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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뉴스

오늘의 우표와 사건 6-10 (2)

오늘의 우표와 사건   6-10 (2)



                       1)                                             2)                                         3)

 

1) 1934 - 영국의 인상파 작곡가 딜리어스(Delius, Frederick) 사망

딜리어스 [Delius, Frederick (Theodore Albert), 1862.1.29~1934.6.10]

본명은 프리츠 테오도어 알베르트(Fritz Theodore Albert)로, 요크셔주() 브래드퍼드에서 독일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기 위한 경영교육과 함께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이후 잭슨빌 근처의 솔라노그로브에 정착했고, 그 곳에서 오르간 연주자 토머스 F.워드(Thomas F. Ward)를 만나 함께 음악을 공부하면서

그 지방의 흑인들이 부르는 노래에 심취하기도 했다.
1884년경에는 미국에서 음악과 성악을 가르치면서 지내다가 1886년 라이프치히음악원(Leipzig Conservatory)에 들어가 바이올린 레슨을 다시 받고 작곡도 시작하여 1888년에 《플로리다 모음곡 The Florida Suite》을 작곡했다.

이 무렵에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를 만났고, 그후 두 사람은 평생 동안 우정을 나누었는데, 주로 나이 많은 그리그가 젊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1888년 파리로 건너가 퐁텐블로 부근의 그레쉬르루앙(Grez-sur-Loing)에 정착하여 죽을 때까지 그 곳에서 살았다.


2) 1903년 화가인 젤카 로장(Jelka Rosen)과 결혼했고, 이 즈음 그의 음악이 영국과 독일에서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었으나 1910년 시력을 잃고 반신불수가 되었다. 이후 현실의 열악한 조건을 이겨내며 작곡을 계속하던 중 1928년 그를 돕겠다는

요크셔 출신의 젊은 작곡가 에릭 펜비(Eric Fenby)를 만났으며, 펜비는 6년 동안 그의 집에 머물면서 그의 곡을 받아 적는 일을 맡았다. 펜비는 훗날 《내가 아는 딜리어스 Delius as I knew him》(1936)라는 책을 썼다.
감각적인 음악을 많이 작곡했으며, 때때로 '영국의 인상파 작곡가(English Impressionist)'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지휘자 토머스 비첨(Thomas Beecham)은 연주회에서나 리코딩을 통해 그의 음악을 널리 소개했다.

1929년에는 런던 퀸스홀에서 딜리어스음악제를 개최했는데, 그 자리에서 국왕 조지 5세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썰매타기 Sleigh Ride》(1888), 《이르멜린 Irmelin》(1890∼1892), 《강가의 여름밤 Summernight on the River》(1911), 《봄에 뻐꾸기의 첫소리를 듣고 on hearing the first Cuckoo in spring》(1912) 등이 있다.

 

3) 1910 - 미국의 블루스 가수, 작곡가 울프 (Wolf, Howlin') 출생

울프 [Wolf, Howlin', 1910.6.10~1976.1.10]

미시시피주() 웨스트포인트(West Point)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체스터 아서 버닛(Chester Arthur Burnett)이다.

목화농장에서 그 지역의 전통적인 블루스 노래들을 들으며 자랐다. 블루스 연주자 찰리 패턴(Charley Patton),

윌리 브라운(Willie Brown)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1930년대에는 미시시피주의 술집 등에서 노래를 불렀다. 
1940년대에 블루스의 전통이 강한 아칸소주로 옮겨 밴드를 구성했으며 기타와 하모니카로 직접 반주하면서 굵고 탁한

목소리로 박력있고 특색있는 노래를 불렀다. 1951년 프로듀서 샘 필립스(Sam Phillips)에게 발탁되어 《모닌 앳 미드나잇 Moanin' at Midnight》을 발표하였으며 이 곡이 히트한 뒤 1953년에 체스 레코드와 계약하고 시카고로 옮겼다.

사망할 때까지 시카고에서 활동했으며 어쿠스틱한 블루스 스타일을 도시의 청중들이 좋아하는 전기로 증폭된 스타일로

변형시켰다. 그밖의 대표곡으로는 《아이 에인트 수퍼스티셔스 I Ain't Superstitious》, 《더 레드 루스터 The Red Rooster》, 《쉐이크 포 미 Shake for Me》 등이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들어와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와 에릭 클랩턴(Eric Clapton) 등의 록스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시카고 블루스 양식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에 잠긴 듯한 가사,

거칠고 저돌적인 무대 행동으로도 유명하다. 199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로큰롤에

영향을 미친 자(early influence)' 부문에 올랐다.
 

