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로 본 오늘의 인물과 역사 7-3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 2) 3)
1) 1961 - 반공법 제정
1961년 7월 3일 법률 제643호로 반공법이 제정·공포되었다. 1948년 제정된 구국가보안법은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결국 1960년에 4·19혁명으로 폐지되었지만, 같은 해 6월 다시 새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다.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군사정부가 1961년에 반공법을 제정했다. 반공법은 정부를 전복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들 중 공산주의 계열의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단체를 처벌대상으로 했다.
이후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이 중복되는 점을 고려해 1980년 12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통합해 반공법을 폐지시켰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악용에 대한 끊이지 않는 논란으로 최근 국가보안법 역시 폐지가 거론되고 있다.
2) 1997 - 성수대교, 붕괴 2년 8개월 만에 재개통
성수대교붕괴사건 [聖水大橋崩壞事件]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가 붕괴되어 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1994년 10월 21일 아침 7시 40분께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 중간 다섯째와
여섯째 교각 사이의 상판 48m가 붕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붕괴사건으로 출근 및
등교길의 승객 32명이 죽고 17명이 부상했다.
교량 상판을 떠받치는 트러스(철제구조물)의 연결이음새의 용접이 제대로 되지 않고 10mm 이상이 돼야 하는
용접두께가 8mm밖에 되지 않았으며 강재 볼트 연결핀 등도 부실했던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또한 관리를 맡고 있는 서울시에서도 형식적인 안전점검과 관리를 소홀했고, 부식된 철제구조물에 대한
근본적인 보수 없이 녹슨 부분을 페인트로 칠하는 방법으로 위험을 숨겼다.
이 붕괴사건으로 공공시설에 대해 일제히 안전점검이 이루어졌고, 당산철교 등 부실 징후가 드러난
시설물은 사용을 중지하고 보강공사를 실시했다.
그 뒤 서울시는 1995년 4월 26일부터 기존의 성수대교를 헐어 내고 새 다리를 짓기 시작하여
사고발생 2년 8개월 만인 1997년 7월 3일 차량통행이 재개했다.
3) 1954 - 문교부, 한글 간소화안 발표
형태주의적(形態主義的)인 한글표기법을 구식 표기법인 형태음소주의적(形態音素主義的) 표기법으로 환원하려는 정부측의 기도에 대하여 재야학계에서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던 사건이 ‘한글파동’이다. 사건의 발단은 1949년 10월 9일
한글날에 당시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이 한글표기법의 까다롭고 어려움을 지적, 하루 속히 구철자법(舊綴字法)으로 개정할 것을 촉구하는 담화를 발표한 뒤 1953년 4월 이것이 국무회의에 상정되어 정부의 문서와 교과서 등에 쓰는 표기법은 이후 구철자법을 사용할 것을 결의하고 국무총리 훈령으로 시달됨으로써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국내 학술단체에서의 반발은 물론, 국회에서까지 들고 일어났으나 정부는 이에 개의치 않고 1954년 7월 문교부와 공보처의 공동명의로 표기법 간소화공동안을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이에 각계의 반대여론이 비등하여 마침내
1955년 9월 대통령 이승만이 반대 여론에 굴복하여 “민중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자유에 부치고자 한다”는
담화를 발표함으로써 2년 여를 끌어오던 한글간소화파동은 끝이 났다.
1) 2) 3)
1) 1974 - 홍수환,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 획득
1974년 7월 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홍수환 선수가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를 꺽고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 밸트를 차지했다. 이때 그가 유행시킨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한국 최초로
두 체급에서 세계챔피언을 지낸 그는 이름뒤에 '씨'字보다는 여전히 '선수'字가 어울릴 것같은 영원한 권투선수다.
1980년 12월 염동균과의 라이벌전을 끝으로 링을 떠났다. 홍씨는 두번이나 세계타이틀(74,77년)을 차지했지만
단명 세계챔피언이었다. 두번 다 2차방어전에서 무너졌기 때문이다.
2) 1908 - 미국 소설가 해리스(Harris, Joel) 사망
해리스 [Harris, Joel Chandler, 1848.12.9~1908.7.3]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남부 조지아주(州) 이턴턴 출생. 신문기자를 거쳐 1876년 《애틀랜타 콘스티튜션》의 편집원을 지냈으나, 1876년부터
흑인의 민화(民話)에서 취재한 동화(童話), 남부의 농원을 배경으로 한 방언(方言)을 구사하여 엮어낸 이야기책이 크게 호평받았다. 즉, 흑인노예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동화로 1880년의 소품집 《리머스 아저씨의 노래와 이야기》, 1883년의 《리머스 아저씨의 야화(夜話)》, 1892년의 《리머스 아저씨와 친구》, 1895년의 《가정에서의 토끼》,
1906년의 《리머스 아저씨와 토끼》 등이다.
