참패
마리아나해전 - 제2차 세계대전 중 1944년 6월 북마리아나 제도 해역에서 미국 함대와 일본 함대 사이에 벌어졌던 해전.
사이판섬 상륙작전 지원을 위한 미국 기동부대와 마리아나 수비를 위해 파견된 일본의 제1기동함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미국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2월 이래 트럭(Truk) ·사이판 ·팔라우(Palau) 방면의 일본군 기지를 항공기로 급습하였으며, 6월 11일 마리아나 해역에 출동하여 공습을 반복한 끝에 15일에는 3개사단의 병력을 투입하여 사이판섬에 상륙을 개시하였다. 일본은 항공모함 9척, 전함 5척을 기간으로 한 제1기동대가 필리핀으로부터 출동하여 19일 스프루안스 대장 지휘하의 항공모함 15척을 기간으로 한 4군(群)의 미국 기동부대와 사이판섬 앞바다에서 2일간의 격전을 벌였다. 그 결과 일본군은 3척의 항공모함이 격침됨으로써 일본의 연합함대는 큰 타격을 받았고 사이판 ·티니안 ·괌 등의 섬들이 미군 점령하에 들어가 B29에 의한 일본 본토 폭격의 기지가 되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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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ter Pan Statue, London

1937 - 영국의 소설가, 극작가 배리(Barrie, James) 사망 
배리 [Barrie, James Matthew, 1860.5.9~1937.6.19]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였던 ‘피터팬’의 저자 제임스 배리가 1937년 6월 19일 사망했다. 1860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배리는 에든버리대학을 졸업한 후 신문기자 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소설을 쓰기도 했으나 곧 연극에 흥미를 갖게 돼 이후 많은 희곡을 남겼다.
이런 그를 단연 최고의 극작가 반열에 세운 것이 ‘피터팬’이다. 1902년 씌어진 ‘작은 백조’라는 소설에 입각해 5막짜리 희곡 ‘피터팬’을 썼는데 이것이 1904년 처음 무대에 상연된 후 100년 동안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된 것이다. 아기들이 하나씩 태어날 때마다 요정이 하나씩 태어난다는 깜찍한 발상, 행복한 생각을 하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고 피터 팬처럼 세상의 악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은 현실의 고통과 하루하루 싸우며 살아가야 하는 오늘날의 어른들에게도 작지 않은 위안을 준다.
그러나 정작 ‘영원히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팬은 희망과 즐거움만이 아닌 절망과 슬픔도 상징한다. 피터팬이 영원히 느낄 수 없는 엄마의 품과 가족 간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작가 자신의 어두운 성장 배경이 반영된 것으로 그는 어린시절 죽은 형과 자신을 비교하는 어머니에게서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고 한다. 즉, 작가 자신이 ‘영원히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팬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그는 키가 150cm도 되지 않는 단신이었다고 하니, 그 자신이 피터팬이 되어 영원히 자라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였을까.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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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식 '백악춘효도'

 

1918 - 화가 안중식(安中植) 등 '서화협회(書畵協會)' 창설

이런 배경 속에서 서화협회가 탄생했는데 『서화협회회보』(1921)에 의하면 1918년 5월 19일 경성 장교정(지금의 청계천) 8번지 김진옥의 집에서 고희동의 주동으로 13명이 발기했고, 6월 16일 창립총회에서 안중식을 회장에, 고희동을 총무에, 김균정을 간사에 선출했으며, 회칙을 만든 후 18인의 정회원을 상호 추천하기로 했다.
협회가 제대로 갖추어진 것은 1921년이었다. 1919년 3·1운동에 많은 회원이 참여했고, 그해 11월 2일에 아중식이 타계했으며, 1920년 11월 31일에는 2대 회장 조석진마저 타계하자 협회 운영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서화협회에는 후원인단이 있었고 여기에 당시 최고 서예가이며 개화사상가인 김가진, 김윤식, 박기양, 이완용 등이 속해 있었다.
협회는 기관지이자 우리나라 최초 미술잡지라고 할 수 있는 20여 쪽의 『서화협회회보』를 소개했지만 2회에 걸쳐 발행했을 뿐이다. /www.artjemma.com /Google