1832 - 프랑스의 소설가, 저널리스트 발레스(Vallès, Jules) 출생

발레스 [Vallès, Jules-(Louis-Joseph), 1832.6.10~1885.2.14]

1867년 주간지 《거리[] La Rue》를 창간하였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이 시작된 뒤 위험인물로 지목되어

투옥되었다. 출옥하자 《인민의 외침 Le Cri du peuple》지()를 창간,

파리코뮌의 중요한 멤버로 활동하였고, 사형선고를 받고 런던으로 피신하였다.
1883년 귀국하여 《인민의 외침》을 다시 간행하였다. 주저로 《자크 뱅트라 Jacques Vingtras》라는

제목의 자전소설() 3부작과 《소년 L’Enfant》(1879) 《대학입학자격자 Le Bachelier》(1881)

《반도() L’Insurge》(1886) 등이 있다. 

- 공군사관학교 개교 50주년 기념, 1999.6.10 발행
 

1949 - 공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항공사관학교 개교

1949년 1월 14일 공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항공사관학교가 김포에서 창설되었으며 1949년 6월 10일 제 1기 사관후보생

97명이 입교, 역사적인 개교를 맞이 하였다. 1949년 10월 1일 공군창설과 함께 공군사관학교로 개칭되어

공군의 간부를 양성, 배출하는 영원한 불사조의 요람으로 자리잡고 있다. - 문화관광부 e뮤지엄

http://www.emuseum.go.kr/museum/search_view.jsp?snum=PS01005070  

 

1949 - 노르웨이의 소설가 운세트(Undset, Sigrid) 사망

운세트 [Undset, Sigrid, 1882.5.20~1949.6.10]

아버지는 유명한 고고학자이며 어머니는 덴마크인이다. 처음에는 화가를 지망하였으나, 상업학교를 나와 사무원이 된 후

작가생활을 시작하였다. 처녀작 《마르타 울리 부인 Fru Marta Oulie》(1907)은 평범한 노동자와 결혼한 여자가 권태에서 간통을 범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일기체로 그린 작품이다.
《예니 Jenny》(1911)는 전기()의 대표작으로, 얌전하고 교양 있는 여자가 로마로 가서 이상적인 상대자 헤르게와

인연을 맺고, 귀국 후 시아버지에게 몸을 허락하여, 그 삼각관계를 괴로워하다가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솔직 대담하게

그린 것이다. 그뒤 나이가 훨씬 많은 화가와 결혼하고, 여성의 행복은 여성 해방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남편과 아이들과 가정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봄》(1914) 등의 작품을 썼다.

그러나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그런 괴로운 경험을 통해 작자는 인간의 비극성과 종교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떨친 두 대작이 나오게 되었다. 3부작인 《라브란스가()의 딸 크리스틴 Kristin Lavransdatter》(1920∼1922)과 4부작인 《올라브 아이둔쇤 Olav Audunssøn》(1925∼1927)이 그것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종교뿐이라는 것이 그녀가 얻은 결론이었다. 그뒤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192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40년 독일군이 조국에 침입하자 미국으로 망명하고, 강연·라디오를 통하여 저항운동에

힘썼다. 그밖의 작품으로는 《도로테아 부인 Madame Dorothea》(1939) 《시에나의 카텔리나 Catelina av Siena》(1951) 등의 많은 작품이 있다.

 

1946 - 이탈리아, 공화제 선언

제2차 세계대전 말 전쟁에 패한 이탈리아는 새로운 정치체제가 필요, 국민주권의 원리에 입각한 헌법의회에 의해서

1946년 6월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동시에 행하여진 국민투표는 약 200만 표의 차로 공화제를 결정하였다. 헌법의회는 즉시 헌법기초에 착수하였으며, 1947년 12월 22일에 의결하였다. 이로써 1948년 군주제는 막을 내리고 공화제가 채택되었으며 이것이 현행 헌법이다. 헌법은 제1조에 ‘이탈리아 공화국은 노동에 기초를 두는 민주적 공화국이다’라고 정하고

사회국가()의 이념에 입각하는 것을 분명히 하였고, 많은 사회권을 정하였으며, 사유재산권의 사회적

기능을 지적하고 있다. 의회는 양원제를 취하며 정부의 각원()은 의회의 신임을 재직()의 조건으로 한다.