그 밖에도 조지아주의 상류사회, 가난한 백인, 이전에 노예였던 흑인들을 선명한 필치로, 또한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작품들이 많은데 모두 남부의 지방색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3) 1962 - 아데나워 서독 총리, 프랑스 방문
1962년 오늘, 콘라드 아데나워(Konrad Adenauer) 서독 총리가 프랑스를 공식 방문한다. 아데나워 총리는 파리의
개선문에 있는 프랑스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하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아데나워 서독총리의 프랑스 방문을 놓고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두 번에 걸쳐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과거사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데나워 총리의 프랑스 방문을 전후해 프랑스와 서독 두 나라는 EC, 즉 유럽공동체 창설을 주도하게 된다.
아데나워 서독 총리는 1944년 히틀러 암살사건에 연루돼 게슈타포에게 체포됐다가 살아남아 1949년 국회의원 당선에
이어 서독 정부의 초대 총리에 취임했다. 아데나워는 1963년 10월 총리직에서 물러나기까지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서독의 경제부흥을 이룩했다.
1) 2) 3)
1) 1979 - 한국종합전시장(KOEX) 개장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한국종합무역센터 내에 있는 종합전시관으로 각종 전시회, 국제회의 등을 개최하는
장소이다. 교통과 통신, 첨단 비즈니스 인프라를 두루 갖춘 글로벌 비즈니스의 메카이자 아시아 최고의 전시·문화·관광의 명소로서, 국제 무역과 문화 교류의 장을 마련할 목적으로 1979년 3월 개관한 한국 최대의 종합전시관이다.
운영 및 관리는 코엑스(주)가 맡고 있다.
총 1만 1000평(연면적 13만여 평) 규모로, 지상 4층, 지하 4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2개의 전문 전시실과 7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컨벤션홀을 비롯해 61개의 회의실을 갖추고 있다. 또 국제 비즈니스를 위한 종합적인 지원체제를
갖추고 연간 150여 회의 전문 전시회, 각종 국제회의와 이벤트를 개최하는 한편, 해외 유수의 바이어와
국내 수출입업체를 직접 연결시키는 등 교역 증대 역할도 한다.
주요 시설은 크게 전시장과 컨벤션센터 회의실로 구분되며, 전시실은 다시 태평양홀·대서양홀·인도양홀·컨벤션홀로
세분된다. 태평양홀은 전시장 1층에 있는데, 규모는 3136평으로, 종합전시회·전문전시회, 대규모 집회,
각종 이벤트 등이 열리며, 520개의 부스를 갖추고 있다.
2) 1950 - 맥아더사령부, 미국 해병대에 한국출동령
3) 1971 - 미국의 가수, 작곡가 모리슨(Morrison, Jim) 사망
모리슨 [Morrison, Jim, 1943.12.8~1971.7.3]
본명은 James Douglas Morrison.
미국의 작곡가 겸 가수.
해군 소장의 아들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교(UCLA)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그는 그곳에서 레이 맨자렉, 로비 크리거, 존 덴스모어를 만나 사이키델릭(psychedelic) 록 그룹인 도어스(the Doors)를 결성했다. 도어스란 이름은 헉슬리의 작품 〈인식의 문 The Doors of Perception〉(1954)에서 따온 것이다. 모리슨이 신들린 듯한 목소리로 부른 〈라이트 마이 파이어 Light My Fire〉·〈헬로 아이 러브 유 Hello I Love You〉 등으로 도어스는 1960년대 가장 유명한 밴드가 되었다.
모리슨은 연주 활동 중에 마약복용과 무대에서의 난폭한 행위, 그리고 외설적인 노출 등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1971년 그는 시를 쓰기 위해 도어스를 떠나 파리로 갔는데 그곳에서 심장마비로 27세의 나이에 죽었다.
이로 인해 그는 1960년대 청년문화의 비극적인 상징이 되었다.
1972 - 인도-파키스탄 '심라 평화협정' 발표
1972년 오늘! 인도와 파키스탄의 두 정상이 '심라 평화협정’에 조인했다고 발표한다. 인디라 간디 총리와 파키스탄의
줄피카르 부토 대통령(Zulfiqar Bhutto)은 인도 북서부의 휴양지 심라(Shimla)에서 전날 밤 늦게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이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조인식을 서둘러 시작하느라 식장의 커튼을 뜯어내려 테이블보로 쓰고 간디 총리는 바로 옆에서 취재하던 기자에게 펜을 빌려 서명했다. 이로써 25년 동안 끌어 온 두 나라의 적대관계가 해소된다.