(6월 16일인지 19일인지 더 확인해봐야 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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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 영국 하원, 부인 참정권 승인

영국에서는 프랑스의 여성운동가 구즈의 영향을 받은 M.울스턴크래프트가 《여성의 권리옹호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를 펴서 여성운동의 사상적 근거를 밝힘으로써 여권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R.오언 등도 남녀동권을 주장하였지만, 특히 J.S.밀의 《여성의 종속 The Subjection of Women》은 여성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97년 ‘여성참정권협회국민동맹(National Union of Women’s Suffrage Societies)’이라는 단체가 설립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하원()에서 여성참정권을 목적으로 하는 입헌운동이 진행되었다. 1903년에는 E.팽크허스트를 중심으로 ‘여성사회정치동맹(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이 결성되어 1918년 국민대표법의 성립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영국의회의 여성참정권 성립은 그 후 세계 각국에 영향을 끼쳤고, 영국의회주의도 내실을 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 법률에 의한 여성의 선거권은 남성선거권에 비해 상당한 제한이 있는 것이었으며, 1928년에 이르러서야 전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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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 - 미국의 프로 야구선수 루 게릭("Lou" Gehrig, Henry Louis) 출생

루 게릭 ["Lou" Gehrig, Henry Louis, 1903.6.19~1941.6.2]

뉴욕에서 태어났다. 뉴욕 양키스팀의 1루수이며, 4번 타자로서, 3번 타자인 B.루스와 함께 백만 불짜리 타선이라는 평을 받았다. 게릭은 양키스팀에 들어가기 전에 컬럼비아대학에 다녔으며 1925년 6월~1939년 4월까지 2,130게임 연속 출전이라는 메이저리그 최고기록을 세워 ‘철인’이라고도 하였다.

1931년 한 시즌에 184타점이라는 아메리칸리그 신기록을 세웠으며, 홈런 493, 만루 홈런 23, 종신 타격률 0.341, 최고 수훈선수 표창 2회, 1934년 메이저리그 3관왕 등의 기록을 세웠다.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으로 사망하였다. 1939년 ‘야구 전당’에 흉상이 건립되었고, 양키스 구단은 그의 공로를 기려 등번호 4번을 비워두고 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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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 - 프랑스가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 뉴욕시에 인도

미국 뉴욕항의 리버티섬에 세워진 거대한 여신상. 원래는 '자유는 세계를 비친다(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로 불렸다. 프랑스 국민이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서 기증한 것으로, 1875년에 조직되었던 프랑스·아메리카연맹이 기금을 모금하고, 프레데리크-오귀스트 바르톨디(Frederic-Auguste Bartholdi)가 동상의 고안을 맡았다. 두꺼운 동(銅)을 늘여서 만든 연판제(延板製) 동상으로 1884년 프랑스에서 완성하여 해체해서 미국으로 옮겨졌고, 1886년 10월 28일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의 주재로 헌정식을 하였다.
대좌석 위에 세워진 이 여신은 오른손에 횃불을 쳐들고,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의 날짜가 적힌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무게 225t, 횃불까지의 높이 약 46m, 대좌 높이 약 47.5m이다.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머리부분 가까이까지 오를 수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naver

 
 

1861 - 필리핀의 사상가, 저술가 리살(Rizal, Jose) 출생

 

 

1846 - 미국 뉴저지 주에서 최초의 야구 경기가 열리다 

 

 

1797 - 영국의 탐험가 흄(Hume, Hamilton) 출생

 

 

1783 - 미국의 초상화가 설리(Sully, Thomas) 출생


 

1782 - 프랑스의 사상가, 종교철학자 라므네(Lamennais, Felicite) 출생

 

 

1764 - 우루과이 독립의 아버지 아르티가스(Artigas, Jose Gervasio) 출생



1623 -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 파스칼(Pascal, Blaise) 출생


 

1566 - 영국 국왕 제임스 1세(James I)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