 

1926 - 6.10 만세운동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 순종의 장례식이 거행된 1926년 오늘!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 3백여 명이 운구행렬이 지나는 서울 종로 3가 단성사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천여 장의 격문을 살포했다.
을지로와 종로3가, 동대문, 청량리에서도 학생들이 교육·토지제도의 개혁, 일본제국주의 타도,

8시간 노동제 채택 등을 외치며 시위했다.
학생과 시민 수만 명이 이에 호응해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조선총독부는 서울에만도 경찰과 군인 7천여 명을 동원해 진압했다.
6.10만세사건으로 이날 하루 학생 천여 명이 체포됐다.
만세운동 후 순창,군산,울산,평양,홍성 등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의 동맹휴학이 이어졌다.

 

1880 -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 드랭(Derain, André) 출생

드랭 [Derain, André, 1880.6.10~1954.9.8]

파리 교외의 샤토 출생. 일찍이 회화와 기계에 취미를 느껴, 공과대학 입학준비를 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회화를 전공하였다. 처음에는 샤토에 살고 있던 M.de 블라맹크와 친교를 맺고 같은 아틀리에에서 제작하였다. 1905년 H.마티스와 알게 되어 그 해의 살롱 도톤에 출품, 가장 대담한 포비슴(Fauvism:야수파)의 화가로서 주목되었으나, 2∼3년 후에는 격정적 색채를 버리고 침정()한 색조로 바꿨으며, P.세잔과 흑인조각의 단순화된 형태와 긴밀한 구성에 마음이 이끌린 것이 큐비즘(Cubism:입체파)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이지적인 그의 기질이, 포브[]의 분방한 원색의 범람에서 궁극적으로 형태의 엄격함, 화면질서나 구성을 바라는 원래의 방향으로 전환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에도 이탈리아 근세 초기의 회화나 고딕 예술, 프랑스 옛 대가의 화풍 등에 심취하면서 독자적인 탐구를 계속하여, 전통을 현대로 계승시킨 신고전주의자로서의 위치를 확립하였다. 은근한 어두운 계통의 색채를 기조로 뚜렷한 명암과 오묘한 세부적인 잔손질로 화폭에 뛰어난 내면성과 청신한 현대감각을 담았다.

 

1926 - 에스파냐의 건축가 가우디(Gaudi y Cornet, Antonio) 사망

가우디 [Gaudi y Cornet, Antonio, 1852.6.25~1926.6.10]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린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1926년 6월 10일 저녁 기도를 하러 가다 전차에

치여 74세로 숨졌다. ‘금세기 최고의 건축가’로 평가받는 가우디가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르네상스시대의

메디치가문처럼 평생의 후원자 구엘을 만나면서였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가우디의 작품이 3개나 지정될 정도로 그의 건축은 독보적인 것이었지만 그중 2개 건축물에

후원자의 이름이 새겨질 만큼 40여년에 걸친 두 사람의 만남과 우정은 각별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가우디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120년 전인 1883년 착공했으나 난해한 설계로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는 바르셀로나의 성(聖)가족 대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때문이다.

옥수수 모양의 첨탑, 직선을 배제하고 곡선만 사용한 독특한 조형미…

사람들은 ‘신이 머물 지상의 유일한 공간’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조선

 

1922 - 미국의 뮤지컬 가수, 배우 갈런드(Garland, Judy) 출생

갈런드 [Garland, Judy, 1922.6.10~1969.6.22] 

미국의 포퓰러가수·여배우.

본명은 프란시스 에셀 검. 미네소타주 그랜드 래피즈 출생. 3세 때부터 무대에 섰으며(1939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출연하여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았다. 이 영화의 주제가인 《무지개의 저편에서》는 그녀의 테마 음악이 되었다.

연기와 노래에 뛰어나 뮤지컬·영화 등에서 활약하였다.
대표적인 주연 영화로는 《
부활절 퍼레이드 Easter Parade》(1942), 《스타 탄생》(1954) 등이 있다.

 

1921 -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 필립공(Philip, Duke of Edinburgh) 출생

필립공 [Philip, Duke of Edinburgh, 1921.6.10~ ]

그리스 왕실 출신. 어머니는 영국 빅토리아여왕의 증손()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국을 떠나 영국의 친척,

특히 마운트배튼 보호 아래 청년시절을 보내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국해군에서 근무하였다. 1947년 영국에

귀화하여 성()을 마운트배튼으로 바꾸고, 같은 해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에든버러공()이 되었다.