1년 전인 1971년 3월 동파키스탄의 벵골인 독립주의자들이 방글라데시공화국 독립을 선포한 데 대해 파키스탄군이
유혈진압에 나서자 인도가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지지하며 내전지역에 군대를 파견했다. 방글라데시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이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두 나라의 전쟁은 같은 해인 71년 12월 16일 파키스탄의 항복에 이어
다음 날 휴전에 들어갔다. 두 나라는 이듬해 오늘 발표한 '심라 평화협정'에서 서로 주권을 존중하고
내정간섭하지 않으며 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벌이기로 약속했다.
1928 - 영국의 베어드, 런던에서 첫 TV 방영
베어드는 1922년부터 니프코의 원리를 이용한 텔레비전 제작에 착수했다. 1924년 2월 정지된 물체의 윤곽을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1925년에는 사람의 얼굴을 겨우 알아볼 수 있는 TV를 개발했다. 운동하는 사물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텔레비전은 1926년 1월 26일 공개실험에 성공했다.
베어드는 이후 한동안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했다. 그가 설립한 BTDC(Baird Television Development Company)는 1928년 런던과 뉴욕 간 최초 TV 중계에 성공했다. 또 영국 BBC 방송은 1929년부터 베어드 방식의 TV 방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베어드가 만든 TV 수상기가 조금씩 팔리기 시작할 무렵 전자식 TV가 등장했다. 순식간에 기계식 TV는 낡은
유물로 전락했다. BBC도 1937년 베어드의 기계식 TV를 버리고 마르코니의 전자식 TV를 채택했다.
베어드는 TV 사업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에 나섰다. 그는 소규모 극장에서 영화상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고해상도TV(HDTV)를 개발했다. 1941년 주사선 600개의 컬러TV를 공개했고, 1944년에는 주사선 1000개 이상의 고화질 컬러TV를 채택하도록 영국 정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그의 연구 성과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당시 상황 속에서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베어드는 말년에 자신이 개발한 고해상도TV를 가지고 런던과 파리 등을 순회하며 시연회를 가졌다. 그러나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1946년 심장마비로 숨졌다. 베어드의 기계식 TV는 현재 런던 과학박물관에 전시품으로 남았다.
(김민구 기자, 주간조선 2006-03-13)
베어드 [Baird, John Logie, 1888.8.13~1946.6.14]
영국의 텔레비전 발명가·전기공학자. 스코틀랜드 헬렌스버그 출생. 목사의 아들로 공업전문학교를 거쳐 글래스고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병약한 탓으로 전기 기술자직을 그만두고, 1922년부터 텔레비전의 발명에 몰두, 1926년 최초로 공개시험에 성공하였다. 그가 창설한 베어드 텔레비전 개발회사에 의하여 1929년에 처음으로 BBC 방송이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였다.
베어드의 주사방식(走査方式)은 기계식이었으나 얼마 후 전자식으로 바뀌었다. 1927년에는 적외선을 이용하여
어둠 속에서 상(像)을 송신할 수 있는 녹토비저(noctovisor)를 발명하였다.
1973 - 불국사(佛國寺) 복원공사 완료
불국사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대규모의 개수공사를 실시하여 다보탑의 해체보수, 법당의 중수 등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다보탑 속에 있던 사리장치(舍利藏置)가 행방불명되었고 공사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8 ·15광복 후인
1966년 석가탑의 해체복원 등 부분적 보수가 있었다가 1969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구성되고 1970년 2월 공사에 착수, 1973년 6월 대역사(大役事)를 끝마쳤다. 이 공사로 유지(遣址)만 남아 있던 무설전 ·관음전 ·비로전 ·경루(經樓)
회랑(廻廊) 등이 복원되었고, 대웅전 ·극락전 ·범영루(泛影樓) ·자하문(紫霞門) 등이 새롭게 단장되었다.
1973 - 포항제철 준공
1973년 오늘, 포항제철이 준공됐다. 착공한 지 3년 3개월 만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인 천2백억 원을 들여
만들었다. 제선,제강공장 등 10개 단위 공장과 12개의 부대시설을 거느렸다. 단일 사업체로서는 우리 나라 최대규모였다.
포항제철은 3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의 3대 목표 가운데 하나인 중화학공업 건설의 중추역할을 떠맡게 됐다. 이에 따라 포항제철은 73년 1기 설비 준공 이후 생산설비 확장을 계속 추진해 나간다. 1976년 5월 2기 설비, 78년 12월 3기 설비,
83년 5월 4기 2차 설비 준공으로 9백10만 톤의 조강 능력을 확보한다.
포항제철이 1987년 준공한 광양제철소는 천백80만 톤 규모의 조강능력을 지녔다.
포항제철은 조강 능력 기준으로 세계 1위의 철강회사로 발돋움하고 2000년에는 민영화됐다.