 

1907 -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 칼라사진방식을 발표

프랑스의 화학자 뤼미엘 형제(Auguste et Louis Lumière)가 1903년에 발명한 오토크롬 건판(乾板)이라는

칼라 사진방식을 1907년 6월 10일 발표했다. 적색,녹색,청색의 3색 필터로 피사체를 분해기록하고 현상후

3색 필터 스크린을 통하면 화상이 재현되는 것으로 1장의 건판에서 색의 분해, 합성이 모두 가능한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이는 고감도 흑백감광사진에 비해 60배정도의 노출시간이 필요하지만, 상업이나 예술에 널리 이용됐다. 류미엘 형제는 1895년 촬영기 겸 영사기도 개발해 '영화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다.

 

BC 323 -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 사망

알렉산드로스 대왕 [Alexandros the Great, BC 356.7~BC 323.6.10]

역사상 유례없는 세계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23년 6월 13일 원정지 바빌론에서 사망했다.

끊임없는 정신적-육체적 과로, 국사에 대한 엄청난 중압감, 장기간의 행군과 심각한 부상 등으로 원기가 소진되어 걸린

열병이 원인이었다. 만 33세가 되지 못한 나이였고 마케도니아 왕위에 오른 지 12년 8개월만의 일이었다.

동방원정 기간동안 1만 7,600킬로미터를 행군한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자 정복자였으며, 전술 및 전략의 새로운 준거를 확립한 지휘관이었다. 그의 정복으로 거대한 세계의 문은 활짝 열렸고 통합되었으며 헬레니즘 문화는 꽃을 피웠다. 기원전 356년 마케도니아 수도 펠라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는 부친인 필리포스 왕에게서 군사적 재능과 냉철한 합리주의를 이어받았으며 모친 올림피아스에게서는 신비주의, 낭만성, 격정적인 기질, 카리스마 등을 물려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는 지식에 대한 사랑, 특히 과학적 탐구와 의학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갑작스런 부친의 살해에 그가 부친의 왕국, 군대, 아시아 원정계획 그리고 코린트동맹군 지휘의 임무를 떠맡은 것은

그의 나이 약관 20세때였다. 동방 정복에 나선 이후로 단 한번도 전투에서 패하지 않은 그가 갖는 중요성은 단순히

군사적 천재성에만 머물지 않는다. 만민의 평등과 협조에 바탕을 둔 세계국가 이념이야말로 그의 업적이 갖는 진정한 역사적 의의라 할 수 있다. 젊고 자부심에 찬 정복자가 착안한 이 정치적 비전은 그가 사망하고

그의 제국이 사라진 후에도 지속되었으며 당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조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망일은 6월 10일로 옮겼습니다. ^.@)

 

알렉산드로스 트리토스 호 마케돈 대왕(Alexander the Great, Alexander the Macedonian, 기원전 356년 7월 말 - 기원전 323년 6월 10일), 필리포스의 왕위를 계승한 후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들 가운데 하나인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세운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으로서 그의 업적을 그려 대왕이라 받들며, 때로는 계승 서열에 따라 알렉산드로스 3세(Alexander III)라 일컫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영어의 영향으로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으로 더 많이 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슬람식 이름으로 이스칸달이라고도 한다.


 

1844 - 독일의 세계적인 동물원 경영자, 조련사 하겐베크(Hagenbeck, Carl) 출생

하겐베크 [Hagenbeck, Carl, 1844.6.10~1913.4.14]

함부르크 출생. 15세 무렵부터 아버지의 동물매매와 전시의 일을 도왔으며, 1866년 아버지의 직업을 계승하여 국제적인

규모로 발전시켰다. 1907년 함부르크 교외에 하겐베크동물원을 창설하였는데, 이른바 방사식()을 채용하여

동물 수용방법에 혁신을 가져왔다. 동물의 훈련에 특기를 가졌던 그는 서커스용 동물을 애정과 인내로 길들였으며,

그것을 애정훈련이라 칭하였다.

 

1832 - 독일의 기계기술자 오토(Otto, Nikolaus August) 출생

오토 [Otto, Nikolaus August, 1832.6.10~1891.1.26]

처음에는 쾰른의 신분이 낮은 상인이었으나, 1861년 프랑스 기술자 J.J.E.르누아르의 가솔린기관 성공에 자극받아 가솔린기관의 연구를 시작하였다. 대형 증기기관을 대신할 원동기로서 소규모 공장용 가솔린기관을 발명할 것을 결심하고, 1864년 E.랑겐과 함께 오토상회를 설립하였고,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가솔린기관은 르누아르 기관보다 고성능임이 증명되었다.

1872년 독일 가스발동기 제작회사를 설립하여 초대 사장이 되었고, 랑겐은 부사장에, G.다임러는 기사장이 되었다. 1877년 특허를 받은 4사이클식의 오토기관은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격찬을 받았다. 오토기관은 당시 산업의 원동력이었던 증기기관 대신 원동기로서 진출하기 시작하여 현대의 가솔린기관의 원형이 되었다.

 

1580 - 포르투갈의 시인 카몽(이)스(Camões, Luís de) 사망  

카몽(이)스 [Camões, Luís (Vaz) de, 1524~1580.6.10]

포르투갈의 시인으로 궁전에서 근무하였으나 전투에 출전하여 실명한 후, 옥중생활을 하고 인도에서 체류하는 등

기구한 삶을 살았다. 대표작에 애국적 대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가 있으며 서정시인으로서 소네트에도 뛰어났다.

리스본 출생. 학업을 위해 교육도시 코임브라에 1542년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앙 3세의 조정 근무 중 그 곳에서

만난 카타리나와 연애를 한 탓으로 궁전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 후 군인으로 1547년 북아프리카세우타로 출정, 무어인과의 전투에서 오른쪽 눈을 잃었다. 3년 후 리스본으로 돌아왔으나, 1552년 궁정에서의 결투죄로 체포되어 1년간의 옥중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후 인도로 건너가 오랫동안 인도와 중국에 체류하다가 1570년에야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만년에 빈곤과 병에 시달리다가 기구한 생애를 마쳤다.

그의 이름을 불후의 시인으로 만든 것은 서사시우스 루지아다스 Os Lusiadas》(1572)인데, 1545년부터 1570년까지

쓴 것이라 한다. 작자 자신의 체험을 살리고 인도항로의 발견과 바스쿠 다 가마의 제1회 원정을 주축으로 삼았으며,

또한 극적인 에피소드를 묘사하면서 포르투갈의 역사와 신화를 곁들여 그 국민의 영웅적 위업을 찬양한 애국적 대서사시이다. 그는 서사시인으로서는 로마베르길리우스와 비견되고, 서정시인으로서는 이탈리아페트라르카에 필적할 만한 시성()이다. 서정시소네트가 가장 뛰어났는데,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을 교묘하게 잘 표현하였다.

그 밖에 《주인역()》(1587) 등 3편의 희극이 있다.


 

1819 -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Courbet, Gustave) 출생

쿠르베 [Courbet, Gustave, 1819.6.10~1877.12.31]

스위스 국경 가까운 프랑슈콩테주 오르낭 출생. 1840년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연구를 위해 파리로 나왔으나 얼마 후 화가를 지망하여 화숙()에 다니며 회화습작에 몰두하는 한편 루브르미술관에서 에스파냐와 네덜란드파의 거장들의 작품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1844년 살롱에 출품하여 첫 입선을 하고, 1849년 《오르낭의 매장》에서는 이색적 화재를 인정받았으나 1850년의 《오르낭의 장례식》은 화단의 평론을 양분하는 물의를 일으켰다. 지나치게 실경() 묘사에 치우친 불경스런 희화()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돌 깨는 사람들》(1849),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노작 《화가의 아틀리에》에 이르러

더욱 두드러졌다. 이 작품의 출품을 거절당하자 몽테뉴가에 손수 가옥()을 짓고 입구에 ‘사실주의’라는 큰 간판을 걸고서, 이 작품을 비롯한 40여 점의 자작품을 전시하여 자신의 예술상 입장을 도전적으로 표명하였다.

그 후, 《센강변의 처녀들》(1856) 외에 많은 수렵도, 거치른 바다풍경, 나부() 등을 제작하였으나 1871년 파리코뮌 때, 나폴레옹 1세 동상의 파괴책임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 후 스위스로 망명하여 객사하였다. 그의 견고한 마티에르와 스케일이 큰 명쾌한 구성의 사실적 작풍은 19세기 후반의 젊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당시의 고전주의와 같은 이상화나 낭만주의적인 공상표현을 일체 배격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묘사할’ 것을 주장한 그의 사상적 입장은, 회화의 주제를 눈에 보이는 것에만 한정 혁신하고 일상생활에 대한 관찰의 밀도를 촉구한 점에서 미술사상 가장 큰 의의를 남긴 것이다.