포항제철(POSCO) 연혁
1968-11-12 박정희 대통령 포철현장 방문(13차례 방문 중 첫번째)
1969-01-15 제철연수원 현판식
1970-04-01 1기 설비 착공식
1970-06-23 중후판공장 설비공급 계약체결
1970-09-19 열연공장 설비공급 계약체결
1972-10-03 첫 열연제춤 출하, 박태준 사장 첫 제품에 "피와 땀의 결정" 휘호
1972-11-19 제품 해외수출 시작, 후판제품 7,400톤을 미국과 대만에 수출
1973-06-08 제선공장 준공식 및 용광로(고로) 화입식
1973-06-09 용광로(1고로) 쇳물 출선 시작
1973-07-03 1기 설비 종합준공식
1973-12-01 2기 설비 종합착공식
1974-10-21 직업훈련원 개소 및 1기생 입소식
1975-11-29 1억불 수출의 탑 수상
1978-12-08 3기 설비 종합준공식
1979-02-01 4기 설비 종합착공식
1979-09-27 4본주 입주식
1981-02-18 4기 설비 종합준공식(조강 연산 850만톤 규모)
1981-09-01 4기 2차 설비 착공식
1983-05-25 4기 2차 설비 종합준공식 - museum.posco.co.kr /Google
1971 - 한국-모리셔스 국교 수립
모리셔스(Mauritius)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 한국과는 1971년, 북한과는 1973년에 수교하였다.
1973년 총리 람굴람, 1985년 총리 야그노스, 1998년 8월 예술문화부 장관 상망킨이 방한하였다.
1979년 어업협정, 1996년 체육교류 협정, 1987년 문화협정을 체결하였다.
-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 (부산 김승제님 자료)
1962 - 미국의 영화배우 톰 크루즈(Cruise, Tom) 출생
크루즈 [Cruise, Tom, 1962.7.3~ ]
톰 크루즈(Thomas "Tom" Cruise Mapother IV, 1962년 7월 3일 ~ )는 미국의 배우이자 영화 제작자이다.
출연 영화
* 《탑건》* 《컬러 오브 머니》* 《영 건》
* 《레인 맨》* 《칵테일》* 《폭풍의 질주》* 《7월 4일생》
* 《어 퓨 굿 맨》* 《파 앤드 어웨이》* 《야망의 함정》
*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제리 맥과이어》* 《아이즈 와이드 셧》
* 《매그놀리아》* 《바닐라 스카이》* 《마이너리티 리포트》
* 《콜래트럴》* 《라스트 사무라이》* 《우주전쟁》* 《미션 임파서블 1,2,3》* 《작전명 발키리》
1961 - 박정희(朴正熙) 소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1961년 7월 3일 회의에서 최고회의의장 겸 내각수반인 장도영 중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최고회의의장에 부의장인 박정희 소령을 즉시 선출했다.
내각수반에는 현 국방부장관 송요찬씨를 임명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최고위원인 장도영 중장, 송찬호 준장, 박치옥 대령, 김제민 중령 등 4명의 최고위원직 사표를 수리하고 최고회의법 제4조1항을 개정하여 의장이 당임위원장을 겸임하도록 했다. 이로써 군사혁명내각의 수반이었던 장도영 중장은 지난 5월 20일 취임한지 44일 만에 최고회의의장 및
내각수반직을 사임케 된 것이다.
이날의 뉴욕타임즈는 '한국의 강자 표면에 나섰다'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박정희 소장이 반공한국의 스트롱맨으로 표면에 나섰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박 소장이 지금까지 이면에서만 권력을 행사했으나
당초의 혁명 목표와 반공 공약에는 아무런 변경도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고회의가 언제 민간에 정권을 이양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는 박소장 자신도 조속한 시일이라고만 말할 뿐이다. 너무도 적은 자원에 너무도
많은 생명들이 매달려 살아야 하는 남한의 운명은 지금 44세인 박정희 소장에게 달려있다.
1907 - 헤이그 밀사 사건, '대한매일신보' 통해 처음으로 국민에게 보도됨
1904 - 헝가리 태생의 유대인 작가 헤르츨(Herzl, Theodor) 사망
1900 - 멕시코의 비행사 사라비아(Sarabia, Francisco) 출생
1888 - 일본의 화가 무라카미 가가쿠[村上華岳] 출생
1883 - 체코 태생의 독일 작가 카프카(Kafka, Franz) 출생
1870 - 캐나다의 정치가 베넷(Richard Bedford Bennett) 출생
1854 -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곡가 야나체크(Janacek, Leos) 출생
1738 - 미국의 화가 코플리(Copley, John Singleton) 출생
1423 - 프랑스의 국왕 루이 11세(Louis XI)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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