대표작에 《나부와 앵무새》(1866) 《사슴의 은신처》(1866) 《샘[]》(1868) 《광란의 바다》(1876) 등이 있다.

 


 

그해,오늘무슨일이 총 67

 

 

2015구원왕리베라 아들도 MLB 마운드에 서

2015년 전몰군경 미망인회 19명 선정어머니들이 뽑은 장한 어머니

2005년 한미 정상회담(한국시간 611) 워싱턴서 개최

2004년 흑인 음악의 거장 레이 찰스 사망

2003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창립 50주년, 천안서 새역사 희년대회개최

2003년 미국항공우주국(NASA) 화성탐사선 스피릿(Spirit)’ 발사

2003`전설의 섬`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 완공

1999년 북한 경비정 6, 북방한계선(NLL) 침범

1999년 유고 연방군 코소보서 철군

1998년 제16회 프랑스월드컵 개막

1997년 한국 최초 프로권투 세계챔피언 김기수씨 별세

1996년 기아자동차 2인승 컨버터블 스포츠카 `엘란` 시판

1994년 전쟁기념관 개관

1993년 북한, 동해안에서 사정거리 1,000km 미사일발사실험 실시

1993년 경기도 연천 예비군 부대 폭발사고

1992년 아난 판야라춘, 태국 신임 총리에 선임

1991년 한국-루마니아, 뉴스교환협정 체결

1990년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에 당선

1989년 건설부, 일산 등 전국 22738만평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고시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서 노태우 대표위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

1987`610 민주화항쟁`

1985년 이스라엘군 3년만에 레바논 철수완료

1984년 비구니 12백여명, 영화 비구니 제작 중지 요구

1984년 미국 육군 요격기, 태평양 상공서 목표 미사일 격추

1984년 인도, 시크교 군인 무장 반란

1984년 미국 국방성 ICBM을 대기권 밖에서 파괴하는 실험성공 발표

1983년 중국항로, 한국비행구역 통과 허용 발표

1982년 독일의 영화감독 파스빈더 사망

1982년 이라크, 대 이란전에 일방적 휴전 선언

1975년 남대문시장 화재 8백여점포 전소

1975년 박동명 사건

1974년 닉슨, 중동5개국 순방 등정

1973년 북한, 휴전선서 대남방송 재개

1969년 교황 바오로6, 5세기만에 신교 연합체인 세계교회회의에 참석

1967년 서울대 법대생 6.8부정선거 규탄 데모

196210환을 1원으로2차 화폐개혁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법. 중앙정보부법 공포

1961년 농어촌 고리채 정리법 공포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1959년 잡지 `야화` 7월호. `하와이근성(根性)시비` 필화로 판금

1957년 캐나다 총선거, 22년 만에 정권교체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 진압

1950년 북한, 조만식선생과 간첩 김상용 교환 제의

1949년 노르웨이의 소설가 운세트 사망 - 1928년 노벨 문학상 수상

1949년 권농일 제정

1946년 이탈리아, 공화제 선언

1943년 코민테른 해산

1940년 이탈리아, 영국,프랑스에 선전포고

1940년 노르웨이 독일에 항복

1934년 영국 작곡가 딜리어스 사망

1932년 장개석, 여산회의에서 제4차 소공전(掃共戰)을 결정

19266.10만세운동

1926년 건축가 가우디 사망

1925년 일제 한국서 치안유지법 실시

1923년 프랑스의 소설가 피에르 로티 사망

1915년 영국, 독일식민지 카메룬을 점령

1914년 총독부, 각급학교에 교련과목 신설

1914년 박용만 하와이에서 대조선국민군단 조직

1909년 영국 기선 슬라보니아호 조난중 최초로 SOS발신

1907년 프랑스 류미엘 형제, 칼라사진방식을 발표

1907년 북경-파리간 최초의 장거리 자동차레이스 스타트

1907년 프랑스 일본 조약 조인(중국의 영토보전)

1903년 세르비아 군대 혁명

1898년 친위기병대 창설

1871년 신미양요 일으킨 미 함대 초지진 상륙

1868년 미국의 제15대 대통령(1857-61 재임) 뷰캐넌 사망

1819 -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Courbet, Gustave) 출생

1580 - 포르투갈의 시인 카몽()(Camões, Luís de) 사망

867년 일본의 59대 천황(887~897) 우다 출생

BC 323 -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 사망